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165일째>
그제는 새벽 2시까지 아내에게 혼났다. 아이들을 재운 밤 11시부터 무려 3시간 동안. 그동안 서운했던 것, 말하지 못했던 것을 술기운을 빌려 다 토로했다.
그동안 무심했던 점에 대해 자책도 하고 아내의 어깨 위에 손을 얹어 감싸주었다.
하지만 무려 3시간에 걸친 이야기에 나의 눈은 점점 감겨왔다.
다음날 아침, 머리 아파하는 아내에게 말했다.
"와, 어제 엄청 얘기하대, 난 서유기의 여자 삼장법사인줄 알았어."
아내는 허리를 쥐어 잡고 깔깔깔 웃어댔다. 출근해서도 내 얘기가 생각나서 한참 동안 웃었다고 했다.
어제는 아이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백신 접종으로 나오시지 않아 가정보육을 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깨우지 않아서인지 평소보다 1시간 넘게 푹 자고 9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아빠의 잔소리로 일어나지 않아서인지 막 잠자리에서 깼지만 얼굴이 밝아보였다.
아침으로 삶은 계란과 바나나를 간단히 먹이고 점심은 양파, 당근, 애호박을 작게 자른 뒤 어제 먹다 남은 생선을 비벼 복음밥을 만들어 먹였다.
평소에는 야채를 먹지 않지만 볶음밥과 카레에 들어간 야채는 잘 먹는다.
아침부터 에어컨을 키고 싶지 않아 선풍기만 틀었다. 찌는 듯한 더위에 창밖에서 바람이 불어왔지만 뜨겁게 느껴졌다.
점심을 먹이고 간식으로 수박을 주고 정리하니 어느덧 2시가 가까워왔다. 집에만 있으면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몸은 녹초가 되고, 아이들의 시중을 드느라 정신이 없다. 밥 차리고 설거지하고 간식주고, 빨래하고 밥하고 끝이 없다.
미술학원에 가는 날이라 아이들을 챙긴 뒤 둘째 행복이는 유모차에 태우고 첫째 사랑이는 퀵보드를 타고 출발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잠시 미술학원 걸어가는 길이었는데도 워낙 날씨가 뜨겁고 습해 옷은 금방 땀으로 젖었다.
아이들을 미술학원에 맡긴 뒤 아이 친구 어머니들과 인근 커피숍으로 이동해서 수다를 떨며 더위를 식혔다. 다들 며칠 간 코로나 여파로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고 가정보육을 해 힘들다고 하였다. 주로 얘기를 듣는 편이다. 엄마들 사이에서 아빠이자 남자인 내가 말을 하기보다는 듣는 게 편하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다가 나와서 활동을 해서인지 그래도 얼굴을 밝았다. 미술학원이 끝난 뒤 바로 집에 들어가기 뭐해서 근처 놀이터로 가 각자 싸온 간식을 아이들에게 나눠 먹였다. 역시 먹을 게 배에 들어가야 아이들의 얼굴은 밝아진다.
언제쯤 마스크를 벗고 좋은 날이 오려나. 길게 호흡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