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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Dec 13. 2023

2023년 2월 일기모음 3

2023년 2월 21일 화요일


퇴근하고 농사 관련 유튜브를 내내 봤다. 일단 친구가 추천한 '기적의 사과' 다큐멘터리를 봤다. 키무라 아키노리 라는 일본농부의 친환경 사과 농사법에 관한 이야기인데, 우리가 먹는 사과는 애초에 자연에 존재하지 않던 개량된 품종으로서 농약을 쓰지 않으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길들여져있으며, 농약을 쓰지 않고 자연 속에서 자란 사과는 흑사병도 자연치유해낸다, 나 (키무라 아키노리) 는 사과 농사를 지을 때 농약은 커녕 풀조차도 베지않는다, 대략 그런 내용이다.


그 다음으로 2월말에서 3월초에 심으면 좋은 작물에 대한 영상을 찾아서 봤다. 앳되보이는 남자농부가 살짝 부정확한 발음 (예 : 거름-거듬) 으로 농사법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묘하게 동질감이 느껴져서 괜히 더 관심이 갔다. 나 또한 발음이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비록 발음은 부정확하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서 또박또박 천천히 말하며 친절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느낌이라서 오히려 더 듣기 편하고 좋았다. 약간 귀여웠던 것도 같다.


남자농부가 찍은 영상을 두어편 본 후 또 다른 영상을 찾아보던 중, 대충 썸네일만 보고 클릭했다가 영상을 찍는 사람의 목소리가 너무 늙은 느낌이라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몇초만에 꺼버렸다. 그 다음으로 볼만한 영상을 찾고찾다가 이번에는 아줌마농부가 고구마 재배에 대해서 알려주는 영상을 봤다. 이쯤 되니 살짝 지겨워져서 보는걸 중단했다. 유튜브는 이쯤 보고, 도서관에서 텃밭농사, 작물재배에 관한 책을 빌려서 공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현재 구청에서 주최하는 친환경농사 텃밭임대사업에 분양신청을 해놓은 상태고, 3월 3일 금요일에 신청 결과가 나올 것이며, 일정에 차질이 없으면 3월 11일 토요일 오후 3시 30분에 분양 안내 교육이 있을 예정이다. 어릴때 외가에서 농사를 지어서 옆에서 보고 자란게 있긴하나, 내가 직접적으로 농사에 가담한 적은 없다. 어른들을 따라서 밭에서 뭘 따거나 캤던 기억은 어렴풋이 난다마는, 그 정도를 가지고 농사에 참여했다고 할 수는 없겠다.


결국 농사가 처음이라 뭐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하다. 분양 안내 교육이 있기 전에 어느 정도 기본적인 것들을 공부해두고 싶다. 텃밭 농사에 관한 책이 시급하다. 일단 고구마는 확정이고, 그 외에 감자, 치커리, 무, 대파, 쪽파, 상추, 콩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호박도 키우고 싶지만 서리 (도둑질) 가능성을 생각해서 제외하기로 했다. 가급적이면 땅 속에서 자라는 것들, 그리고 겉보기에 하찮아보이는 풀떼기 위주로 재배해야겠다.


공부도 하고싶고 더 나아가서 텃밭농사에 관한 에세이도 써보고 싶고 시작 전부터 욕심이 생긴다. 욕심이라고하니 살짝 부정적인 단어같고,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의욕이 생긴다' 정도가 되겠다. 에세이는 2월 시작전단계부터 시작해서 11월 마무리단계까지 월별로 잘 정리해서 써볼 생각이다.


2023년 2월 22일 수요일


작년에 참여하던 1인가구 소셜다이닝에 올해 또다시 참여하게 됐다. 모임에 약간 호감가는 모임원이 있어서 이런 행사들에 같이 참여하면서 친해지면 좋을 것 같다는 마음에 단톡방에서 한며칠 눈여겨보고 (?) 있었는데, 대충 봐도 뭔가 엄청 바쁜 느낌이 역력해서 굳이 이런 행사 따위 추천해줘봐야 참여를 안 할 것 같아서 말 꺼내는 것을 관뒀다. (연상이긴하나 어쨌든 나이도 비슷하고 나와 같은 구에서 혼자 사는 여자다.)


