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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Dec 13. 2023

2023년 3월 일기모음 1

3월 1일 수요일


친구네 개가 어젯밤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을 오늘 아침에 카톡으로 전해들었다. 친구의 개가 죽은 것에 대해서는 딱히 감정이 느껴지지 않지만 적어도 친구의 슬픔에는 감정이 느껴졌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친구가 슬프니까 나도 슬프다 혹은 저 상황에 감정이입이 된다 하는 식의 공감을 하는 감정이라기보다는 그저 슬픈 친구를 위로해줘야겠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 책임감이 이 친구와의 관계유지를 위함이기도 하겠다.


카톡으로 구구절절 떠들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통화할래?' 라는 짧은 답장을 보냈고 이 한마디에 곧바로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얼마나 울었는지 친구의 목소리가 잔뜩 쉬어있다. 나는 금방 일어나서 목이 잠겨있다. 통화가 시작되자마자 두 여자의 걸걸한 음성이 쉬지않고 떠들어댔다. 장장 1시간 동안 전화 통화를 했다.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3월 2일 목요일


밤에 잠이 안 와서 새벽에 2시 훌쩍 넘어서 자고 4시에 깨서 2시간동안 폰 만지다가 꿀물 한잔 타마시고 6시에 운동하러 갔다. 2시간도 못 잔 셈이지만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아침식사로 맥도날드에서 제로콜라와 쉬림프스낵랩을 사먹었다. 빈속에 콜라가 들어가니 살짝 자극되는 느낌이 있었지만 무시하고 얼른 먹고 일했다.  


점심때는 간만에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었다. 입은 맛있는데 속이 살짝 불편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견디기 힘든 수준의 복통이 느껴졌다. 약을 먹고나서 약간 호전됐지만, 견딜 수 있는 수준이 됐을 뿐이지 완전히 편안한 상태는 아니었다. 퇴근할 때까지 내내 컨디션이 저조했고 퇴근하고나니 좀 괜찮아지는 듯했다.


저녁을 굶을까 생각하다가 허기가 져서 그냥 먹었다. 다행히 저녁식사를 할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두부구이와 배추를 먹고 후식으로 팝콘을 먹었다. 사실 최근에 배가 자주 아픈데, 계속 아프다가 괜찮다가 한다. 현재 위장상태가 건강하지 못한 상태인 것 같고, 위장상태가 좋지 못한 상태에서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기름진 음식을 먹은게 오늘 복통의 원인인 것 같다. 상태가 괜찮아질때까지 음식조절을 해야겠다. 건강하게 좀 살자.


건강해지자 = 좋은 사람이 되자.

아픈 것만으로도 곁에 있는 사람에게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


3월 3일 금요일


공영텃밭분양에 신청서를 제출해놓고 당연히 되겠거니 설레발만 오만상 떨었는데, 떨어졌다. 일단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아서 명단을 도대체 몇번을 보고 또 봤는지 모른다. 그 다음에는 현실을 받아들이되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밀려왔다.


최근에 이 일만큼 나를 설레게 했던 일이 또 있던가. 너무 기대를 했더니 괜한 배신감도 들고 실망감도 밀려오고 기운도 빠지고 엄청나게 침울해지고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막 농부의 꿈이 좌절됐다느니 나가리가 됐다느니 온갖 궁상을 다 떨었다. 결과 발표 듣고 이틀인가 지났는데 아직도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하다하다 이건 음모라며 의심까지 싹 트기 시작한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나 싶겠지만, 너무 큰 기대를 한 탓이다.


추첨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 일단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이름 끝자가 블러처리돼있다. 내 이름과 중간까지 같은 사람이 있어서 혹시 이거 난가 싶어서 봤더니 뒷번호가 다르다. 추첨에서 떨어졌으니 분양비를 환불받아야하는데, 오늘 중으로 보내준다고는하는데, 두시가 훌쩍 넘어서도 입금이 되지 않는다. 또 의심, 아니 망상이 싹트기 시작한다.


