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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Mar 13. 2024

바닐라 라테

음악 일기 / 뉴욕 / 2014. 10. 12 망원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간단히 하고, 아침 산책을 나섰다. 전주 한옥 마을은 한적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로 붐빌 테지만. 좀 걷다 보니, 자연스레 배가 고파졌고, 풍전에 들러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먹었다. 경원장에 들어가 가방과 기타를 챙겨, 남부 시장으로 향하던 중, 핸드폰을 여관방에 두고 온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히 카운터에서 핸드폰을 맡고 있었고, 나는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The place of creativity'. 왠지 오랜만에 바닐라 라테가 먹고 싶었다. 맛없는 바닐라 라테가 나왔고, 상욱이 형이 떠올랐다.


상욱이 형은 내가 일하던 레스토랑의 스시 세프였다. 뉴욕에 여행을 왔다가 재미교포인 형수와 결혼했고, 지난 1년 동안 와인에 1만 달러 이상을 지출했으며, 한때 홍대에서 음악을 한 적이 있었다. 형은 나에게 동병상련 비슷한 것을 느꼈고, 비싼 와인을 테이스팅 시켜주거나, 가끔 일 중간중간에 바에 있던 나를 자기 쪽으로 불러, 고등어 초밥을 맛보게 해주기도 했다. 형이 커피 맛에 민감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자기가 선호하는 맛을 남에게 강요하는 성향이 있었지만, 사실 나는 그 맛이 좋았고, 형이 좋았다.


당시 음식의 맛이나 요리에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형이랑 같이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맛에 눈떠가기 시작했. 엘살바도르 달리는 맛없는 음식을 먹느니, 차라리 굶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저  배고픈 유학생이었기 때문에 맛보다는 양에 민감했다.


어느 , 형은 사장의 사촌 동생이 내린 커피맛을 보고 경악을 하며, 그 커피를 쏟아부리고, 손수 커피를 머신에 다시 채워 넣고 내렸다. 일정량의 커피와 거름종이, 물을 채워 넣으면, 저절로 커피를 내려주는 머신커피의 맛이 사람에 따라 얼마나 차이가 있겠냐만은 신기하게도 형이 만든 커피는 맛있었다.


형은 나를 몰래 불러 그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무언가를  커피에 타주곤 했다. 바닐라 시럽. 아무튼 지금까지도 나는 그만한 바닐라 라테를 먹어본 적은 없다. 추억의 맛이겠지만. 커피는 생각보다 맛을 내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창 상욱이 형을 추억하고 있는데, 소란스러운 4명의 단체 손님이 카페에 들어왔고,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잭 존슨의 목소리를 듣기로 했다.


When tomorrow's too much
I'll carry it all
I got you
I got everything


-I got you, jack johnson, from here to now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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