어차피 개인번호도 몰라서 단톡방에서 말을 붙여야 하는데, 누구에게만 권하고 누구에게는 권하지 않으면 괜한 위화감을 조성할 수가 있으니 말 붙이기가 조심스럽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누구한테 함께 하자고 하기에는 인원수 제한이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장소 등 여건이 좀 열악하기도 하다. 신청서도 작성해야하고 주민등록등본 등의 증빙서류를 제출해서 1인가구임을 증명해내야 하므로 다소 번거롭다. 그냥 혼자 해야겠다.


특히 이번년도에는 작년보다 참여인원수를 대폭 줄여서 5명이서 소수정예로 진행하다보니, 일단 나 하나부터도 참석을 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오후 3시부터 선착순으로 참여자를 모집하는데, 3시 땡하자마자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달까. 일단 총 2회기 중에서 1회기는 무사히 선착순 안에 드는 것에 성공했고, 2회기의 경우 대기자로 밀려나버렸다. 그밖에 동아리 활동 및 포틀럭 파티도 신청받던데, 친목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관뒀다. 하긴 소셜다이닝도 결국 친목을 위해 하는 것이겠지만, 나한테는 친목보다는 요리수업 개념이 더 크다.


3월 15일 소셜다이닝 1회기 : 날치알크래미유부초밥, 윙봉조림 (확정)

3월 22일 소셜다이닝 2회기 : 소고기야채커리, 난 (미정)


대기자에게 순서가 돌아온다고해도 아마 내게 기회가 올 확률은 낮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1회기 참석자라서 한번도 참석하지 못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2회기의 메뉴는 매우 구미가 당기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말자. 그리고 사실 장소도 멀다. 1회기의 경우 북구, 2회기의 경우 수성구에서 진행한다.


아침에 보일러를 끄고 출근했다. 이제 곧 3월이고 더이상 영하의 날씨로 떨어질 일이 없을 것 같다. 보일러를 끔으로써 비로소 계절이 바뀌는 것을 실감한다. 퇴근하고 카누캡슐커피머신을 첫개시했다. 캡슐을 따로 구입하지는 않았고 일단 사은품으로 준 '카누 바리스타 캡슐 웰컴키트' 를 우선 소진하기로 한다. 웰컴키트에는 8종류의 다른 맛 캡슐이 종류별로 들어있는데, 하나씩 맛보고 가장 내 입에 맞는 것으로 최종선택해서 추가주문할 생각이다.


저녁이라 일단 디카페인을 마셔봤다. 확실히 인스턴트커피보다는 맛있고, 카페커피와는 비슷한 수준이다. 사실 카페커피맛이 카페마다 천차만별이라 돈이 아깝다고 생각되는 맛도 더러 있는데, 오늘 처음 마셔본 캡슐커피맛의 경우 그나마 평타 이상의 양호한 편이다. 그나저나 물탱크에는 생수를 넣어야할까. 어차피 가열돼서 나올거라 생각하니 수돗물을 넣어도 문제없을 것 같다.


지인들에게 커피머신을 구입했다고 얘기하니 네스프레소 것으로 사지 왜 호환도 안 되는 카누머신을 샀냐는 반응을 보이던데, 애초에 나는 캡슐커피에 별 관심이 없다가 동서식품에서 나온다니까 괜히 한번 구입해본 것이다. 사실 동서에서 캡슐커피를 출시한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예전 것은 속된 말로 망했다...


2023년 2월 23일 목요일


어째 맨날 뭘 먹었네 어쨌네 하는 이야기뿐인 것 같네. 하지만 일기란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고 일상이라는 것이 결국은 먹고 자고 또 먹고 자고 하는 생활의 반복이니까 어쩔 수 없다. 오늘은 점심 때는 국수집에 가서 7,000원 주고 비빔밥을 사먹었다. 이 집은 오늘이 두번째 방문인데, 지난번에는 손님이 없어서 굉장히 조용했고 오늘은 단체손님(8명)을 받아서 지난번과 다르게 시끌벅쩍했다.


