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한입

엔탈피로 보는 관계

by namddang

사람 사이의 관계는 열역학과 닮았다.

누군가 곁에 있을 때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 혹은 말없이 흐르는 냉랭함은 일종의 에너지 흐름으로 볼 수 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마음속 냉기를 녹일 수 있다면, 인간관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열의 이동’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때 그 보이지 않는 열의 흐름을 설명하고, 측정하는 열역학 개념이 바로 '엔탈피(Enthalpy)'다.


엔탈피는 시스템 내부 에너지와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함께 고려한 값이다. 공학적으로는 내부에너지(U)에 압력(P)과 부피(V)의 곱을 더해 표현한다.

즉, H = U + PV.

이 간단한 식이 의미하는 것은, 어떤 시스템이 가진 에너지는 단지 내부에 머무르지 않고,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교환된다는 사실이다.

출처: 나눔 과학 자료실

사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 내부에너지만 가진 ‘닫힌 시스템’이다. 외부와의 상호작용 없이 내부에서만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상태다. 즉, 고립된 상태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 시선, 행동이 닿는 순간 압력과 부피에 해당하는 외부 요인이 작용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열린 시스템’으로 변한다. 관계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대화와 협업, 갈등과 이해 속에서 서로의 에너지 교환이 일어난다. 그 과정이 곧 인간관계의 엔탈피다.


엔탈피는 단순히 열의 크기를 말하지 않는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시스템이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에너지의 총합을 의미한다.

보일러에서 물을 끓여 스팀을 만들고, 그 스팀이 터빈을 돌리고, 열교환기가 또 다른 시스템에 열을 전달하는 과정. 이 모든 변화가 엔탈피의 흐름으로 설명된다. 결국 에너지는 고립된 공간 안에서가 아니라,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과 변화를 만들어 낸다. 결국 일과 변화가 하나의 시스템을 움직이게 한다.


물질이 기화하거나 응축할 때, 온도는 변하지 않지만 내부 구조가 크게 변하는 현상을 ‘잠열(Latent Heat)’이라 부른다. 물 1kg이 100oC에서 수증기로 변할 때 약 539 kcal 열이 필요하다. 하지만, 온도는 변하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에너지가 축적되고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눈에 띄는 결과가 없더라도 끊임없는 시도와 인내 속에서 내부의 변화가 진행된다. 이 보이지 않는 축적의 시간이 결국 우리를 성장시키는 ‘잠열의 과정’이다. 잠열이 채워지면 이전과 전혀 다른 상태로 도약하게 된다.


엔탈피는 변화의 지표다. 시스템의 엔탈피가 변했다는 것은 내부에서 일과 열이 오갔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는 에너지가 고여 있는 정체의 시간이다.

반대로 도전과 시행착오,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는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더 높은 에너지 상태로 이동한다. 그 과정이 엔탈피 상승이다.


우리 관계도 보이지 않는 열, 즉 엔탈피를 주고받으며 유지된다. 너무 많이 빼앗기지만 않아도, 또 스스로를 닫아걸지만 않아도 우리는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간다. 그것이 열역학 법칙에서 '열평형 (Thermal Equilibrium)'이다.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