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미안한 밤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재작년이었나....
8,9개월 될 둘째를 데리고 독서모임을 시작했었다.
많은 책들을 사람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눴다.
모인 멤버들이 신기하게도 비슷한 연령의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자연스레 교육문제도 논하게 되고 고민하게 되었다. 그때 나의 고민은 첫째 아이의 성향과 어느 학교를 갈 것인가 였다. 5살이면 학교 문제를 고민하기엔 다소 이른 나이이기는 하나 그다음 해에 전세 기간 만료로 인해 이사를 가야 하기에 아이 학교 문제를 고민 안 할 수가 없었다. 대안학교를 갈 수 있는 상황은 안되었고, 작은 학교를 보내고 싶었지만 울산의 땅덩이는 너무 크고 남편의 회사문 제도 있어서 남편과의 이견차로 쉽사리 어디로 갈 것인지 정하지 못했었다. 그맘때 아이의 학교를 어디로 가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아이의 성향 때문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조심성이 많으며, 내성적인 아이의 성향을 많이 걱정했던 것 같다. 사실 아이의 그런 성향을 걱정하기보단 딸아이를 통해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보이는 것에 더 괴로워했던 것 같다. 나는 나름 힘든 시기를 극복하며 그래도 지금의 모습으로 자란 내 모습이 백 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잘 성장했다고 믿으며 살고 있다. 하지만 드문드문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불안하고, 외롭고, 힘든 순간들이 분명 많았다. 그래서 딸아이의 모습을 통해 과거의 나를 보는 게 괴로웠고, 딸아이도 나처럼 힘들 것이라는 나만의 결론을 내버리고는 그 시선으로 아이를 계속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걸 깨닫는 데는 책을 함께 읽는 동지들의 도움이 컸다. 그때 모임 내 한 동지로부터 추천받은 책이 앤절린 밀러의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였다. 나의 걱정이 오히려 아이를 망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랬다. 내가 걱정하고 염려한 것보다 아이는 훨씬 용감했고, 빨리 적응했고, 불안의 시간이 짧았다. 그렇게 내 모습으로의 투영이 아닌 아이의 본모습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많이 해왔다.
가부장적이며 다혈질적인 아버지 밑에서 나는 지시적이고 강압적인 것에 굉장한 거부감을 가지며 성장하게 되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며 욱하게 될 때도 있고 마음이 쪼그라들듯이 무서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너무나도 싫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특히 딸아이에게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너무 괴로운 순간이 있었다. 어떻게 내가 그럴 수가.. 그토록 싫어하는 모습인데 내가 그러다니... 자각하는 그 순간은 너무 괴롭고 자책을 많이 했는데 반복이 되다 보니 어느 순간 무뎌짐을 느꼈다. 근데 난 유독 왜 딸에게만 더 그라는 것일까. 아버지의 감정들을 항상 받아내던 사람은 친정엄마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나의 엄마라는 존재를 떠올리면 포근하고 다정하고 안락하면서도 답답하고 화가 난다. 그런 연약한 존재를 나는 딸이라고 생각한 걸까? 그래서 내 감정을 받아내는 존재가 딸인 걸까? 생각해보면 어느 부모나 할만한 강도의 훈육을 두 아이에게 나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받아들이는 입장(딸과 아들의 온도 차이)을 보면 딸이 더 마음의 스크래치를 얻는 것 같아 그 모습에 난 또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두 아이가 다 아픈 오늘, 특히나 더 상태가 좋지 않은 둘째가 하루 종일 칭얼거리며 나에게 안겨있으려 해서 신경이 많이 곤두서 있었다. 아직 7살짜리 딸아이를 나는 다 큰 애로 착각하며 대할 때가 많은데 오늘도 어김없이 그랬다. 반복적으로 아이에게 말을 했지만 듣지 않는 딸아이에게 화를 내는 걸 넘어서서 하소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이의 눈에서 소리 없는 눈물이 또르르륵 흘러내리는 걸 보며 이게 아닌데.. 싶었다. 어렵다. 부모란 것은.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대물림 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잠자리 도서를 읽으며 난방 텐트 안에 쪼르륵 누운 아들과 나 그리고 딸. 귓속말로 딸에게 말했다. 너를 너무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아이는 난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라고 말하곤 약기운에 바로 곯아떨어졌다. 미안한 마음, 두 아이 잠든 밤 글으로라도 정리하고 싶어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