사장님이 계속 웃으면서 나를 포함한 모든 손님들에게  웃는 얼굴로 엄청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장사가 잘 돼서 기분이 좋으신걸까. 단체손님들도 자기네들끼리 막 재잘대면서 식사를 하는데 뭔가 기분이 엄청 좋아보였다. 웃음에 전염된다는게 이런건지 밥을 먹는데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게 느껴졌다.


맛은 있는데 밥이 살짝 질다. 채소에서 수분이 나오기 때문에 비빔밥을 할때는 밥을 살짝 되게 하는게 좋겠다. 계란프라이 대신 소고기 고명을 올려주는 집은 처음이다. 조합이 괜찮긴한데 소고기도 들어가고 계란도 들어가면 좋겠다. 시래기국인지 우거지국인지 모르겠지만 밥을 시키면 따뜻한 국물을 함께 줘서 좋다. 밥에 이미 채소가 들어가서 그런지 밑반찬에는 손이 안 가서 남겼다.


오빠의 결혼으로 인해 한며칠 주변사람들로부터 결혼공격에 시달렸다. 아무 소득도 의미도 없는 질문에 웃으면서 적당히 대꾸해주는 것도 처음에는 별 감정이 없다가 계속 반복되니 피로가 느껴지며 스트레스가 쌓였다.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이래서 일부 사람들이 자신을 독신주의자, 비혼주의자 따위로 포장하는구나 싶다.


근무 중 짬을 내서 치과 스켈링 예약을 다시 잡았다. 퇴근하고 미루고 미루던 이불빨래를 했다. 뭔가 묻어서 오염이 심했었는데 삶았더니 때가 싹 다 빠졌다. 저녁식사로 불닭쌈을 해먹었는데, 망해버렸다. 망한 결과물을 대충 그릇에 올려서 대충 먹어치웠다. 라이스페이퍼에 체다치즈와 불닭볶음면을 싸서 먹는건데 라이스페이퍼 안에 면을 잘 넣어서 뭉치는 것부터가 잘 안 됐다.


2023년 2월 24일 금요일


일하고 밥사먹고 커피사마시고 운동하고 귀가했다. 점심 때 배가 안 고파서 식사를 걸렸더니 퇴근무렵 급격한 허기가 밀려왔다. 어제 갔던 국수집에 또 갔다. 손님은 하나도 없었지만 열여덟명의 단쳬예약을 받아놓은 상태라 테이블 세팅이 된 상태였다. 세팅된 테이블을 빼니 앉을만한 자리가 입구 바로 앞에 있는 자리 밖에 없다. 대충 앉아서 메뉴를 골랐다. 잔치국수와 배추전을 시켜서 먹었고, 이걸로도 모자라서 카페에 가서 커피와 빵까지 사먹었다.


과식을 했더니 식곤증이 밀려온다. 이대로 집에 가서 자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땀이 흐르지 않는 수준으로 깔짝거리다가 씻고 귀가했다. 자려고 누워있는데 친구에게서 카톡이 와서 카톡을 약간 주고 받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져서 혹은 대답하기 귀찮아져서 마지막 카톡은 읽고 답장하지 않았다. 질문형이었는데도 그랬다. 모임 단톡방에 들어가서 약간의 카톡을 주고 받았다. 딱히 할말이 없는데도 아무나 붙잡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 마음은 그런데 할 말이 없다.


오늘 운동하는 내내 헤드폰을 쓰고 '안녕하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오디오북을 들었다. 휴남동의 독립서점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야기인데 소소하게 읽을만하다. 이 책을 읽으니 예전에는 서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시절과, 한때 서점창업에 대한 환상을 가지던 때가 생각나고 그렇다. 서점에 대한 환상은 아주 오래 전에 깨졌고, 요즘은 농업에 대한 환상을 가지기 시작했다. 환상이라고 하면 현실을 모르고 무조건 좋게만 생각하는 것 같은 부정적인 느낌이긴한데, 현실을 모른다기보다는 내 적성을 아직 잘 모르겠다는 것 정도.


