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317일차
제대로 된 훈육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화가 나지 않는다. 아이를 때리지 않는다. ‘욱’은 아이에게 폭력이다. 욱해서 훈육하나, 훈육하다 욱하나 모두 폭력이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욱해서 나온 행동의 결과로 훈육을 하는 경우가 많다.
매를 들고 협박하는 것은 어떨까? “너, 한번 맞아 볼래?” “한 번만 더 그래봐. 맞을 줄 알아.”때리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 때리는 것과 협박하는 것의 본질은 같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무섭게 할 때, 아이는 겁에 질리고 잔뜩 움츠러든다. 때리지 않았어도 이미 맞은 것이다.
때리는 것으로 때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을까? ‘동생을 때렸으니 너도 맞아 봐’라는 말은 잘못되었다. 또한 안 아프게 때리거나, 한 대만 때리거나, 겁만 주거나 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매로 아이를 다스리면, 아이는 ‘필요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을 겁주거나 때려도 된다’라고 배울 수 있다. 그렇게 돼서는 절대 안 된다.
사회 안에서 가정은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누가 볼 수도 없는 가정 내에서조차도, 설사 내가 낳은 자식이라도 강압이나 힘으로 때리거나 억압하거나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협박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훈육은 아이가 사회의 기본 질서를 지키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이 행동을 계속 하게 되면 나중에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살아가는 데 문제가 될 것 같을 때 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돼”를 가르쳐야 한다. 이 때 가르쳐 주는 가치에는 절대 타협이나 협상이 있을 수 없다. “너, 엄마가 세 번까지는 참아 준다고 했어.” 이런 말은 맞지 않다.
그런데 절대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이를 무섭게 대하거나 억압하라는 말이 아니다. 욱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훈육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욱하지 않는다. 화가 났다면, 아이를 때리고 있다면, ‘훈육’이라는 명칭만 붙였을 뿐이지 훈육이 아니다. ‘너 이리 와, 오늘 맛 좀 봐’하는 심정일 가능성이 높다. 피상적으로 훈육의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지, 그냥 욱하고 있는 것이다. 훈육은 실패하고 만다. 욱했다는 것은 본인의 감정 조절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고, 자신의 문제를 축소하는 것이다. 자기 문제를 축소하는 것은, 결국 자기 행동을 반성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훈육은 가정교육의 첫 단계다. 훈육은 아이가 성질이 나빠져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허용되고 허용되지 않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따라서 너무 강압적이어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허용 적이어도 안 된다.
만 3세 이상 훈육하는 방법
1.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야 한다. 훈육은 절대 놀이가 되면 안 된다. 단호한 표정ㅇ로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상황이 심창치 않음을 인지한다.
2. 본격적으로 훈육 자세를 잡아야 한다. 아이를 안전한 장소로 데리고 오고 엄마는 다리를 살짝 세우고 두 발목을 교차하고 앉는다. 무릎을 벌려 두 다리를 마름모 모양으로 만든다. 아이를 그 사이에 엄마와 마주보게 앉힌다. 아이의 손목을 가볍게 잡고, 단호하게 “화난다고 동생을 때리면 안 돼”라고 말한다.
3. 평정심을 유지하며 아이가 그치기를 기다려야 한다.
4. 돌발 상황에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
5. 아이가 진정하고, ‘네’라는 대답을 하면 풀어 준다.
6. 아빠 다리로 마주 앉아서 지침을 준다.
<출처> 오은영 박사님의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218~230쪽
훈육은 어렵다. 정말 어렵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모두 공감할 것이다. 오은영 박사님은 욱하지 말고 훈육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어제도 나는 욱하고 말았다. 동생이 먼저 언니의 스케치북을 집어 던지긴 했지만 동생의 손등을 손톱으로 긁어서 길게 피가 나고 말았다. 피를 본 순간 나는 얼굴을 무섭게 하고 손에 낀 장갑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그 뒤로 오은영 선생님의 말과 완전 반대로 하고 말았다.
“너 동생 손톱으로 절대 상처내지 말라고 했지?”
이미 화를 내고 강압적으로 되었으며, 내 감정 조절에 실패했다. 훈육에 점수를 주자면 0점이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알려줘야 하지만 욱하면서 이미 지고 들어갔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다. 흰 눈이 펑펑 내려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었건만 욱 한 번으로 의미가 퇴색되었다. 오늘이 왔다. 오늘도 눈이 쌓여 있다. 아침 햇살이 흰 눈을 비춘다. 오늘도 평화롭지만 않겠지만 결국 내가 문제다. 나만 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