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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Aug 04. 2017

바닷가 노동자 2일차

2017년 8월 3일

바닷가 노동자 2일 차




 

1. 

랄프와 야니카가 떠났다. 다음 목적지는 대구라고. 대구에서 이틀 정도 머물고 부산으로 간답니다. 아무쪼록 이 살벌한 무더위를 잘 이겨내시길 바라고. 뜻밖의 만남이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참 친절하고 예뻤던 사람들. 격포 터미널에서 헤어질 때는 서로가 많이 아쉬워했다. 모든 헤어짐이란 유쾌할 수만은 없는 거니까. 랄프는 허그를 제안했고 우리는 아쉬운 마음만큼 가득 껴안았다. 함께 사진을 찍고 버스에 짐을 실어주고 굿바이 인사를 나누던 순간은 오래도록 남겠지. 훗날 준규 형과 독일에 놀러 가 재회할 수 있기를 빈다. 빈말이 아니고. 정말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이었다구요.  





2. 

연일 햇빛이 뜨겁다. 한가운데 있다면 고역이겠지만 바라보기엔 더할 나위 없는 풍경. 여름은 늘 그렇다. 포기할 수 없는 장면들이 놀려대듯 나타났다 사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지니 마음 접고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는 거다. 아주 고약한 성질이지만, 아름다우면 그래도 봐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생각을 수시로 하게끔 만드는 계절이 지나간다. 얼른 가을을 바라면서도 가끔은 이렇게 괜히 아쉬운 날들. 하긴 그게 무엇이 됐든 간에 천천히 오래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정이 드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3. 

드디어 재휘를 만났다. 준규 형에게 여러 번 얘기를 들어서 관심이 갔던 친구죠. 늦잠을 잔 탓에 예상보다 늦은 시간에 도착했지만 아무려나 여기에선 별 상관없는 일이다. 주인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방문자들(주인장의 달콤한 꼬드김에 넘어온 친구들)은 하나같이 다 게으르니까. 자연스레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듣다가 야식을 먹었다. 준규 형 만큼이나 요리 실력이 뛰어난 게 제휘인데, 맥주 안주로 어울릴만한 음식을 고심한 끝에 양파와 햄을 곁들인 치즈 웨지감자를 만들어주었다. 말이 필요 없는 맛에 거의 눈물을 흘리며 먹었다. 거기에 칭기즈칸이라는 보드카를 넣은 칵테일과 몽키 숄더라는 이름의 귀여운 위스키(맛은 하나도 안 귀엽지만요)까지 아주 호화로운 야밤의 만찬이었다. 물론, 과음했다. 맥주 한 캔만 먹어도 얼굴이 벌게지는 내가 주제파악도 못하고 들이부었으니, 끝은 참으로 안쓰러운 모습일 수밖에. 겨우 속이 진정된 오늘 아침에서야 그래도 재밌는 기억이잖아, 하고 애써 쿨한 척 웃어넘길 수 있는 시간이었답니다. 







4.

우리 어렸기에

무지개빛만을 쫓았지만

이젠 곁에 있는

그대 웃음으로 하루가 가네

장필순, <집> 中



이 사진을 올리고 싶어서 뭐라고 쓸까 고민하는데, 문득 이 노랫말이 떠올랐다. 곁에 있는 사람의 웃음만으로 흘러가는 느린 하루. 지금이 그런 시간일까? 쉽게 답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내가 간절히 바라고 있는 날들을 정확히 표현해주지 않았나 합니다. 

                                                                                                                        


                                                                                                                                                                                                                                                              2017. 8. 4

                                                                                                                        12:13 PM





덧.

1) 네, 과음한 덕분에 2일 차 일지를 3일 차 정오에나 쓰네요. 반성합니다.

2) 여기 남자들 나 빼고 다 기타 잘 쳐. 나만 쭈구리다. 씁.

3) 랄프, 야니카! 대프리카는 어째 지낼만 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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