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테니스'라는 것을 아는 주변 분들은, '나도 테니스를 배워보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테니스는 몸으로 배우기도 어려운 운동이지만, 경기 규칙과 용어도 쉽지 않다. 애드 코트, 듀스 코트, 러브, 폴트, 더블폴트 등 경기에 사용되는 단어도 수능 영어 시험마냥 난해한데, 점수마저도 언제는 한 포인트에 15점이 오르고, 언제는 10점이 오르며 내가 수학을(아니 산수를) 이렇게 못했나 싶을 정도로 경기를 보는 사람, 하는 사람 모두 힘들게 하는 운동이다. 실제로 지난 주말 코트에서도 나름 운동을 오래 했던 동호인들 임에도 불구하고 점수 시비가 붙어 한참 동안 과거를(불과 몇 분 전이었지만) 회상하며 서로의 생각을 맞춰가는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주말 가족 테니스]
테니스의 많은 용어 중 나는 '렛(Let)'이라는 경기 규칙을 좋아한다.
영어사전에서 '렛(Let)'은 '1. [동사] 놓아두다, 2. [동사] 허락하다, 3. [명사] 레트(테니스에서 제대로 들어오기는 했으나 네트에 닿았다가 들어온 서브)'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테니스 시합 중 심판이 '렛(Let)'이라고 외친다면, '조금 전 플레이는 잊고 처음부터 다시 해'라는 의미이다.
선수들이야 대부분 독립된 코트에서 경기를 하거나, 코트가 인접해 있더라도 서로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분리가 되어 있고, 우아한 컨트롤로 옆 코트에 공이 넘어가는 일이 없기 때문에 '렛(Let)'은 사전에서 정의하듯이 '서브가 제대로 들어갔지만, 네트에 닿았으니 무효!'인 경우가 대부분 해당된다.
하지만, 시합 중 공이 훼손되었을 경우, 옆 코트의 공이나 그 밖의 물건이 들어와 방해가 된 경우에도 '렛(Let)'은 사용된다.
[열기로 가득한 코트]
옆 코트와의 간격이 좁은 우리 아마추어 동호회 경기 중 '렛(Let)'은 대부분 선수들과 동일하게 서브할 때 네트에 닿는 경우(일반적으로 네트(Net)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렛(Let)이 맞는 표현이다), 다른 경우는 옆 코트의 공이 다른 코트에 들어갈 때이다. 나름 익숙한 코트에서 많은 경기를 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친 공이 다른 코트로 넘어가는 순간의 미안함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특히나 중요한 점수를 내는 듯한 분위기에서는, 내가 친 게 아닌 척 일부러 먼 산을 바라보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그때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분명히 그 코트는 랠리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쪽은 아쉬워하고, 다른 쪽은 고마워한다.(물론 정말 무안할 정도로 화를 내는 분도 간혹 있다.) 경기를 하다 보면 기세라는 게 있기는 하지만, 신(神)이 누구에게 최종 승리를 손에 쥐어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공격하던 팀의 볼이 네트에 걸리거나 아웃이 될 수도 있는 거고, 수비하던 팀이 어렵게 받은 공이 아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테니스 규칙 중 '렛(Let)'이 참 마음에 든다.
경기 당사자들로 인한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 지금 경기 내용은 잠깐 무승부로 합시다. 대신, 다시 시작하는 경기에서 결판을 냅시다!
어느 한쪽이 이기기 위해서 경기를 하지만, 승리를 향한 열기로 뜨거워진 코트를 잠시 식히면서, 나의 마음도 재정비할 시간이 생긴다. 엄청 냉혹한 사회생활을 오래 경험해서인지, 잠시나마 이 짧은 순간의 평화가 너무도 평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