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눈에는 돼지, 양 눈에는 양>

육아휴직291일차

by 허공

주말 내내 한반도를 강타했던 미세먼지, 간밤에 비가 온 뒤 거짓말처럼 미세먼지는 사라지고 신선한 공기가 왔다. 새벽에 일어나 미세먼지 수치를 보고 바로 창문을 열어 공기를 마구마구 흡입했다. 맑은 공기가 폐 속에 들어오는 순간 가슴이 확 펴지며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변비에 시달리던 사람이 마침내 큰 일 보는 일에 성공한 표정을 지었다.


계속 공기가 좋지 않을 것 같았지만 또 거짓말 같이 이렇게 좋아지기도 한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면 되고, 해가 뜨면 양산을 쓰면 된다지만 날씨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하원 시키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바람이 너무 세서 두꺼운 잠바를 입고 있어도 바람이 옷 사이사이로 파고들었다. 아이들과 조금만 놀고 집으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얘들아, 날씨 추우니까 조금만 놀고 가자”

“아빠, 친구 나올 때까지 새 놀이터에서 기다릴 꺼에요”

사랑이는 아빠를 기다리지 않고 혼자 앞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직 하원하지 않은 친구를 기다린다고 했지만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사랑아, 우리 이제 그만 들어가자 너무 춥다”

“싫어요, 더 놀래요”

아이들은 오랜만에 뛰어노는 게 좋은 지 쉽사리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빠, 쉬야 마려워”

“나도”

“얘들아, 어린이 집에서 나오기 전에 쉬야 하고 나와야지”

“아까는 마렵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조금 놀다가 바로 소변이 마렵다고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관리사무소로 들어가서 소변을 누이고 나왔다.

“얘들아 우리 그네 타고 가자”

“네”

다른 놀이터로 이동해서 그네를 탔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밖에서 노는 또래 아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빠, 좀비 놀이해요”

“그래, 딱 5분만 노는 거야”

아이들과 신나게 잡기 놀이를 하며 뛰어다녔다. 아이들은 코가 빨개져도 잡기 놀이는 재미있는지 소리를 지르며 계속 뛰었다.


사랑이는 양말을 벗고 미끄럼틀을 거꾸로 오르려 하기 시작했다.

“사랑아, 겨울에는 추워서 안 돼, 양말 벗지 마”

사랑이는 처음에는 구두를 신고 올라가려고 했지만 계속 미끄러졌다. 양말을 벗지 말라는 말에 반만 벗고 다시 올랐지만 이내 다시 미끄러졌다. 결국 양말을 다 벗고 올라가는 데 성공을 한 사랑이, 추위 따윈 두렵지 않은 아이였다.


아파트 사이 하늘을 쳐다보니 햇빛 사이로 구름이 보였다.

“얘들아, 저기 구름 돼지 같지 않니?”

“아니, 양 같아, 양”

“아 그래?”

행복이의 말에 다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까는 돼지로 보였는데 다시 눈을 비비고 보니 양으로 보였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데 내 눈은 돼지구나 하는 멋쩍은 자책을 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날씨가 추워도 공기만 좋다면 괜찮다. 조금이라도 뛰어놀 수 있다면 상관없다. 볼이 좀 빨개져도 좋다. 공기야 이대로만 하늘에서 돌아다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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