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구의 증명’을 읽고
담은 왜 구를 먹었을까?
구를 위한 자신만의 제의
제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우는 게 우리가 보통 하는 장례방식이지만, 티베트에선 독수리들에게 먹이로 준다. 담이 사는 곳은 티베트가 아니라서 독수리가 없어서 그냥 자기가 먹었나보다. 담은 말한다. 아름다운 이것을 어찌 불에 태우고 땅에 묻을 수 있나. 티베트 사람들은 사자가 독수리의 먹이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바랐는지 모르겠지만, 담은 사랑하는 구를 먹고 천년을 살아 오래도록 함께하는 게 자신이 원하는 제의의 방식이었다.
“이 글을 끝내고, 그리고 최대한 오래 살아남는 것.
내가 원하는 전부다.” (12p)
이 소설은 바로 망자를 위한 제문이며 동시에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록이다.
끝없는 착취에서 탈출
구와 담이 사는 세상은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실패는 예정되어 있는 것 같고,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이미 진 것 같은”(93p) 세상을 살아간다. 출구가 없다. 구의 잘못이 아닌데도 ‘물려받은 세계’(149p), 돈이 최고인 세상에서 구는 그저 내던져진 착취의 아이콘이다. 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빚을 떠 앉게 되고 그 빚에 쫓기고 쫓기다가 그 빚에 맞아서 죽는다.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163p) 구는 빚은 갚는 기계다. 그 기계는 수명이 다하면 해체되어서 이 부품은 이리로 저 부품은 저리로 고물처럼 팔려 나가야한다.
“……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128p)
담은 구가 마지막까지 인간이길 바랬다. 그래서 먹었다. 구가 인간일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이 물건 취급 받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뿐이다. 고깃덩이로 삼켜지는 것. 인간의 육체로 소화되는 것. 기계를 먹지는 못하니까. 담이 구를 먹어서 구는 물건이 아닌 인간으로 죽었다.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20p)
그렇게 담은 구가 인간으로 죽어서 인간으로 살기를 원했다.
우울의 육화를 통한 승화
슬픔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치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다.
일반적이라면 사라진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전환하고 그 슬픔을 이겨낸다.
그런데 우울증은 사라진 대상과 자신을 완전히 동일화한다. 사라진 대상을 비난하는 것은 곧 나를 비난 하는 것이고 나를 버리는 것이고 원망하는 것이다.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은 사라진다. 오직 자기 안에 갇혀있다. 정신분석에서 설명하는 우울증의 구조다. 그게 심해지면 나 속에 있는 나쁜 대상을 죽이는 행위로 자살을 하게 된다. 담은 구를 먹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완전한 동일화를 이루고자 한다. 그런데 그 대상을 비난하고 죽이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래서 더 오래 살고자 한다. 천년을 살아서 사랑하는 대상과 함께 하려고 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틀로 보면 부정적인 우울의 증상 같지만 담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죽음이 생의 의지를 낳는다. 그 방법은 상대의 육신을 먹는 것. 우리는 ‘몸이 기억한다.’는 말을 쓴다. 꿈이나 말실수 같은 것만 무의식이 아니다. 우리 몸이 무의식이다. 그 몸을 담이 먹는다. 구를 먹은 담의 몸이 구를 기억한다. 이빨과 혀가 식도가 구를 기억한다. 그 사랑을 몸에 새긴다.
“애무하듯 입술과 혀로 내 얼굴을 핥다가 조금씩 뜯어먹으며 담은 울었다. 울면서 구야, 구야, 내 이름을 불렀다.”(166p)
우울이 몸으로, 고깃덩어리를 통해 영원을 갈구하는 사랑으로 승화한다.
사랑
우리는 누가 누군가를 엄청 예뻐하는 것을 보고 ‘아이고 좋아서 물고 빨고, 어쩔 줄을 모르는 구나!’라고 말을 한다.
물고 빨고 하는 것은 사랑의 행위이다. 심지어 개도 좋으면 핥지 않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물고 빨고 맛보고 하는 것은 본능적인 애무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살결을 탐하고 그 사랑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칠 때 상대를 먹고 싶다는 욕망이 솟는 것은 아닐까. 작가 또한 애인과 같이 있을 때면 그의 살을 손가락으로 뚝뚝 뜯어 오물오물 씹어 먹는 상상이 이 소설의 모티프라고 했다.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함도 느껴진다. 좋은 것을 입으로 넣으려는 아이. 그 아이가 이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거기에 인물들의 이야기와 고통과 슬픔이 덧입혀졌을 뿐. 그 안에는 오직 사랑. 넌 내꺼 난 니꺼 그러니까 난 내꺼 넌 니꺼. 영원히 돌고 돌아 끝나지 않을 사랑의 야금야금. 앙~ 다 먹어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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