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기 Mar 24. 2017

라오스 응급 치료기

루앙프라방에서 병원에 실려가다

AM 05시. 고통이 잠에서 나를 깨운다.

잔뜩 찌푸리다 살짝 뜬 눈에 들어온 주위는 아직 어두웠다.

옆구리에 통증이 관통한다. 강하다. 다시 질끈 눈이 감겼다. 누군가 뱃속에서 낚시를 하는 것 같다. 내장이 낚싯바늘에 걸려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 같았다. 뱃속에 낚시꾼이 있다면 분명 '월척이다!'라고 외쳤을 것이다. 통증의 월척. 통증이 계속되자 이제 그게 배 속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것인지, 살덩이를 파고 들어가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날은 어슴푸레 밝아오고 있었다. 도저히 다시 잘 수 없어 옆구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잘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웠다.

     

“으음……. 응? 몇 시야?”

“다섯 시쯤 됐나 몰라, 근데 나…. 허리랑 배가 너무 아프다."

"어. 어? 왜? 어떻게 아파?"


잠이 덜 깼음에도 놀란 아내는 벌떡 일어났다.


"글쎄, 이게 근육통인지 배탈 인지도 헷갈려."

"아 왜 그렇지? 내가 주물러 볼까?"  

   

나는 다시 천천히 옆으로 누웠다. 아직 잘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내가 아픈 곳을 주물렀다. 

    

“끄으…….”

“많이 아파? 어쩌지?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 아냐? 뭘 잘 못 먹은 건가?"  

   

그 전날 뭘 먹었는지 세끼 모두 복기를 해봤지만 이렇다 할 단서는 찾지 못했다.  

   

“후……. 좀 있어 보자.”     


병원 가면 돈에, 시간에. 아픈 와중에 그런 걱정이 먼저 들었다.

이제 겨우 방콕에서 라오스 비엔티엔, 방비엥을 거쳐 루앙프라방에 왔는데……. 

아직 가야 할 곳이 많이 남았는데…….

우리 여행은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단 말이다!

그렇게 새벽부터 아침까지 아내는 내 배와 허리를 안마해주었다. 그 정성 덕분인지 통증이 조금 가시는 것 같기도 했다. 


              

PM 20시. 저녁을 먹고 화장실도 다녀왔다.

그런데 또 아프다. 온종일 돌아다닐 때는 맥이 빠지고 배가 묵직한 불편함이 있었지만 견딜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아내가 걱정할 것 같아서 아픈 내색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숙소에 들어온 지금, 뱃속에 그 망할 놈의 낚시꾼이 다시 돌아왔다. 척추 왼쪽에 붙어있는 허리 근육부터 배꼽 옆까지 밧줄로 꿰어다가 꽉 조이면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이것은 참아서 될 정도가 아니다. 말도 잘 안 나왔다.


"나 안 되겠어……."     


결국 병원에 가기로 했다. 아내는 급하게 숙소 프런트로 나가는 것 같았다. 툭툭을 불렀다고 했다.

툭툭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통증이 좀 약해지는 듯했지만 이게 또 언제 다시 시작할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약해지긴 했지만 편하게 거동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동안 아내는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하며 숙소 직원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고 확인하는 것 같았다. 혼자서 그렇게 분주하게 상황에 대처하고 있는 걸 보니 같이 도와서 하고 싶었지만, 여력이 없었다. 다시 통증이 심해지는 것 같았다. 아내의 표정이 안 좋다. 


읔. 


움직이기 힘들다. 긴 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툭툭이 도착했다.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나갔다. 내 샌들은 또 어디 갔지? 경황도 없다. 아내의 꼭 쥔 손만 느껴진다. 툭툭에 올랐다. 보통 태국에서 봤던 툭툭보단 크기가 큰 것이었다. 기다란 의자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로 툭툭에 실려 출발했다. 루앙프라방 시내의 불빛들이 멀어지자 벌판 위로 덮인 어둠이 아득하기만 했다. 적막 속에 툭툭의 소음만 울린다. 습하고 더워야 할 공기가 귓가에 서늘하게 닿아서 불쾌함을 더했다. 분명 나에게만 서늘할 것 같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제법 크긴 했지만 그리 번듯하지만은 않은 건물에 들어서자, 특유의 엔진 소리로 시끄럽게 탈탈거리던 툭툭이 마침내 입을 다물었다.          

 차이나-라오 프렌드쉽 호스피탈. 병실에 들어서자 제법 덩치가 큰 몸매의 중년 여자가 흰 가운을 입고 앉아 있었다. 나는 의자에 바로 앉아서 촉진을 받았다. 등과 배 몇 군데를 두드려보고 여기 아프냐? 여기는 안 아프냐? 물어보더니 바로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내가 불안한 눈으로 현재까지 상황을 다시 설명했다.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고개를 끄덕거리기는 하는 데 내심 불안함이 허리를 더 조이는 것 같았다. 무언가 탐탁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몸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 곤혹스러웠다.     


