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덕, 백종민의 '없어도 괜찮아'를 읽고
일단 잘 읽힌다. 여느 미니멀 라이프 관련 번역서가 아닌 국내 작가가 쓴 책이라 문장이 쉽다. 또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동시에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부장적 제도에서 부모 자식 사이의 독립적 관계, 타인의 삶에 관여하는 폭력적인 오지랖, 세월호 사건과 연대의 문제 등). 미니멀 '라이프'라면 세세한 삶에 관해 이야기들을 해야 할 터인데, 이 책은 일본의 편집증적 극소주의로 보이는 미니멀한 인테리어류 서적이나 미국식 과잉 긍정의 자기계발류 서적보다는 한국에서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우리의 생활과 더 가깝다.
또 미니멀 라이프를 살려면 이렇게 해라는 식의 강요나 주입식 교육의 교과서 같은 태도를 최대한 배제하고 있어서 삐딱선을 잘 타는 나로선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가 아닌, '내가 해보니까 이런 게 좋고 이런 어려움도 있었어'라는 식. 지식의 설파가 아닌 경험의 공유. 그리고 마직막엔 없어도 괜찮지만 그럼에도 있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균형을 맞추고 있다.
'자발적 가난'은 모순이다.
보통은 스스로 가난해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난 진짜 가난한데 살만한 너희들은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거 아냐?'라고 억울함을 토로할 것인가. '누군 일하고 싶어서 하냐'라고 푸념을 털어놓기만 해야 할까.
좀 더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실험적(experimental)이란 낱말은, 성공과 실패의 견지에서 나중에 판단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고 단순히 그 결과(issue)가 미지인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면, 적절하다.(AO 445, 존 케이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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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과타리는 '실험'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실험이란 결과에 의해 성립하는 게 아니라 실험 행위 자체로 성립합니다. 결과가 실패했다고 실험 자체가 실패한 것은 아니죠.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 '실험'이라는 말이 실천적으로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재인,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중에서
'자발적'인 것에 어떤 가치를 찾으려면 그 문제를 실험적 견지에서 보면 되지 않을까. 우리는 어떤 발견을 위해 실험을 한다. 실험자에게 실험으로 행하는 행위들은 자발적이다. 그렇다면 삶에 있어서 다른 가치를 찾기 위한 실험으로서 자발적이라는 말을 가난 앞에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순이라도 괜찮다.
실험은 성공도 실패도 판단할 수 없다. 그래, 없어도 괜찮다. 실험은 실행했다는 그 자체로 실천적인 가치가 있다. 실패를 했더라도 그 실험을 실천했기에 발견할 수 있는 게 있고 성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부부의 글들은 그래서 좌절과 극복이 무한 반복하는 삶에서 알게 모르게 강요당하는 타인의 욕망을 제거하고 단순하게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배치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실험의 기록이다. 거기에 월급이라는 '믿는 구석'까지 제거한 실험이니 그 실천적인 가치는 더 무게가 실린다. 그렇게 실험을 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했기에 그들은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책장을 넘긴 나는 이 책이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젊은 부부의 이야기인지 잘 포장된 '미니멀 라이프'가 될지 섣불리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판단하기 전에 먼저 나를 구속했던 무언가를 비워내는 나만의 실험을 머리 속에 그려보았다. 나는 얼마나 없어도 괜찮을까에 대한 실험. 그런 생각 중에 '나 또한 이미 여행을 통해 그 실험을 했구나!'라는 걸 다시 상기할 수 있었다. 깜박하고 있었던 나의 실험.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더 모으고 한 발이라도 더 앞서 나가야 한다고 똥줄이 타게 달리고 있다. 그런데 여행은 그 경쟁의 트랙에서 갑자기 멈춰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한 눈을 판다. 먼 산을 바라본다. ‘어, 저기 재미있겠는데!’라고 가보는 것이다. 거기에 가봤더니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도 괜찮다. 무언가 봤다면 그만큼 삶의 지평이 넓어진 것이고, 보지 못했다고 해도 그만큼 삶의 지평이 넓어진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벗어나는 것. 목적을 없애는 것. 하나의 방향에서 벗어나도 우리의 삶은 지속된다. 다시 돌아오더라도 다른 방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그만큼 자유로운 삶을 가능하게 한다.
덧붙여 문득 생각난 것인데, 이 책을 통해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일하지 않은(?) 쥐 프레드릭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다른 쥐들이 있는 것처럼 다르게 사는 이들의 실험과 이야기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받아들여지는 우리 사회를 그려본다.
책정보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95823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