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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Dec 13. 2023

2023년 2월 일기모음 2

2023년 2월 11일 토요일


출근해서 일하고 직원들과 다같이 점심을 배달시켜먹었다. 블루웨이에서 샐러드를 주문해서 먹었는데, 메뉴를 고르기가 귀찮아서 그냥 다른 사람들이 적어놓은 메뉴 옆에다가 작대기를 그었다. 부채살큐브어쩌고 라는 이름의 메뉴였다. 맛도 괜찮았고, 채소와 고기를 골고루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서 좋았다.


이 일을 하는동안 개명한 사람들을 굉장히 많이 만났다. 지극히 내 주관적인 경험만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중년여성들의 개명이 유독 많다. 엄마 또래 혹은 그 이상의 아주머니들이 그 시절에는 없던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개명 전 이름은 죄다 숙자, 말자, 남숙이 등, 대게 딸 많은 집에서 붙여지는 이름들이다. 내가 만난 손님들 중에는 이름이 '이쌍년' 도 있었는데, 막 같다붙인 느낌이 역력하다.


이름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가정에서 어떤 대접을 받으며 자랐는지, 어떤 시대에서 자랐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모친은 굉장히 공감하며 지인들의 이름을 읊었다. 내 모친은 아들 많은 집에서, 부친은 딸 많은 집에서 태어나 나름 귀하게 자랐으며, 이름에서부터 그게 느껴진다. 80년대 여자들의 경우 이름에 유독 '지'가 많다. 현지, 민지, 은지, 지영이 등, 작명소에서 많이들 짓는 이름이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세탁기를 돌려놓고 다시 외출해서 다이소에 가서 곰팡이제거제와 청소용품들을 몇가지 샀다. 다시 집에 와서 빨래를 널고 침대에 누워서 폰이나 만지다가 잘 생각으로 유튜브를 켰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게 '꽃보다 남자 몰아보기' 영상을 보여줬다.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장장 3시간짜리 영상을 결국 한번도 쉬지 않고 끝까지 다 봐버렸다.


꽃보다 남자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방영했었다. 인기가 많았었고, 나도 가끔씩 챙겨봤다. 나름 재밌게 봤던 것 같은데 지금 다시 보니 내용이 기가 찬다. 그 당시에는 도대체 이걸 어떻게 봤나 싶을 정도로 내용이 너무 이상하다. 일단 학교폭력이 너무 심하고 다들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학교폭력 가해자랑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드라마 초반에 학교폭력에 시달리다가 결국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하고 있는, 피범벅이 된 남학생이 나오는데, 사정을 모르고 대충 봐도 심각한 상황임을 알텐데, 그런 사람을 보고 세상 환하게 웃으며 세탁배달을 왔으니 돈을 달라고 쩌렁쩌렁 소리 지르는 금잔디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럽다. 뭐 어느정도는 코믹하게 봐야할테고, 다큐로 보자면 끝이 없기야 하겠지.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도 결국 끝까지 다 봐버렸다.


한편으로는 가난하지만 밝고 당차고 시련에 굴복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예쁜) 금잔디의 모습, 윤지후의 발연기, 독특한 패션과 다양한 소품 등이 재밌었다. 마지막으로 자기 전에 욕실 세면대 헤드를 교체했다. 지난번에 수도에 얼었을 때 깨져버린 헤드를 여태 사용해오다가 드디어 손을 봤다. 사소한 일인데도 어쩐지 뿌듯하다.


2023년 2월 12일 일요일


오전에는 수창청춘맨숀 무인카페에서 책을 읽었고, 오후에는 친구와 함께 중구청 부근에 위치한 비건식당에 갔다. 친구의 추천으로 처음 가보는 가게인데 나쁘지 않았다. 역시나 친구의 추천으로 팔라펠 샐러드를 두그릇 주문하고 대략 2만원을 지불했다. 팔라펠 샐러드는 빵 사이에 채식 재료를 집어넣어서 먹는 메뉴였는데, 맨손을 써야한다는게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맛은 괜찮았다.


여기서 팔레펠이란 병아리콩으로 만든 비건고기를 일컫는 말이다. 고기완자 모양을 흉내낸 3알의 펠라펠이 빵과 야채가 가득 담긴 접시 위에 보기좋게 올려져 있었다. 포크로 찍어서 한입 베어무니 식감이 꽤 재밌다. 경험삼아 한번쯤 먹고 싶은 정도이지 또 먹고 싶은 맛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양에 비해 너무 비싸다. 내가 비건에 대해서 가지는 생각 혹은 편견이 있다면, 비건은 비싸다. 돈이 든다.


