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만 더>

육아휴직261일차

by 허공


내가 어렸을 적, 여느 남자아이들 같이 컴퓨터 게임을 좋아했었다. 초등학교 때 유행했던 게임은 일본에서 만든 삼국지였다. 형과 나는 공부는 안하고 몇 시간씩 게임을 하다가 서로 더 한다며 싸우곤 했다. 어머니는 방학 때 출근하실 때면 컴퓨터 코드를 집 안에 숨겨두시곤 했다. 물론 형과 나는 귀신 같이 찾아내서 게임을 했지만 말이다. 그때도 어머니께 10분만 더, 10분만 더 그러면서 게임을 했을까?

2021년 10월 22일 금요일, 아이들 하원을 시키러 갔다. 날씨가 추워 조금만 놀고 집으로 가려고 했지만 아이들은 좀만 더 놀고 들어간다고 했다. 마침 마트에 뭐 살 것이 있어 먼저 마트에 가자고 했다. 아이들은 과자를 고르면서 지금 과자를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과자 먹는 대신 지금 들어가야 해?”

“응”

“그리고 과자 먹고 밥도 잘 먹고?”

“응”

밥을 먹기 전 간식을 많이 먹으면 밥을 잘 안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집에 들어가서 아이들은 과자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금방 먹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자 먹는 시간은 길어져서 거의 30분 정도 걸렸다. 음료수까지 먹었다. 너무 늦게 먹어서 빨리 먹으라고 재촉을 했다. 애당초 밥을 먹고 간식을 먹으라고 했어야 했다.


저녁을 차렸다. 낮에 미리 사놓은 묵과 두부를 양념해서 내놓고, 소세지를 야채, 계란과 함께 볶아 반찬으로 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잘 먹지 않았다. 장난만 치고 집 안을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었지만 정작 밥은 떠먹여야 한 숟가락씩 먹을 뿐이었다. 계속 먹어라, 스스로 먹으라고 했지만 귀 뜸으로도 듣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아내와 내가 번갈아가며 잔소리를 하자 먹기 시작했다. 1시간 30분이 지났다. 6시 30분에 차렸는데 8시에 밥을 다 먹었다. 설거지 시간도 길어졌다. 설거지를 하면 그릇이 나오고 또 나왔다. 한 번에 끝내지 못하고 계속 하니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아빠, 나 씻을래”

“그래”

평소에는 씻자고 해야 씻던 사랑이가 웬일로 먼저 씻자고 했다. 아이들을 씻겼다. 얼른 씻고 나오면 좋으련만 화장실에서 아이들은 물장난을 쳤다. 시간이 또 흘렀다. 아이들을 다 씻기고 나니 어느 덧 9시가 다 되었다.

“아빠, 나 이제 영상 볼래”

“안 돼, 너무 늦었어”

“아빠”

“아빠가 그러니까 밥을 얼른 먹고 보자고 했자나, 수도 없이 말했어 오늘 밥 먹는데 몇 분 걸린 줄 알아? 1시간 30분이 걸렸어”

“아빠, 하나만 볼래 응?”

원래는 하나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딱 하나만 본다고 하여 먼저 간단히 한글 공부를 한 뒤, 영상을 켜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1개의 영상을 보고 하나 더 본다고 했다. 딱 하나만 더 보여줬다. 그리고 또 하나를 더 본다고 했다.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밤 10시였다.

“안 돼, 원래 하나만 보기로 했는데 하나 더 봤자나 이제 자야해”

“싫어, 하나만 더”

아이들은 울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방으로 데리고 가 앉힌 뒤 조목조목 설명을 해주었다. 행복이는 금세 알아들었지만 사랑이는 20분이 넘게 얘기를 해도 막무가내였다. 결국은 눈물까지 흘리며 본다고 난리였다.

결국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안방으로 데리고 갔다. 사랑이는 계속 훌쩍였다.


요놈아 약속 좀 지키자 밥도 좀 잘 먹고, 하나만 더, 하나만 더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울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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