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눈치챌 수 없는 세심함이 비법
알록달록한 잡곡밥 혹은 따끈하게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하얀 쌀밥 위에 몽글몽글하게 잘 익은 달걀 스크램블 그리고 그 위에 수북이 쌓인 달콤하고 짭짤한 김자반과 간장 한 스푼과 고소한 참기름을 두바퀴 휘휘 둘러주고 수저로 쓱쓱 비벼주면 우리 집의 인기 메뉴 계란밥이 완성된다. 사실 이렇다 할 만한 특별한 레시피도 음식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맛이 있는지 딱히 설명할 길이 없다.
아침에 바쁘게 움직이는 자식들이 우유 한 잔 혹은 빈속으로 나가는 것이 엄마 눈에는 뭇내 안쓰러워 보였던 모양이다. 언제부터인가 나가려고 바쁘게 준비하는 등 뒤로 한 마디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식탁 위에 밥 차려놨으니까 나가기 전에 밥 먹고 나가". 나도 그렇지만 동생들도 처음엔 이게 왠일인가 싶었다. "엄마가 밥을 해놨다고? 웬일로?" 좋은 소리 듣지 못할 거 뻔히 알면서도 괜스레 말대꾸해 본다. "웬일은 무슨 웬일 평소에 해 주는거 잘만 먹고 다니면서" "엄마가 평소에 귀찮다고 잘 안해주니까 그랬지!" "나이들면 원래 만사가 다 귀찮아 너도 나이 들어봐라 이년아." 밥만 먹어도 배부를 텐데 괜한 소리해서 잔소리까지 덤으로 듣기는 했지만, 왠지 모를 기분 좋은 잔소리였다.
엄마는 나와는 달리 애초에 음식이나 요리에 관한 흥미가 전혀 없다. 굳이 요리에 관심을 보이는 정도라 한다면 티브이 건강 프로그램 중에 나오는 건강 주스 만들기 정도랄까. 그래서 그런지 동생이나 나는 평소에도 엄마의 요리들은 썩 맛있다고 생각 하는 편은 아니었다. 종종 가족들과 같이 티브이를 시청하다 보면 "어머니께서 손수 해주신 집밥, 그 음식 맛이 너무 그리웠어요" 라는 식의 말들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되는데, "난 어머니의 손맛이 뭔지 잘 모르겠던데?" 라고 깐족거리다가 종종 등짝을 맞기도 한다.
"너 밥 뭐 먹고 나갈 거야?" 점심 즈음 학원에 일 나가는 동생에게 귀찮지만 예의상 물어본다. 이때 내가 동생에게 원하는 대답은 '내가 알아서 대충 먹고 나갈게'인데 동생은 항상 진지하게 고민을 하다가 대답을 한다. "음...... 그럼 계란밥?"
엄마가 집안일로 바쁘지 않으시거나 컨디션이 난조가 아닌 이상 동생 밥을 챙겨주려고 노력 하는 편이셨는데, 요사이 들어 손목이 자주 시큰거린다며 나에게 종종 동생 밥을 부탁하곤 하신다.
"맛은 어때? 먹을 만해?" 동생에게 밥을 차려 준 뒤 나름 자신에 찬 목소리로 종종 물어보지만 "뭐 그럭저럭" 혹은 "너무 짜 밥을 더 넣어야겠어"라는 김빠진 대답들이 들려온다. 동생 말로는 엄마가 해준 밥이 좀 더 묘하게 맛이 있다고 하는데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손맛이라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면서 뭐 때문에 다르다는 건지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잘 모르겠다. 분명 가감없이 엄마가 했던 거 그대로 따라 한 거 같은데.
가끔 엄마에게 양념에 관해 물어보면 엄마만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비법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면 콤콤하지만 깊은 맛을 내는 갈치 액젓을 쓴다든지, 양념장에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의 파를 넣는다든지, 혹은 외할머니가 담근 집 된장을 조금씩 넣는다든지 말이다. 그래서 혹 아무도 모르게 더 넣는 것이 있나 싶어 물어봤다. "엄마, 엄마가 한 것처럼 똑같이 따라 한 거 같은데 왜 내가 한 계란 밥은 엄마가 한 것보다 맛이 없다고 하지?" 돌아오는 대답은 생각 외로 단순했다. "그거 김자반 작은 거 한 팩 다 넣어야 해 그리고 걘 짠거 안 좋아하니까 간장은 반 스푼만 넣어야 하고"
요리는 특별한 것을 찾아야 하는 것보다는 먹는 사람의 취향을 생각하는 섬세함이 우선이구나 싶은 생각이 확실해지기도 함과 동시에 엄마에게 저런 섬세함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 손에 턱을 괴고 물끄러미 엄마를 바라보았다. "왜?" 라는 무뚝뚝한 엄마의 물음에, "아니 그냥 신기해서"라고 나도 똑같이 무뚝뚝하게 대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