식사후 매장을 빠져나오기 전에, 매장에서 파는 물건들을 구경했다. 다양한 식재료들을 별도포장없이 원하는 양만큼 덜어서 구입하게끔 큰 통에 담아서 판매하고 있었다. 집에서 그냥 막 버리는 유리병도 여기에서는 깨끗하게 세척해서 개당 500원씩 돈 받고 판매하고 있었다. 실물로 처음 보는 실리콘 생리컵은 이게 과연 질 속에 들어갈까 의아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고, 괜히 사용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들었지만 너무 비싼 가격을 보니 살 생각이 들지 않았다.


2023년 2월 13일 월요일


하루를 요약하자면 일-집-운동-잠. 데드리프트를 했는데 70kg는 들리고 75kg은 안 들린다. 한창 할때는 80kg까지 들었는데 지금은 70kg도 간신히 든다. 조금만 쉬어도 중량이 금방 내려간다. 심지어 맨땅이 아닌 3D 스미스머신에서 하는건데도 그렇다. 맨땅에서는 60kg까지 들어봤고 그 이상은 아직 시도조차 못해봤다.


작년부터 계속 100kg을 들거라고 큰소리쳤는데 과연 올해 안에 가능할지 의문이다. 제발 열심히 좀 하자. 뭐 그렇다고해서 혹사하면서까지는 하지말고. 마라톤은 아직 신청을 안 했고 아직 한번도 연습을 안 했다. 최소 30분은 안 쉬고 달릴 수 있을때까지 연습해보고 신청해야겠다. 역시 운동이 제일 재밌는 것 같다. 누굴 만나고 뭘 먹고 뭘 해도 시간 아깝고 돈 아깝고 피곤하고 재미가 없다.


2023년 2월 14일 화요일


같이 일하는 직원이 휴무라 혼자서 일했다. 평소와 비슷한 업무량이라도 혼자서 일하면 아무래도 더 바쁘게 느껴진다. 바쁘게 일하니까 시간이 잘 가서 지루할 틈이 없다. 어제 운동을 하면서 자세에 문제가 있었는지 뭐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오늘 하루종일 왼쪽 무릎이 아팠다. 너무 아파서 오늘은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연락이 뜸하던 친구에게서 최근에 연락이 자주 온다. 이 친구와는 알고지낸지 15년 정도 됐고, 같은 동네에 살다가 타지로 이사를 가게되면서 아주 오랫동안 만나지 않고 있는 사이다. 이렇듯 물리적으로는 거리가 있지만 내가 친구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이 친구다. 적당한 선이 있기도 하고, 또 성향이 잘 맞아서 서로 싸울 일도 없으며, 굳이 만나지 않으니까 헤어질 일도 없다.


아무튼 이 친구와 최근에 자주 연락하며 주로 나누는 이야기는 '커피' 이야기다. 친구와 나는 믹스커피 애호가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동서식품과 몬델리즈의 합작품인 '맥심' 의 애호가다. 최근에 맥심 카누 커피 머신이 출시되어서 일단 친구가 먼저 구입했고 그 이야기를 내게 늘어놓았다. 친구는 카누커피머신을 사면서 카누머신에 맞지 않는 호환용 캡슐을 잘못사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했다. 대화가 굉장히 유치하고 쓸데없고 아무 내용이 없는데도 뭔가 재밌다.


친구왈 : 난 매번 똑같은 실수를 해. 저번에도 뭐 사면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잘못 샀잖아. 다음에도 또 이럴 것 같아.

나왈 : 한번 이랬으면 다음에는 안 이래야 하는거 아니냐?

친구왈 : 내 성격이 이래. 난 MBTI가 ISFP인데, 엄청난 베짱이야. 성격이 최악이야. (갑자기 MBTI 얘기)

나왈 : 아, 난 ISTP인데 나도 만만치 않아.

친구왈 : 너랑 나랑 하나만 다르네. 남편은 INTJ인데 나랑 대화가 진짜 안돼.

나왈 : T랑 F랑 좀 안 맞다고는 하더라.