 

여의사가 한 명 더 들어왔다. 내 불안함이 그렇게 보고자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까만 머리와 다부진 체격에 크고 또렷한 눈이 더 신뢰감을 주었다. 그런데 이 여의사도 내 등을 몇 번 툭툭 두드리고 내 반응을 살피는 정도로 진료를 마쳤다. 둘이서 뭐라 뭐라 얘기를 주고받으며 끄덕거린다. 아! 답답하다. 나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갔다. 불을 켜니 널찍한 방에 초음파 검사기와 책상 하나만 덜렁 놓여있는 게 보였다. 덩치 여의사가 내 몸에 크림을 바르고 검사기를 문지른다. 두 여자가 “맞네. 맞네.” 이러는 것 같았다. 다부진 여의사가 다시 병실로 나를 데리고 가서 병상에 엎드리게 했다. 그제야 본격적으로 아내에게 여의사가 자세히 원인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덩치 여의사보다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그런데, 병명이 프랑스어인 거다.   

  

그렇다. 라오스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그래서인지 의료와 같은 전문분야의 공용어로 프랑스어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어로 의학을 배운 의사들은 그에 해당하는 영어를 우리에게 말해주지 못했다. 하물며 영어라고 해도 각각의 내장기관과 의학용어를 우리가 속속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흐아……. 그래서 난 왜 이렇게 아픈 거냐고요!’


통증, 그 원인을 알지 못하는 답답함, 여행 초반에 이런 일이 생긴 것에 대해 괜한 미안함.

이런 것들이 버무려진 심정에 얼굴을 푹 묻고 있는데, 누가 내 엉덩이를 깐다. 간호사다.     


“우와 오빠! 주사기가 엄청 커!”

“읍!”     


 바늘이 피부 속으로 들어왔다가 꽤 긴 시간을 머물다가 나간다. 욱신욱신하다.

그리고 뒤통수도 뭔가 꽂히는 느낌이다. 시선이다.

아내, 다부진 여의사, 수줍어하는 간호사.

여자 셋이 한 남자의 엉덩이를 보고 있었다.   


  

덩치 여의사가 손에 제법 두꺼운 책을 하나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 영어로 된 의학 사전이었다. 그녀는 다부진 여의사와 고군분투 합세하여 우리에게 병에 관해 설명해 주려고 열심이었다. 아내도 머리를 맞대고 노트에 서로 단어들을 쓰고 그림을 그려가며 전자사전까지 동원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마치 라오어, 프랑스어, 영어, 한국어로 하나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알아낸 것은 콩팥에 소변이 가득 차있는데 다음 장기로 소변이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생긴 통증이라는 것이었다.   

  

아! 가슴의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통증의 원인을 알고 안심하게 되자, 간사하게도 그제야 주변이 보이게 된 것일까? 이 사람들이 참 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병원에 들어섰을 때부터 우리만 홀로 있었던 순간이 한 번도 없었다. 의사가 진료하고 검사실까지 동행했으며, 검사실에서 함께 상황을 살폈고, 다시 병실까지 데리고 와서 주사를 맞을 때까지 같이 있어 주고, 병에 대한 설명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마지막엔 약의 복용방법과 진단서, 의료비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작성해 주었다. 일반인이라면 한국의 종합병원에서는 바라지도 못할 배려와 보살핌을 받고 있었던 것 아닌가! 처음엔 의심으로 시작되었던 우리 가슴에 그들의 노력이 따뜻함과 감사의 마음을 퐁퐁 샘솟게 하였다.


아픈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그 따스함에 미소가 번지고 있는데, 누가 내 엉덩이를 깐다. 또 간호사다.  

   

“오…. 오빠, 주사기가 더 커!”


“흡!”     


아내, 다부진 여의사, 덩치 여의사, 수줍 간호사.

이번에는 여자 넷이 한 남자의 엉덩이를 보고 있었다.    

 

“오빠.”

“응?”

“브이~”

“음…. 응.”    

 

엎드린 채, 부끄러운 두 손가락을 뒤통수 옆으로 내밀었다.

그 상황에 아내는 사진을 찍었다. 찰칵.

이제 한숨 돌리고 안심하는 것 같아서 나도 기분이 가벼워졌다.   

            

"도운'트 드링크 비어 라오."     

루앙프라방의 그 다부진 의사는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어느 술이 아픈 몸에 좋겠는가.

하지만 라오스 하면 비어라오인데……. 어쩔 수 없다.   

  

" 그래 알겠다. 하지만 비어라오는 참 맛있는 맥주다."

" 하하하, 나도 안다. 그래도 참아라."

" 오케이, 오케이, 알겠다. 당신의 친절한 도움에 매우 감사한다."     


웃긴 건, 한 카페에서 내 생애 최고로 시원한 용변을 보기 바로 몇 분 전 맥주를 마셨다는 것이다. 루앙프라방에서 태국으로 다시 돌아온 후, 몇 주가 지나서의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콕의 충격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