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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cle K Sep 06. 2019

산 자들 - 장강명

자르기, 싸우기, 버티기

 '역시'

 책을 덮으며 자연스럽게 탄성이 나다. 믿고 읽는 장강명 작가의 작품이었다.


 아내가 도서관에서 재미있는 행사를 하고 있다며, 밝은 얼굴로 작은 박스를 하나 들고 나온다. 박스 안에는 책이 한 권 들어있고, 박스 바깥에는 3개의 해쉬 태그(#)로 설명되어 있었다. 책의 내용도 저자도 제목도 전혀 모르는 일명 블라인드 북이다. 하지만, 나는 심드렁한 반응이다.


 "그건 이미 많은 스타트업 회사들이 하고 있어. 역시 공무원들이 하는 일이란 새로운 게 없어..."

 "이미 했던 일이라도 그걸 적용한다는 것도 대단하지 않아? 게다가, 이 책은...!!"


 아내가 박스를 보여준다.


 #한낮의 노동
 #먹고사는 문제를 다룬 소설
 #기자 출신 작가


 아내가 이렇게 기분 좋게 말하는 이유는 분명 나와도 연관이 있으리라는 추측에 운전을 하며 잠깐 생각해 본다. 내가 아는 기자 출신 작가는 바로 그였다.


 "장강명??!!"

 "이거 내가 읽고 싶던 장강명 작가 신작이야!!"


 아내가 박스를 열어본다. '산 자들'이라는 책이 한 권 들어있다.


 책은 10개의 단편 연작 소설로 엮어져 있다. 2010년 이후 한국의 노동과 경제 문제라는 굉장히 무거울 수 있는 주제나의 친구, 이웃 또는 내가 겪은 것처럼 생생하게 풀어낸 이야기들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어떤 작품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나이가 들며 언론에 대한 신뢰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나에게, 과거 또는 현재의 사건들을 언론에서 읽은 내용이 아닌 사건 당사자와 관계자들의 입장에서 풀어낸 이야기들은 꽤나 흥미롭다. 밤이 깊었지만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어 끝까지 읽어내고야 만다.


 장강명 작가의 책에서 볼 수 있는 깊은 자료 조사와 탐구가 역시나 돋보인다. 소설은 그저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1차원적으로 생각했던 나의 생각을 무참히 깨뜨린다. 물론 이전에 좋아했던 '태백산맥', '아리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삼국지' 등의 책도 분명 어느 정도의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인 것은 알고 있지만, 아마도 장강명 작가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내가 경험한 일들에 대한 작품들이라 더욱 감정 이입이 된 것 같다.

알바생 자르기

 정규직의 시각에서 바라본 비정규직의 이야기이다. 마지막 한 단락 비정규직의 입장이 나오는데, 짧지만 굉장히 충격적이다.

 "이게 처음부터 다 계획이 돼 있던 거니?"


대기발령

 회사의 사정으로 자회사로 옮겨야 하는 직원들이 거부하자 대기발령이 났던 과거의 일에 대한 회상이다. 상상 속에서만 생각해 봤던 일을 대기발령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애절하게 풀어나간다.

 "자기가 돈이 있다고 남의 존엄을 무시하면 안 되지. 그게 갑질이잖아."


공장 밖에서

 법정관리로 인해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회사의 상황에서 구조조정이 된 자들과(죽은 자들) 구조조정이 되지 않은 자들(산 자들)의 이야기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함께 근무했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그들의 선택은 정말 비참한 자본주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을 치며 조립 공장으로 달려갔다."


현수동 빵집 삼국지

 인근에 위치한 빵집 자영업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짓밟아야 하는 자연인들의 안타까운 상황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어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사람 사는 집

 살던 곳이 재건축 지역으로 결정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공권력과 싸우게 된 사람들 이야기이다. 과연 누가 그들을 '투쟁의 길'로 들이게 만든 것일까.

 "갑자기 무섭네."


카메라 테스트

 아나운서 지원자가 시험을 치르기 위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어려운 취업 환경을 '아나운서'라는 특별한 직종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괜찮습니다. 일어나서 계속 읽으세요."


대외 활동의 신

 취업을 위해 학교 생활보다 대외 활동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대학생들의 현상황을 꼬집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본인의 판단이다.

 "처음부터 컵에 물은 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반 컵의 물을 마시느냐 아니면 그마저도 마시지 못하느냐였습니다."


모두, 친절하다

 주인공의 운이 나빴던 하루에 관한 작품인데, 묘하게도 나에게는 너무도 일반적이고 평범한 하루와 같은 이야기이다.

 "달리 뭐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으니까요."


음악의 가격

 저자가 직접 만난 뮤지션의 현상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운로드와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이미 빠른 변화를 겪은 음반 시장과 곧 다가올 전자책과 관련한 저자의 걱정이 '도덕경'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그러면 좋은 음악은, 다시 소중해질지도 몰라"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

 고등학교 사학비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에게 꼭 필요하지만, 말하기 저급하다 치부할 수 있는 먹고사는 문제인 '급식'으로 아주 가볍게 풀어냈다.

 "아니면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


 얼마 전 강원국 작가의 강연을 들었다.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한 여러 가지 노하우를 말씀해 주셨는데, 그중 하나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모두 읽어보면 나도 모르게 그 작가와 비슷하게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휴직 후 장강명 작가의 책을 많이 읽었고, 몇 권만 더 읽으면 모든 책을 다 읽을 듯싶다. 물론 그렇게 된다고, 강원국 작가의 얘기처럼 바로 '나=장강명'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장강명 작가의 더 좋은 작품을 빨리 만나기를 바라는 '팬심'으로 응원할 뿐이다.

 이런 혼탁한 사회에 자기 주관이 또렷하고 시대정신을 가진 작가가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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