침구왈 : 아니야. 대화에서는 F랑 T 보다는 S하고 N의 차이가 커. 예를들어 N은 숲을 보고 S는 나무를 보고 이야기를 한대.

나왈 : 당장 눈앞의 나무를 냅두고 숲을 왜 보니?

친구왈 : 그러니까 (웃음)


2023년 2월 15일 수요일


사이가 가까울수록 오히려 더치페이가 더 잘 안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모임 같은 관계가 차라리 더 편하고 좋게 느껴진다. 모임원들과 회식을 하면 당연하다는듯이 더치페이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모임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뭐 어찌됐든 자기 밥값을 자기가 내는게 얼마나 깔끔하고 좋은 일인가 싶다. 예전에 모임장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친하지만 찐친이라고 하기에는 선이 있는 관계' 라는 뉘앙스의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그런데 여기서 도대체 찐친이라는게 뭘까.


상대방의 돈과 시간에 대한 당연한 권리를 갖게되는 것이 찐친이라면 차라리 나는 그냥 모임이나 직장동료와 같은 오피셜한 사이가 더 좋다. 어째 사람과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상대방에게서 요구사항이 많아진다. 친하다는 이유로 요구사항을 늘어놓는 사람들의 기준에서 친해진다는건 결국 서로의 돈과 시간과 거기에 덧붙여서 몸에 대한 권리를 나눠갖는 일이 되는가보다.


이게 쌍방이면 그나마 낫다. 내가 받을게 더 많은 경우면 차라리 땡큐고. 나는 딱히 상대방에게서 받을게 없는데 상대방은 내게서 받고싶은게 많으면 입장이 곤란해진다. 내가 듣기싫어하는 말들 중 하나가, 친하니까 부탁 좀 하자. 친하니까 해줘야지. 징그럽다. 왜 이렇게 사람을 이용을 못 해서 안달일까.


과거에 '돈은 당연히 남자가 써야지' 라는 개념을 가진 남자와 소개팅으로 만나서 몇차례 데이트를 했었다. 내가 약속장소에 일찍 도착해서 영화표를 미리 끊어놨더니 뒤늦게 와서 네가 왜 돈을 쓰냐며 깜짝 놀라서 안절부절못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이십대 젊은 여자라는 프리미엄이 붙어서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데이트 초반이라 그랬을 수도 있겠다.


내 기억 속의 그 남자는 '돈은 당연히 남자인 내가 써야지' 라는 태도를 일관했다. 근데 뭐 어디까지나 태도가 그랬다는거고 실제로 뭘 대한히 얻어먹는 기억은 없는 것 같네. 내가 경험하기로 사람들이 뭔가를 해주겠다,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뭔가를 해주려고 했었다, 라는 말을 꺼내며 생색내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퇴근후 헬스장에서 운동했다. 루마니안데드리프트 70kg 5x5, 랫풀다운 패러럴그립 25kg 15×5, 체스트프레스 20kg 15x5. 주방수도에서 물이 새는걸 오늘 발견했다. 이건 도대체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하는걸까. 어제 먹은 설거지가 아직까지도 쌓여있다. 정말 하기가 싫다. 결혼식 때 입을 정장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더니 옷이 망가졌다. 물세탁하면 안 되는 옷이었나보다. 몹시 난감하다.


2023년 2월 16일 목요일


화요일 밤부터 시작된 복통으로 며칠을 고생하다가 오늘은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화요일밤에 복통 때문에 밤잠을 조금 설쳤고 그 이후로 하루이틀 정도는 속이 불편해서 저조한 컨디션이 계속 됐다. 화요일 저녁에 기름진 돼지고기요리를 먹었는데 이게 조금 의심스럽다. 다행히 복통이 아주 심각한 수준은 아니고 대충 참으면 참아지는 정도라서 통증을 참고 일도 하고 밥도 먹고 운동도 하고 겉보기에 딱히 문제없는 일상을 보냈다.


