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읽고'
사람이 칼에 찔려 죽었다. 신이 있다면 어떻게 그런 죽음을 그냥 내버려 두었는가? 신이 있다면 그런 일은 없게 해야 하는 것이다. 도리어 모든 게 신의 뜻이라고 하겠지. 어떻게 전지전능하고 선한 신이 세상을 요 모양 요 꼴로 만들어 놓느냐 말이다. 그럼 또 일개 인간이 신의 뜻을 다 알 수 없다. 그냥 믿으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믿어도 이 모양 이 꼴이고 안 믿어도 이 모양 이 꼴이면 굳이 믿을 필요가 없다. 그러면 또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지 않냐고 말하겠지. 죽어서 천국에 가게 할 거면 그냥 여길 천국으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신이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은가 그것도 못하면 굳이 믿을 필요가 없다. 그러면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한다. 신이 이렇게 쪼잔하고 야비한 존재다. 권력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든 거짓말일 뿐이다.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칭찬하는 듯 희롱하다가 폭행하는 남자와 다를 바 없다.
버트런드 러셀은 훌륭한 삶이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라고 한다. 어떤 대단하고 훌륭한 삶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름 좀 더 나은 삶을 산다는 것은 곧 두려움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함께 할 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무언가 알게 되었을 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너무 먼 곳에서 도와줄 존재를 찾지 말고 여기 있는 사람들과 사랑하고 지금을 직시하는 눈을 갖고 살아야한다. 자신의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괜히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신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에게 두려움을 투사하여 괴롭히고 죽이는 끔직한 역사만 되풀이 할 뿐이다.
나는 구원을 요청한 적이 없다. 오지랖 떨지 마라.
나는 죽음이 두렵다. 그러나 또 막연하게 죽고 싶을 때도 있다.
살을 꼬집고 아프다는 것을 그대로 느낀다. 죽음을 상상해본다.
그저 사랑과 지식과 함께 하련다.
그러니 나를 조용히 죽어가게 내버려두면 좋겠다.
죽으면 끝.
* 제목 '나를 조용히 죽어가게 내버려두면 좋겠네.'는 사드의 '사제와 죽어가는 자와의 대화'에서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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