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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Dec 13. 2023

2023년 2월 일기모음 1

2023년 2월 1일 수요일


특별할 것 없는 하루다. 아침에 알람소리를 듣고 눈뜨고 씻고 출근하고 일하고 점심을 먹고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잠잘 시간이 다되어버린 대충 뭐 그런 별 볼 일 없고 시시한 하루다. 침대 위에서 뒹구는 동안 유튜브로 히사이시조 피아노연주곡을 듣고, 시골생활에 관한 다큐멘터리와 스트로베일하우스에 관한 영상을 봤다.


스트로베일이란 볏짚에 황토미장을 해서 만든 집을 뜻한다. 네이버블로그에서 미국농부 조엘의 혁명도 봤다. 다큐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는 분명 다른 것이겠지만 내가 주로 느낀 것은, 미국농부들은 건장하고 잘생겼구나 멜빵바지를 작업복으로 입은 모습이 멋있구나 하는 정도. 나도 미국농부 스타일로 한번 스타일링해볼까 싶다. 때마침 집에 멜빵이 두 개나 있다.


2023년 2월 3일 금요일


오늘 사소한 일로 인해 내가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한때 지인들로부터 벽이 없다, 수용적이다 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사실은 내가 그 지인들하고 그저 생각과 의견이 비슷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애초에 서로 다른 주장으로 인해 말싸움을 할 일이 없었을 뿐인데 지인들 눈에는 내가 단순히 그런 성격의 인간으로 보였을 뿐이라는 뜻이다. 나와 상반되는 주장을 하는 인간을 맞닥뜨렸을 때 내가 얼마나 자기주장을 내세우고 상대를 이겨먹으려고 혈안이 되는지를 그동안 경험할 일이 별로 없어서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근데 별 소득도 없는데 남을 이겨먹으려고 애쓰는 건 멍청한 짓 같다. 그래서 나한테 돌아오는 게 뭔지를 생각해 보면 굳이 자기주장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말이든 행동이든 그게 뭐가 됐든 일단 생각을 먼저 하자. 생각 없이 그냥 하지 말자.


2023년 2월 4일 토요일


퇴근하고 집에 와서 '용의자 X의 헌신'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집안일을 했다. 이미 영화로 봐서 내용을 아는 소설이지만 알고 들어도 재밌다. 하긴 영화도 내 취향에 맞아서 서너 번은 봤다. 집안일은 청소, 빨래, 설거지 등의 기본적인 것들을 우선 했다. 속옷을 모두 모아서 삶았고, 에어프라이어 바스켓과 그릴트레이를 분리해서 물과 세제로 씻은 후 물이 빠지게 엎어놨다.


빨래는 매번 집안에 너는데 날씨가 추우니까 창문도 잘 안 열고, 욕실문이 안에서 닫으면 안 열려서 샤워할 때마다 문을 열어두니 수증기가 방 안으로 모두 유입되고, 전기세 아깝다고 맨날 보일러도 안 돌리고, 이런 행동을 이번 겨울 내내 반복했더니 결국 벽지에 곰팡이가 생겨버리는 끔찍한 결과를 얻었다.


주방 쪽 벽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침대 머리맡 벽지에 곰팡이가 생긴 것은 너무 난감하다. 침대 맡 창문에 습기가 찰 때부터 주의했어야 했는데. 휴지에 알코올을 묻혀서 닦아도 소용이 없다. 곰팡이제거제가 있다는데 한번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저녁에는 오랜만에 본가에 가서 모친을 잠깐 봤다. 가족들과 한집에서 부대끼며 살 때는 감정 상하는 일도 많았는데, 지금은 웬만해서는 감정 상할 일이 없다. 서로 좋을 때나 만나지 굳이 감정 상해가며 만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기만 해도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오빠가 새 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놔두고 간 안 입는 옷과 몇 가지 물건들을 나더러 챙겨가라길래 잔뜩 챙겨서 왔다. 오빠 옷은 웬만하면 나한테 다 맞다. 탐나는 물건들이 꽤 많아서 트렁크에 담아서 집까지 끌고 왔다. 올 한 해 동안 더 이상 옷을 안 사도 될 것 같다.


2023년 2월 5일 일요일


평소에 전기세를 아낀다고 난방을 거의 안 하다가 어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오랜만에 온도를 높였다가 아침에 깜빡하고 온도를 조절하지 않고 그대로 외출해 버렸다. 설상가상 역시나 생전 하지도 않던 환기를 시킨답시고 맞바람 통하라고 집안 창문을 죄다 열어놓고 외출했다.


지상철 안에서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았지만 다시 돌아가기가 애매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럴 경우 어떤 행동을 취해야 가장 합리적일까.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나오자니 시간과 교통비가 낭비될 거고, 그냥 일정을 소화하자니 연료가 낭비된다. 전자의 경우 일단 몸이 편하고 후자의 경우 수고스럽다.