설마 나 당첨된거는 아니겠지? 내가 붙었는데 명단에 번호를 잘못 입력해서 올리는 실수가 있었던건 아니겠지? 헛된 희망을 가지며 텃밭상담소에다가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카톡문의를 보내봤다. '님의 이름은 없습니다' 라고 깔끔하게 알려주시는게 아니라 '없으면 탈락입니다' 라는 식으로 답변이 모호하다. 결국 환불금은 여섯시가 다 되어서 입금이 되었고, 떨어진게 확실해졌다. 나 너무 구질구질하다.


같이 신청했던 친구는 시스템 오류로 인해 신청이 누락됐다. 나는 받은 문자를 친구는 못 받아서 알게됐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상담신청을 했으나 신청자가 워낙에 많아서 다시 신청을 받아주기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친구의 잘못도 아니고 시스템 문제인데도 그렇다.


올한해동안 함께 텃밭농사를 하기로 했는데 친구도 안 되고 나도 안 되고 난감한 상황이다. 또 다른 기회가 없을까 싶어서 굳이 공영사업이 아니더라도 민간으로라도 텃밭을 임대할 수 없을까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이 사업이 어제부터 2차 접수를 시작했다는 게시물을 보고 곧바로 친구에게 공유했다.


게시물에 의하면 **도서관에서 방문접수를 받는다길래, 내 카톡을 받은 친구가 오늘 낮에 거기 다녀왔는데, 알고보니 내가 보내준 게시물이 작년 게시물이었던 것이다. 년도를 안 보고 월일만 보고 최근 게시물인지 알아버린 것이다.


2차 접수를 받는다는 것은 현재 인원이 미달이라는 뜻일텐데, 그럼 내가 떨어질리가 없는데, 신청자를 떨어뜨려놓고 또 뽑는다는게 이해가 가지 않는데, 어제부터라고 해놓고 아직 온라인 신청이 열리지 않은 것도 이상한데, 처음부터 의심을 해봤어야했다. 잘못된 정보로 인해 친구를 헛걸음하게 했다. 뭔가 절박한 마음에 감정이 앞서서 실수를 해버린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건, 같은 구에 거주하시는 모임원분께서도 이 공영텃밭임대사업에 분양신청서를 내셨고 그 분은 붙으셨는데, 내 탈락소식을 듣고는 자신의 땅에서 함께 농사를 짓자고 고마운 제안을 해주신 것이다. 딱히 같이할 마음이 없는데 분위기상 혹은 예의상 하신 말씀일수도 있지만 진짜 같이 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하시는 말씀같기도 하다.


이참에 모임원분과 친분을 쌓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느끼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일단 수락했다. 이러나 저러나 남의 땅 빌려서 하는건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내 명의로 빌린 내 땅에서 남 눈치 안 보고 마음 편하게 농사를 짓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모임원분께 뭔가 불편함을 주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신경이 쓰인다.


근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올해 텃밭농사를 시작할 수가 없다. 모친에게 연락해서 외가친척땅에서 농사를 지어볼까도 생각중이다. 모친은 외가로부터 재산 한푼 못 받았지만 그래도 나머지 형제들은 받은 땅이 많다. 하지만 웬만해서는 집안사람들과는 엮이고 싶지 않다. 그리고 얘기한다고해서 무조건 될지도 모르겠다. 딱히 서로 의 상할 일이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지만 뭔가 불편하다.


일단 모임원분의 땅에서 농사를 시작하게된다면 분양비를 반 드려야겠다. 땅을 반을 나눠쓰게될지 약간만 쓰게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반은 드리는게 예의상 맞을 것 같다. 어차피 나는 탈락한 사람이라 굳이 분양교육에 참여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모임원분과 만나서 대화도 나눠봐야하고 일단 분양교육때 가보는게 좋겠다. 설마 명단에 없다고 해서 못 들어가게 하는건 아니겠지. 교육 받기 전까지 무슨 수가 나면 좋겠다는 생각도 내심 해본다.