다만 운동을 할때, 웨이트를 하는 것에는 큰 문제를 못 느꼈지만 달리기는 할 수 없었다. 몸이 흔들리면 옆구리 쪽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속이 비면 뱃속이 쿡쿡 쑤시는 느낌이 들며 통증이 심해졌고 밥을 먹어서 위장이 차면 잠시나마 괜찮았다. 밥을 먹고 시간이 지나서 속이 비면 또 배가 아팠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뱃속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배가 아픈데도 불구하고 음식은 그다지 신경써서 먹지 않았다. 심지어 어제는 제로콜라와 치즈파우더치킨을 먹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그래도 어제 먹은 치킨은 기름에 튀긴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느끼함이 별로 많이 안 느껴졌다. 어쨌거나 음식을 신경써서 먹어야 하는데 관리가 잘 되지 않는다. 심지어 복통이 있을 때조차도 대충 먹는다. 언젠가 또 심각하게 아파봐야 정신차리려나. 내 몸은 항상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프니까, 조금 아픈 정도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예전에 걸을 수도 없을 지경으로 심각한 복통을 겪은 적이 있다. 새벽내내 구역질을 하고 떼굴떼굴 구르다가 아침이 되어서 거의 기듯이 간신히 종합병원에 갔다. 의사에게 구두로 대충 증상을 설명하고는 급성위장염 정도로 진단받고 약만 처방받고 귀가했다. 코로나로 민감한 시기라 그런지 모르겠으나 의사는 환자에게 청진기는커녕 손가락 하나 대지 않으려고 했다. 다행히 약을 먹었더니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증상이 사라져서 진짜 단순 장염이구나 하면서 넘어갔다. (이때는 낮시간에 상온에 방치한 우유를 마신게 의심스럽다.)


그동안 병원을 다니며 뇌, 안구, 구강, 갑상선, 유방, 자궁, 뼈 등 몸 여기저기를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혈압을 재고, 피를 뽑고, 소변을 받아서 몸상태를 체크해보기도 했지만, 정작 위장은 안 들여다봤다. 자궁검사를 위해 질속에 막대기따위를 넣는 행위도 너무 끔찍했는데, 위장에 호스를 끼우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위장건강은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 외에는 대부분 기능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고 신경성인 것 같다.


퇴근하고 다이소에 들러서 주방수도 셀프보수작업을 위해 필요한 물건 몇가지를 샀다. 어제인가 아래인가 주방수도에서 물이 새는 것을 발견했다. 수도에서 물방울이 맺혀서 계속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데 어디에 구멍이 난건지는 잘 파악이 안 된다. 한동안 주방 바닥에 늘 물기가 있었는데 진짜로 물이 새서 그렇다는걸 이제야 알게되다니. 일단 수도겉면에 은색테이프를 감아볼 생각이다.


수도를 통째로 가는건 내 선에서는 무리일 것 같다. 세면대 수도 헤드를 가는 것과는 스케일이 다른 문제다. 다이소를 나와서 카페에 들러서 소금빵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해서 먹고 마시며 앉아서 이 일기를 쓴다. 다이소며 카페며 왜 이렇게 슬픈 발라드를 틀어주는지 모르겠다. 괜히 감상에 젖는다. 여기까지 쓰고 헬스장에 운동을 하러 갔다. 어제 했던 등운동을 또 하고 천국의 계단을 30분 동안 밟았다. 땀에 흠뻑 젖었고 기분전환이 됐다. 몸을 씻고 나오니 헬스장에 관장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닫는 시간까지 너무 늦게까지 있었더니 살짝 눈치가 보였다.


집에 와서 수도에 맺힌 물을 닦아내고 겉면에 은박테이프를 감았다. 잠깐동안이나 물이 안 새길래 효과가 있구나 싶었는데 잠시후 다시 물방울이 맺힌다. 도대체 물이 어디서 새어나오는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지치고 힘들다. 내일은 운동을 쉬고, 퇴근후 곧장 집으로 와서 싱크대를 다시 손봐야할 것 같다. 곰팡이커버 방수테이프도 샀는데 내일 같이 작업해야겠다. 그런데 어제 싱크대 안에서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린 것, 주방바닥이 매번 축축한 것으로 미뤄보아 수도 누수를 의심해봐야 하는건 아닌가 싶은데, 아아 고통스럽다. 내일 출근을 위해서 일단 자야겠다. 피곤해서 머리가 깨질 것 같다.


2023년 2월 17일


고민하던 마라톤 종목은 결국 건강달리기로 결정했다. 몇키로인지 기재가 안 되어있어서 정확히는 모르겠다마는 대략 5km 정도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기념품을 받을 주소를 회사로 지정했고 참가비 15,000원을 입금했다. 아마도 메달과 양말과 등번호와 안내책자를 보내줄 것이다.