둘을 비교했을 때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그나마 덜 손해일까. 정확하게 계산이 되지가 않아서 그냥 수고를 줄이는 쪽을 택했다. 난방비가 얼마나 더 나왔을지, 전기세 고지서가 나와봐야 알 것 같다. 이미 엎질러진 물, 마음을 비워야겠다. 오전에는 글쓰기모임에 오후에는 독서모임에 갔다.


2023년 2월 6일 월요일


점심때 배달의 민족으로 파리앤테스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해서 먹었다. 요즘은 밖에서 한 끼 식사를 하려면 만원 정도는 기본으로 써야 한다. 집에서 도시락 싸가서 먹으면 이보다 훨씬 싸게 먹을 수 있는데, 게으름 때문에 돈이 술술 샌다. 하지만 역시 돈을 들인 만큼 편리하다.


배달최소금액 때문에 샌드위치를 두 개나 주문했다. 처음에는 점심저녁으로 하나씩 나눠먹을 생각이었는데 먹다 보니 맛있어서 점심때 한 개 반을 먹어버렸다. 남은 반은 퇴근 후 집에서 저녁식사로 먹었다. 빵 속 소스가 새어 나와서 빵이 눅눅해졌길래 에어프라이어에 살짝 돌려먹었더니 빵이 바삭하고 따뜻한 것이 식감이 좋아서 점심에 먹었을 때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오랜만에 헬스장에 갔다. 등운동과 유산소운동을 했고, 운동전후로 샤워를 했다. 나는 물이 좋다. 양껏 물을 마시고 물로 몸을 씻는 행위, 모든 게 다 좋다. 헬스장 샤워장은 내 집보다 훨씬 따뜻하기 때문에 씻는 게 편하다. 씻고 나와서 문턱의 물을 닦아내는 수고도, 수건 빨래가 쌓일 염려도 없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니 운동을 떠나서라도 역시 헬스장을 계속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스등록기간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아서 18만 원을 주고 6개월치 연장을 했다. 출석률이 너무 저조해서 그냥 이번까지만 다니고 더 이상 다니지 말까도 생각했는데, 막상 오늘 오랜만에 운동을 하고 나니 역시 안 다니기는 아쉽겠다는 마음도 들고, 앞서 언급한 이유도 있고 해서,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결제했다. 이제는 진짜 제발 열심히 좀 해보자.


2023년 2월 7일 화요일


어제 자기 전에 소변에서 분홍색 혈이 살짝 묻어 나오길래 생리 때가 다 됐구나 싶었는데,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생리가 시작됐다. 날짜를 계산해 보니 지난 생리 이후 대략 31일 만이었다. 생리주기가 오랫동안 35일이었는데, 며칠 앞당겨졌다. 비록 주기가 달라졌긴 하지만, 28일 전후를 가장 이상적인 생리주기로 알고 있기 때문에 35일보다는 30일에 가까운 숫자가 뭔가 더 건강한 느낌이 든다.


정확한 데이터 없이 어디서 대충 들은 거 기억해 내서 아무렇게나 쓰는 건데 나중에 한번 제대로 검색해 봐야겠다. 생리 첫날답게 혈량도 많고 배 허리 기타 등등 여기저기에 통증도 있으며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저조하다. 당연하게도 운동은 무리다. 이번주동안은 생리핑계 삼아 푹 잘 쉬고 다음 주부터 열심히 운동하자.


오늘 퇴근 후 치과 스켈링 예약 (야간진료) 을 해둔 날인데, 예악이 제대로 안 잡혀서 결국 못 갔다. 가만 생각해 보니 여기는 예약을 하면 예약확인문자를 보내주는데 여태 확인문자를 못 받은 것이다. 혹시나 싶어서 출발 전에 병원에 전회를 걸어서 예약확인을 해보니 예약된 진료가 없다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뭔 상황이냐.


설연휴 전부터 일찍이 전화예약을 했었고 예약이 많아서 다음 달로 넘겨서 겨우 예약을 잡은 거였다. 그때 난 도대체 누구랑 통화를 한 것인가. 통화녹음해 둔 걸 들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예약 없이는 진료를 받을 수 없고, 현재도 예약이 많아서 또 몇 주 후에나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시 예약을 잡는 걸 관두고 일단 귀가했다. 하마터면 모르고 갈 뻔했다. 미리 전화해 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에게서 야간진료를 하는 다른 치과를 소개받았는데 그곳으로 병원을 한번 옮겨볼까 싶다.


 2023년 2월 8일 수요일


봄에 뭐 할만한 거 없나 검색해 보다가 마라톤 개최 소식을 알게 됐다. 아 맞다 이런 게 있었지. 지난 몇 년간의 마라톤 대회는 아예 개최를 안 하거나, 언택트 즉 비대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각자 달리고 인증하는 방식) 으로 하거나, 인원을 대폭 줄여서 제한적으로 진행하는 등 코로나 상황에 맞게 시대에 맞춰가며 적절하게 진행해 왔다.


