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마지막 나눔

육아휴직 302일차

by 허공

“두 달 뒤에 같은 시간대로 예약을 잡아드려도 될까요?”

“네”

“감사 합니다”

헌혈 문진을 마친 뒤, 간호사 선생님이 두 달 뒤 예약을 잡아주셨다. 헌혈의 집 입장에서도 정기적인 헌혈 수급은 중요하니 예약을 잡아놓는 것일 것이다.


어제는 올 해 마지막 헌혈 날이었다. 이미 두 달 전 헌혈을 하고 예약을 했었다. 며칠 전 헌혈을 할 때가 되었다고 알림 문자가 왔다. 원래 올해 100번을 채우려고 했었지만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님을 깨닫고 나서 혈장 헌혈보다는 전혈을 하기로 했다. 혈장 헌혈을 하게 되면 2주에 한 번 할 수 있기 때문에 몸 관리도 훨씬 잘 해야 한다.


아침 11시에 예약을 했었다. 집에서 10시 반쯤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아침에 아이들을 등원시킬 때 바람이 세서 살짝 걱정을 했었다. 아니다 다를까 집을 나서자마자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때려댔다. 마스크와 장갑으로 바람을 막아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점퍼에 달린 모자를 눌러썼다.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니 한결 나았다.


헌혈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아니면 오미크론인가 뭔가 하는 변종 바이러스 때문인지 헌혈을 하려고 대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꽉 차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덕분에 바로 문진을 하고 침대를 안내받아 자리에 누웠다.


“살짝 아픕니다”

‘푹’

거의 백번을 넘게 찔러 봤지만 팔에 주사바늘을 넣을 때는 항상 통증이 느껴진다. 처음의 잠시 동안 고통만 참으면 다음은 편하다. 내 몸의 피는 금방 빠져나간다. 전혈은 5분이면 끝난다. 두 달 동안 건강하게 관리했던 몸 안의 피는 빠져나가고 다시 몸은 필요한 피를 생성한다.


모든 것은 그렇다. 부족한 것은 채우고, 채운 것은 다시 비워줘야 한다. 순환, 전에 한의원에 갔을 때 혈액의 상태?에 대해 체크하시고 놀라셨던 게 기억난다. 장수의 유전자라고 하셨나? 아무튼 헌혈을 자주 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하셨다. 남을 돕는 행위가 실제로는 나를 돕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헌혈을 마친 뒤 자리에서 10분을 더 누워 있다가 알람 소리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수기로 가서 물을 마신 뒤 의자에 앉아 10분을 더 휴식을 취했다. 오늘 하루 무거운 물건을 들지 말고 통 목욕을 하지 말라고 한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푹 쉬라는 이야기다.


시간이 다 되어 팔에 두르고 있던 압박 밴드를 내려놓고 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었다. 앉아 있는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입구에 앉아 있는 남자 분 에게도 “수고하세요”라는 인사를 드리고 헌혈의 집을 나선다.


이로서 올해의 마지막 헌혈이 끝났다. 95번째 헌혈이다. 내년 2월 3일이 헌혈 예약 날짜로 잡혔다. 이런 내 생일이었다. 아마 예약 날짜에는 헌혈을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 때쯤이면 복직을 해야 할 시기이다.

2,4,6,8,10 아마 두 달에 한 번 헌혈을 하게 된다면 10월 달이면 100번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숫자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냥 살아오면서 꾸준히 무엇을 하는 게 쉽지 않은데 헌혈은 내가 꾸준히 하는 것 중 하나이다. 거기에 의미와 가치를 두고 싶다.


집에 돌아와 헌혈 후 받은 오렌지 주스 캔을 따서 마셨다. 시원한 오렌지 주스가 목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4시간이 지나 주사 바늘이 들어갔던 밴드를 땠다. 멍이 들어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바늘을 잘 못 꽂으셨나보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 살색으로 돌아올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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