기념티셔츠는 10km 이상부터 지급해서 건강달리기를 선택한 나는 못 받는데 어차피 집에 옷이 많아서 별로 탐나지는 않는다. 일단 마라톤 출전 그 자체에 의의를 두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볍게 응하지는 않겠다. 걷지 않고 달리겠다. 40분 이내에는 완주하겠다. 이 정도 목표는 설정해두고 시작하자. 연습할 시간은 충분하다. 이제 대회까지 대략 6주 남았다. 역시 뭐든 강제성을 가지고 하면 의욕이 생긴다.


집에 오니까 주방 싱크대 수도도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울고있다. 도대체 어디에서 물이 새는건지 알 수가 없다. 일단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고무패킹이 마모돼서 나사가 헐거워져서 그 사이로 물이 새어나오는 것 정도다. 테프론 테이프를 사와서 나사 감는 부분에 친친 감아볼까 싶어서 다이소에 갔더니 안 판다. 다이소에 웬만한거는 다 있다더니 정작 이게 없다. 철물점에는 있을 것 같은데 집 근처에 철물점이 있었던가.


일단 오늘은 너무 늦었고 내일이나 한번 알아봐야겠다. 다이소에 간 김에 빈 손으로 돌아오기는 아쉬워서 곰팡이커버 방수테이프를 사왔다. 간만에 싱크대 청소를 하고 모서리에 테이프를 발랐다. 싱크대 문을 열어보니 배관에서도 물이 샌다. 싱크대 바닥이 습기때문에 변색되고 변형됐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싱크대 바닥이 내려앉을 것 같다. 아 이거는 안되겠다. 도저히 오늘 손 못 보겠다.


케이스릴러를 두권 연달아읽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책을 많이 읽게 된다. 드라마 요약본 같은 것도 많이 보게 되고. 말괄량이 사이코패스는 완독했고, 깨어나지말걸 그랬어는 아직 덜 읽었다. 둘 다 읽을때만 재밌고 다 읽고나서 딱히 남는건 없다. 깨어나지말걸의 경우 뒷내용이 궁금해서 일단 끝까지 읽어볼 생각이다.


케이스릴러 시리즈 중에서는 이두온의 시스터가 가장 재밌었다. 이두온 책은 지금껏 타오르는마음과 시스터 총 두권을 읽어봤다. 둘다 너무 좋아서 언제 또 신간이 나오나 벼루고 있었는데 최근에 드디어 '러브 몬스터' 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이 드디어 출간됐다. 돈주고 구입해서 읽을까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기다렸다가 읽을까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2023년 2월 18일 토요일


오전에는 오빠의 결혼식에 다녀오고 오후에는 대화 모임에 다녀왔다. 그 사이에 시간이 비어서 스타벅스에 잠깐 들러서 커피도 마셨다. 동성로 중심에 있는 스타벅스였는데 그 사람 많고 시끄러운 매장 한가운데 놓여진 둥근 테이블에 혼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것도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다. 모임은 재미없었다.


결혼하는 오빠를 보니 눈물이 나왔다. 올해들어 아니 지난 몇년간을 통틀어서 이렇게까지 복잡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약간 '아름답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일단 결혼식장부터가 화려하고 예뻤으며 신랑신부를 포함해서 사람들 얼굴이 대부분 밝고 즐거워보였다. 생판 모르는 남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서 어쩌다 우연히 만나서 사랑을 하고 결혼이라는 계약을 통해 가족이 되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대단하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신세나 처지에 대한 처량한 마음과 신랑신부에 대한 부러운 마음 같은 것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들 감수성이 풍부한 모양이다. 모친은 결혼식장에 오는 차 안에서 내내 울었다고 했다. 아들을 이만큼 키워오며 겪어온 온갖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을 것이고, 기쁘면서도 온갖 감정들이 북받쳤을 것이다. 신부의 아주 오래된 절친이라는 사람이 무대 위에 올라와서 준비한 편지를 읽다가 울었다. 친척들 중 몇명도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울었다. 네 자식이니? 혹은 네가 낳았니? 네가 왜 우니? 등의 농담이 오고 갔다. 다들 울다가 웃다가 했다.


