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양파 장아찌와 강된장 양배추 쌈밥
저녁을 차려먹고, 설거지는 미뤄둔 채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이 노트북은 친구가 7,8년 전쯤 맥북을 사면서 준 것이다. 이제 전원선 없이는 작동하지 않으며, 뭐를 조금만 저장해도 속도가 느려진다. 하지만, 글을 쓰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나는 이 노트북으로 책도 쓰고, 노래도 썼다. 하지만, 맥북이 탐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내년의 목표는 아마 맥북을 사는 것이다. 소비가 목표라니...
어쨌든, 내가 요즘 왜 이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요리도구들을 사고, 요리책을 사고, 갖은 양념들을 사고, 부엌을 싸그리(깡그리의 전남 방언) 뒤엎는 중이다. 어떤 감정의 정리와 새로운 시작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분명, 효과가 있는 것 같긴 하다. 아무튼, 오늘도 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영수증에는 오만원이 넘는 금액이 찍혀 있었다.
나, 혼잣말, "어? 왜 이렇게 많이 나왔지?"
계산원. "오만원 이상 구매 고객께 신라면 5개를 990원에 드리고 있습니다."
나, "괜찮습니다."
장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당시에는 조금 비싸게 느껴지더라도 재료를 조금씩 사서 장을 자주 보는 선택이 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안 그러면, 혼자하는 살림에 버리는 것이 태반이다. 어쨌든, 애호박이나 사과 가격 등의 변동폭을 아는 것은 내가 그래도 현실을 직면하며 살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들게 한다. 가격에 따라 혹은, 주머니 사정에 따라 어떤 재료는 처음부터 손을 뻗지 않는다. 그런데, 사과 한 봉지에 5,000원이면 망설이는데, 커피 한 잔에 5,000원이면 망설임없이 계산한다. 문제가 있다. 아무튼, 스팸, 베이컨, 참치, 냉동 새우, 오이, 청량고추, 양배추, 미소된장, 돈가스 소스, 들기름 등등을 샀다.
집에는 요리책이 와 있었다. 집나간 고양이는 여전히 감감 무소식인데, 요리책을 포장한 포장지에 검은 고양이 그림이 있다. 이건 또 무슨 싸인인가.
요리책을 보고 양파 장아찌를 담아야지하고 생각했다. 장아찌와 피클은 분명 다른 것이다. 어쨌든, 장아찌는 장이 들어가는 동양 채소절임이고, 피클은 말부터 외래어니까. 장바구니에 오이와 청량고추와 양배추가 보여서 장아찌의 범위를 넓혀 담기로 한다. 그때그때 밥 하는 수고만 들이면, 장아찌 하나라도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된다. 오늘의 요리음악은 Gregory Alan Isakov의 신보 'Evenig Machines'이다. 시월에 발매된 따끈따끈한 앨범이다.
월계수는 아마 외국 식재료일 것이다. 우리집 입구에는 2년 전에 선물받은 월계수 화분이 있다. 이제는 제법 자라 옮겨 심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달 전 쯤 무성한 잎들을 따다가 침대 맡에 말려 두었다.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영국 요리책을 본 적이 있는데, 로즈마리나 월계수가 거의 주 식재료였다. 제주도 우리집에서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인데... 아무튼, 간장과 설탕과 식초와 물을 섞은 국물에 마지막에 월계수 하나를 띄워서 장아찌 국물을 완성했다. 향긋한 냄새가 난다.
아직 저녁 메뉴를 정하지 않았다. 이쯤하면 체력 배터리에 방전 알림이 뜨고, 최대한 간단한 것을 차려 먹어야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강된장 양배추 쌈밥이다. 입맛을 돋구는데는 강된장 만한 것이 없다. 집 된장, 고추장, 설탕과 물을 자박하니 섞어 끓인다. 국물용 멸치도 몇 마리 집어 넣고, 청량 고추도 썰어 넣는다. 그러는 사이, 찜기에 양배추를 찐다. 10분 정도면 준비 가능한 메뉴다.
압력솥에 갓지은 밥과 양배추, 그리고 강된장 속 청량고추를 집어 흰밥 위에 올려 쌈을 싸 입으로 가져간다. 양배추에서는 단물이 쭉하고 나오고, 청량고추의 아릿함과 강된장의 짭쪼름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이거 법주 한 잔 안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양배추는 간에 좋다고 하지 않는가. 한 잔이 두 잔되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리고, 이웃이 준 물김치 속 아삭한 무 하나를 베어 물면, 아, 이게 사는 맛이구나, 겨울을 준비하는 자세구나하는 생각들이 머릿 속을 스친다.
2018.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