3월 7일 화요일


퇴근하고 가마치통닭에서 닭똥집튀김을 포장해와서 호가든과 함께 먹었다. 치킨은 혼자서 한마리를 다 못 먹지만 닭똥집은 어쩐지 거뜬하다. 후식으로 푸루푸루푸딩에서 푸딩도 주문해서 먹었다. 하루종일 기분이 너무 안 좋아서 뭘하면 좋아질까 싶어서 술과 음식으로 풀어보자 싶었는데 확실히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좋다. 하지만 한참뒤 술이 깨고나니 현타가 밀려왔다. 그래도 역시 혼술이 좋다.


3월 8일 수요일


더글로리 시청을 위해서 넷플릭스에 재가입했다. 마지막으로 언제 넷플릭스를 이용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쓰다보니 작년에 해킹사건을 겪으면서 넷플릭스도 잠시 이용을 중단했던 것으로 대충 기억이 난다. 아무튼 올해는 처음인 것 같고 굉장히 오랜만이다. 더글로리는 유튜브로 이미 몰아보기 영상을 본 후라 어느정도는 내용도 알고 신선함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유튜브로 볼때는 놓친 장면들을 세세하게 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5,500원짜리 가장 저렴한 요금제를 선택했다. 퇴근후 집구석에서 넷플릭스만 주구장창 보다가 잔다.


3월 9일 목요일


점심때 밥을 먹고 돌아오니 내 책상 위에 미에로화이바 한박스가 놓여져있다. 물건을 대신 받아준 옆자리 직원 말로는 대략 아버지뻘 정도 되는 덩치가 크고 말투가 살짝 어눌한 남자였고, 자신은 그냥 손님인데 나에게 너무 고마워서 성의표시를 하는거라고 했다. 내가 사람을 착각하고 잘못 전달된거 아니냐고 하니까 분명 나를 지목한게 맞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짐작가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고맙게 한 일이 있었던가. 아무리 기억을 짜내봐도 전혀 모르겠다. 이 사람이 누군지 내 어떤 태도에서 고마움을 느꼈는지 알고 싶다. 다음에 와서 음료는 잘 마셨냐고 아는 척을 해주면 좋겠다. 미에로화이바는 직원들과 나눠 마셨다.


3월 10일 금요일


8년을 탄 자전거를 이제는 버리기로 했다. 8년동안 타고다니면서 대구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도 많이 찍고 좋은 추억이 많다. 그러다가 최근 1년 정도는 자전거를 거의 안 탔다. 마당이 없어서 자전거를 보관하기가 힘들었고 한동안 외부에 방치해뒀었다. 중고거래를 잘하는 친구에게 주면 친구가 팔아서 이득이 챙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줬다.


얼마에 올릴지 모르겠으나 판매가가 대략 3만원에서 5만원 정도 예상된다. 얼마전에는 쓰던 밥솥을 줬더니 금세 팔아서 수익을 챙겼다. 중고거래 수완이 좋아보인다. 이것저것 중고로 팔라고 준게 많은데, 내 입장에서는 물건을 처리해서 좋고 친구 입장에서는 수익이 생겨서 좋겠지.


나같은 경우 수개월전에 중고거래를 두어번 해봤는데 모두 멀쩡한 물건을 아주 헐값에 유혹적을 내놔서 구매자가 내 집으로 내가 정한 시간에 맞춰서 직접 물건을 가지러 오게 만들었다. 동시에 여러명이 문의가 와서 현재 상황을 설명하니 먼저 송금부터 할테니 무조건 자기에게 팔라는 사람도 있었다. 조금만 수고스러워져도 거래하기가 싫다. 귀찮은게 제일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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