반려동물보다는 반려식물
얼마 전,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반려견 산책금지 ' 여부를 두고 주민 투표가 열렸고, 단 2표 차이로 산책이 금지됐다는 기사를 봤다.
아마도 일부 견주들의 관리 소홀로 인해 벌어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오늘 반려견 산책금지에 대해 찬반 논쟁을 하자는 건 아니다. 이 기사를 읽고 떠오른 예전 기억 때문이다.
큰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이었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큰아이도 집에서 동물 키우는 걸 좋아했다. 덕분에 여러 동물들이 잠시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거북이, 달팽이, 금붕어, 햄스터, 십자매, 강아지까지.
거북이는 몇 달간 키웠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집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했고,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달팽이도 마찬가지였다. 베란다의 작은 화단에 두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 사라지더니 모두 없어졌다.
금붕어는 한 달쯤 키우다 전부 죽었다. 물도 잘 갈아주고, 먹이도 자주 줬는데 원인을 몰랐다. 누군가는 먹이를 너무 자주 줘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햄스터는 두 마리를 키웠는데 작고 귀엽게 생긴 데다 챗바퀴를 타는 모습도 꽤 귀여웠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를 물어 죽였고, 남은 한 마리도 그다음 날인가 원인도 모르게 죽어 있었다. 작고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뜻밖의 잔인한 면모에 충격을 받았다.
십자매는 베란다에 새장을 놓고 키우다 결국 포기했다. 매일 새똥을 치우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날리는 깃털 때문에 베란다가 엉망이 됐다. 결국 새를 샀던 가게에 환불은 안 해줘도 되니 받아 주기만 해달라고 애원하여 반납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강아지다. 큰아이가 산타할아버지에게 강아지를 선물해 달라고 기도한 걸 이모가 우연히 듣게 됐다. 이모는 우리와 상의도 없이 지인에게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푸들 한 마리를 데려왔다. 큰아이는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랐고, 우리는 너무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아직 엄마 품이 그리운 강아지는 밤새 '깨갱깨갱' 울어댔고, 당연히 배변 훈련도 전혀 안 되어 있었다. 큰아이는 그저 강아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했지만, 모든 돌봄의 부담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었다.
접종해야 할 예방주사도 많았고, 푸들이라 털 관리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두 달쯤 지나,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큰아이를 며칠 설득해 닌텐도 게임기를 사주기로 하고, 강아지는 원래 주인에게 돌려보냈다.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은 한 번도 동물을 꾸준히 오래 키운 적이 없었다. 지금도 홍양과 나는 동물 키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주말부부고, 홍양도 바쁘게 일하다 보니 집에 머무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그런 상황에서 동물을 집에 혼자 두는 건 너무 마음이 쓰인다.
무엇보다 여행 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고, 수명도 짧다. 정이 들었을 때 먼저 떠나보내야 한다는 점도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우리는 대신 식물을 키운다. 아직 서툴지만,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단지 햇빛을 잘 받게 두고, 규칙적으로 물만 줘도 잘 자라는 식물들을 위주로 키운다.
그리고, 우리에게 동물을 키우게 만든 그 큰아이가 입사 선물로 받은 L*사의 틔운 미니로 꽃을 키우고 있는데 신기하게 잘 큰다. 앱과 연결되어 물이 부족하면 알람도 온다.
식물은 움직임이 없지만,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 초록색 화초를 물끄러미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우리에게는 반려동물보다는 반려식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