일단 텃밭농사 먼저 가볍게 시작해보고 농사가 적성에 맞는지 한번 체험해봐야겠다. 시작 전부터 너무 들떠있는 것 같아서 막상 시작하고나서는 기대에 못 미쳐서 실망하고 시들해질까봐 살짝 염려되긴 한다만은, 그래도 농사를 생각하면 활기가 느껴져서 좋다. 작년에는 (망한) 투자자였지만, 올해는 (성공한) 텃밭 농부가 되어보는거야.


2023년 2월 25일 토요일


퇴근길에 도서관에 가서 텃밭 농사 관련 책을 대여해와서 읽었다. 텃밭 농사 책은 생각보다 재밌어서 꽤 시간을 들여서 읽었다. 최대한 여러권을 읽고싶어서 도서관에서 되는대로 잔뜩 대여해서 한권씩 대충 휘리릭 읽었는데 나중에 다시한번 꼼꼼하게 읽어보고싶다. 편의점에서 사온 하이볼 얼그레이를 개시했다. 달고 맛있다. 술 같지가 않아서 막 벌컥벌컥 들이켰더니 금새 훅 간다. 알코올 도수가 9%로 맥주보다는 높고 와인보다는 낮다. 일 마치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고 하이볼을 한캔을 마시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역시 혼술이 최고다.


2월 26일 일요일


12시가 넘어서 겨우 일어났다. 친구의 전화가 잆었으면 더 잤을 수도 있겠다. 하루종일 집에만 있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 위에서 보냈다. 사실상 아무것도 안했다. 바깥 날씨가 그렇게 좋았다던데, 한 발자국도 나갈 의욕이 없었다. 그나마 이두온의 러브몬스터를 읽었다. 약간의 흥미가 돋지만 집중력이 오래가지는 않는다. 하루종일 무기력하다. 식욕도 없다. 식욕이 없는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참에 살이나 빠졌으면 좋겠다.


2월 27일 월요일


모임 단톡방에 우울성향과 다혈질 (폭력성향) 중 한명을 애인으로 선택해야한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남녀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남자의 경우 만장일치로 차라리 다혈질이 낫겠다고 했고, 여자의 경우 우울성향을 선택했다. 이건 아무래도 경험에서 나온 선택일 것 같다. 남자들의 경우 우울성향을 가진 여자친구를 경험해본 경우가 꽤 많았다. 처음에는 연민을 느끼며 끌려했지만 결국에는 우울한 감정에 전염되는 부정적인 기분을 느끼며 결과적으로 결별을 맞이했다. 여자들은 우울한 남자보다는 오히려 화를 잘내고 폭력적인 남자를 더 싫어한다. (물론 그 반대도 있겠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대게 이랬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면 그게 단순히 그 사람만의 문제일까. 그렇다면 남탓을 하면 되는 것일까. 남탓을 해서 덜 고통스럽다면 몇번이고 그렇게 하겠다마는, 오히려 억울함이 더해져서 더 괴로워질 뿐이다. 그러니까 차라리 내 탓을 하자. 괴롭기는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억울함은 덜 든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게 이렇게까지 괴로울 일인가 싶다. 모든 문제를 내 안에서 찾아야겠다. 문제를 자꾸 남에게서 찾다보면 결국 내 힘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 일 마치고 곧바로 집에 와서 폰이나 만지다가 잔다.


2월 28일 화요일


내일 모임사람들과 대구미술관 이건희 컬렉션을 보러가로 했다가 급한 일정을 둘러대며 캔슬했다. 모친이 삼일절에 친척들과의 점심식사자리를 마련했고 나에게도 꼭 오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불편할 것 같아서 결국 안 가기로 했다. 이렇게된거 모임을 굳이 취소할 필요는 없었는데 다시 가겠다고 말꺼내기는 번거롭다. 사실 미술관에 엄청 가고싶은 것도 아니고 그냥 사람들이 많이들 가니까, 혼자 집에 있을바에 나도 같이 가볼까 하는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내일 하루종일 프리하다. 계획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할 것 같아서 내일 최소한의 계획을 짜자면, 외출하기와 러브몬스터 완독이다. 집에만 있지말고 어디든 잠깐동안이라도 나갔다가 들어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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