그러다가 올해 드디어 코로나 이전 방식 그대로 '정상' 개최를 한다고 한다. 근 4년 만이다. 최근에 사는 게 너무 재미없고 시들시들한 느낌이 들어 뭐라도 해서 활기를 찾아야지 벼루고 있던 찰나였는데 이 소식을 접하니 무조건 지르고 봐야겠다 싶었다. 앞으로 대회까지 50일 정도 남았으니 지금부터 찬찬히 달리기 연습과 체력관리 등을 준비하면 될 것 같다.


한 가지 고민되는 것은 10km와 건강 달리기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이다. 하프는 뭐 나한테는 거의 넘사벽 수준이라 아예 선택사항에 포함시킬 수도 없다. 10km 마라톤 경험이 있어서 10km가 대략 어느 정도 거리일지 가늠할 수 있는데, 솔직히 내 체력에 살짝 버거운 정도이긴 하다.


그냥 참여하는데 의의를 두겠다는 의미로 건강 달리기를 선택해서 적당히 몸 사리며 달리는 게 좋을지, 그래도 이왕 나가는 거 10km 선택해서 조금 힘들더라도 제대로 달리는 게 좋을지, 며칠 고민해 보고 최종결정해야겠다. 연습할 기간이 아직 50일이나 남아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결정하자.


2023년 2월 9일 목요일


오늘 내 티스토리 계정이 7일간 로그인 제한 조치를 당했다. 청소년 유해 정보를 올려서 서비스약관을 위배한 것이 그 사유다.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겠으나 대략 영화 '몽상가들' 리뷰를 작성하면서 성과 관련된 단어들을 남발한 것이 원인이 됐다고 추측된다. 혹은 글 밑에 첨부한 영화포스트가 문제가 됐을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고, 가릴 데 다 가려서 찍은 사진 이기는 하나 나름대로 자극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쓴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적고 싶지만 만약 특정단어들 때문이라면 또 제한을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다. 이 글은 추후에 티스토리에 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홍길동의 기분이 이런 걸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아무튼 리뷰를 작성하고 발행버튼을 누르는 순간 갑자기 계정이 로그아웃처리 됐고, 재접속하려고 하니 규제된 계정이라고 안내문구가 뜨며 로그인이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스럽고 허탈했는데 지금은 차라리 잘 됐다 싶다. 티스토리를 시작하고 그동안 중독처럼 매일 접속해서 조회수랑 수익을 확인하고 엄청나게 집착했었으니 한 번쯤은 쉬어갈 수 있게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했다. 이참에 그냥 푹 쉬어야겠다. 근데 티스토리가 막혔다고 아무것도 안 쓰기에는 허전하니까 당분간은 휴대폰 메모장에 일기를 쓰고, 제한이 풀리면 한꺼번에 업로드해야겠다.


퇴근 후 카페에 가서 조금 앉아있다가 집에 왔다. 동네에 생긴 지는 좀 됐는데 처음 가본 카페다. 디저트종류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고르기가 힘들었다. 디저트 고르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 거라고 한참을 고민한 후 아메리카노와 콘치즈타르트를 고르고 5,500원을 지불했다.


그렇게 먹고 마시며 정성 들여서 영화리뷰를 작성했고 그렇게 정성껏 쓴 글로 인해 내 티스토리 계정이 청소년 유해판정을 받고 일시정지를 먹었다 땅땅. 문제 되는 게시물을 삭제하는 걸로 그치지 않고 아예 계정 자체에 접속을 못하게 하는 조치가 당황스럽긴 한데, 생각해 보면 그동안 세상에 워낙에 흉흉한 사건들이 많았으니까, 필요악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방 사건)


2023년 2월 10일 금요일


"제대로 된 사람이었다면 여왕벌에게 어장관리를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리숙한 사람들이 여왕벌에게 당한다."


모임단톡방에서 어쩌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게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나는 이성 보는 눈이 좋고 나쁜 거랑 사람됨됨이랑은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퐁퐁남이 있다. 이들이 과연 어리숙하고 제대로 된 사람들이 아닐까. 사실 퐁퐁남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최소한 자기 가족을 먹여 살릴 능력과 책임감을 갖춘 사람들이다.


모임단톡방에서 이상형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매번 대답이 달라진다. 이번에는 '흠 있는 사람' 이라는 다소 엉뚱한 대답을 했다. 반은 진담이고 반은 농담이다. 확실히 완벽하거나 가진 것이 많은 사람보다는 뭔가 아쉬운 것이 있고 결핍이 있는 사람에게서 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껏이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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