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229일차
2021년 9월 18일 토요일, 어제는 추석을 맞이해 양가 부모님에게 선물을 미리 가져다 드리기로 했다. 장모님이 며칠 전 먹으라고 주신 등갈비가 있었다. 아내는 등갈비를 에어프라이어로 조리해서 가져다 드린다며 아침부터 등갈비를 꺼내 녹이고 등갈비를 칼로 조각조각 내고 있었다.
“아우 팔이야, 우리 집 칼이 잘 안 들어서 그런지 힘드네, 이런 건 남자가 해야 되는 거 아니야”
팔이 아프다는 아내를 대신해서 칼을 들고 등갈비를 썰기 시작했다. 칼이 안들긴 했지만 못자를 정도는 아니었다. 힘을 주고 여러 번 그으니 그래도 잘 잘라졌다.
“응? 잘 자르자나? 전생에 혹시? 인간 백....정?”
“뭐? 백정?
“호호호호”
“조심해, 사실은 밤중에 몰래 나가는 연쇄살인마일 수도 있으니”
“뭐라고?”
칼을 잘 다룬다고 백정이라는 말에 실소를 터뜨렸다. 수많은 전생 중에 가축을 도살하는 직업도 한번쯤 갖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오전에 근처 큰 마트로 장을 보러 가기로 했었다. 생각해보니 추석 연휴 때는 사람들이 오전부터 선물을 사러 와 마트 내외가 사람들로 바글거렸던 게 생각이 났다. 차라리 집 근처 농협 로컬 푸드에서 선물을 사기로 했다. 아내가 나가서 물건을 보고 결제를 한 뒤 내가 들고 오기로 했다. 샤인머스켓과 메론 선물세트를 2개씩 샀다.
점심에 먼저 양 손 가득 선물을 들고 장모님 댁에 들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장모님만 계셨고 장인어른은 텃밭에 농사를 지으러 가셨다고 하셨다. 아내가 등갈비 소스를 사러 잠시 집 앞 편의점을 갔다. 아이들은 작은 방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조용히 놀고 있었다.
장모님은 아침부터 김장 준비를 하셨다며 베란다로 열무, 얼갈이, 김치 양념을 들고 옮기셨다. 간단히 빈 통을 하나 옮겨 드리며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장모님이 김장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예전에 지어진 아파트는 베란다가 넓은 편이다. 장모님 댁도 마찬가지이다.
“베란다 없으면 김장하기 힘들겠어요”
“그렇지, 내가 김장해서 이쪽저쪽 주려면 베란다가 있어야지, 그래서 요새 아파트들은 베란다가 없어서 이사하기가 쉽지 않아”
장모님도 집안일을 줄여보시려고 김치를 사먹어 보았지만 직접 만드는 김치와 맛이 전혀 달라서 먹지 못했다고 하셨다. 장모님은 열무 사이사이에다가 김치 양념을 넣으셨다.
“사람들이 열무 김치를 해도 맛이 안 난다고 하는데 그건 함부로 다뤄서야, 열무를 통에 넣을 때 살살 넣어야 되는데 함부로 하면 숨이 죽어서 맛이 나지 않아”
김치를 담가보지는 않았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같은 재료, 같은 양념을 가지고도 맛이 다른 것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노하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장모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김치를 담그는 데에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니, 뭔가 단순하면서도 어려웠다.
곧이어 장인어른이 오셨다. 장인어른은 텃밭에서 가져온 대추, 가지를 보여주셨다. 농약을 치지 않으셔서 벌레 먹은 대추들이 많았다. 대신에 싱싱한 대추들은 알이 크고 맛이 아주 달았다.
다 같이 둘러 앉아 점심을 먹었다. 장모님이 만드신 열무김치와 아내가 가져온 등갈비를 허겁지겁 먹었다.
장인어른이 요새 새벽에 3~4번 정도 잠에서 깨신다고 하신다. 장모님도 한 두 번씩 깨시고, 두 분의 건강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이곳저곳 고장이 나기 마련이지만, 이왕이면 건강하게 늙는 게 좋다.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을 챙기시면서 일도 하시고, 농사도 지으시면 좋겠다. 모든 병의 원인은 마음에 있다고 하는데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신지 장인어른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오후에는 어머니 댁에 가기로 했는데 첫째 사랑이는 놀이터에 가고 싶어 하고, 둘째 행복이는 잠이 들어버려 혼자 선물을 가지고 갔다. 어머니는 혼자서 전을 붙이고 계셨다.
“아우, 왜 전을 붙여요, 사먹으면 되지”
“내가 애를 보냐 뭐 하냐, 할 일도 없는데 이거라도 해야지”
어머니도 최근에 한쪽 다리가 퉁퉁 부었었다. 거의 다 나았다고는 했지만 전을 붙이는 것은 쉽지 않다. 어른들은 자식, 손녀들에게 하나라도 뭘 만들어 해먹이고 싶으신가 보다. 사먹는 건 왠지 정이 없어 보여서 일까?
장모님, 어머니 추석 때 다시 뵐게요,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쉬고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