몇년전에 다녀온 지인의 결혼식과 괜히 비교가 됐다. 지인은 서른아홉살 후반에 친척어른이 마련해준 선자리에서 만난 동갑남자와 석달간의 연애를 마친후 마흔살에 초고속으로 결혼했는데, 결혼날짜를 잡아놓고도 외모관리를 전혀 안해서 제 아무리 신부화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어도 늙은 피부에 살찐 체형 등이 전혀 커버가 되지 않아서 도무지 예쁘다는 느낌을 가지기가 어려웠다.


일단 결혼식에 참여한 인원부터가 굉장히 적었으며 결혼식이 끝난후 단체사진을 찍겠다며 나온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지인의 경우 그나마 나와 회사 동료들을 포함해서 네다섯명 정도의 인원이 있었지만 신랑의 경우 지인이 단 한명도 올라오지 않았다. 그 결혼식을 통해서 '이왕 결혼을 할거면 가급적 젊고 예쁠 때, 축하해줄 사람이 어느정도 있을때나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에 비해 오빠의 결혼식은 분위기가 괜찮았다. 사람들이 모친 앞에서 신부를 칭찬했다. 인상이 좋다. 성격이 좋다. 며느리를 굉장히 잘 본 것 같다. 신랑신부의 절친이라는 사람들이 각각 두어명씩 무대 위에 올라와서 편지를 읽거나 축가를 불러주는 등의 퍼포먼스를 보였고, 직계가족과 친인척들의 단체사진을 찍은후 마지막으로 친구 및 지인들 단체사진을 찍을때에는 못해도 대략 5-60명 정도는 올라왔다. 그동안 내가 가봤던 결혼식 중에서 가장 사람이 많게 느껴졌다.


결국 결혼이라는게 나를 이만큼 키워준 부모에게 효도하는 관례이자 남들에게 보여주기식 행사 같은거라고 생각하니, 꽤 성공적으로 느껴졌다. 오늘 결혼하는 오빠를 보면서, 오빠는 이 사회가 요구하는 일련의 과제들을 충실히 수행하며 살아온 어른 같다는 생각을 했다.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시험을 통과하고 관료사회에 무사히 편입하기까지 성공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대접하고 축하와 인정을 받는다. 내가 할 수 없는걸 오빠는 잘도 척척 해낸다. 행복해보여서 좋다.


2023년 2월 19일 일요일


대략 8시쯤 일어났지만 무기력해서 계속 누워있다가 12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독서모임에 갔다가 모임원들과 같이 이른 저녁식사로 돼지국밥집에서 국밥을 먹고 귀가했다. 술생각이 나서 맥도날드에 들러서 스낵랩과 감자튀김을 안주거리로 사들고 집에 와서 배가 딱히 고프지도 않은데 꾸역꾸역 먹고 마셨다. 스낵랩을 안주삼아서 호가든 작은캔 하나를 마셨고, 배가 불러서 감자튀김은 남겼다.


'만만하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만한 취급을 자주 받기도 하지만 아예 대놓고 만만하다 라는 평가를 받은 적도 적지 않다. 사람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3요소는 외모-성격-백그라운드 정도가 되겠다. 여기서 백그라운드라고 하면 직업, 집안, 특기 정도려나. 내가 그 3요소 중 뭐 하나 특출한게 없어보이기는 하다. 백그라운드를 바꾸는 것은 너무 힘이 들지만, 외모 정도는 운동과 스타일링 등의 노력으로 약간은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성격은 외모가 개선되면 자신감이 붙으면 알아서 좋은 방향으로 바뀔 것 같다. 혹은 포장이 가능하다.


저녁에는 친구가 보자고 해서 잠깐 만났다. 만나기가 싫어서 차일피일 시간과 날짜를 계속 미루다가 마지못해서 일요일 저녁에 잠깐 만났다. 이렇게  흐지부지 관계가 이어진다. 하루종일 먹고 자고 밖에 나가있다가 들어왔더니 집은 엉망진창이고 나는 매우 몹시 엄청나게 피곤하다. 시간과 건강 관리가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2023년 2월 20일


올한해동안 팔달동에 있는 텃밭을 빌려서 농사를 지을 계획이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분양비까지 입금완료했다. 일단 구좌수가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신청한다고 다 되는건 아니다. 신청자수가 분양 구좌수를 넘지않으면 되는데, 웬만하면 될 것 같으면서도 사람들이 얼마나 이 사업에 관심이 많을지 잘 모르겠어서 혹시나 사람이 몰려서 내가 떨어질까봐 살짝 불안하다. 꼭 당첨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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