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ss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현 Aug 05. 2017

바닷가 노동자 4일 차



2017년 8월 5일 

바닷가 노동자 4일 차 







1. 

대공사가 있었다. 오늘에서야 노동다운 노동이었다고나 할까.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공간으로 쓰고 있는 커뮤니티 룸을 갈아엎었다. 이렇게 말하니 조금 거창하긴 하지만, 여하튼 꽤나 많은 변화를 준 건 사실이니까. 한 쪽에 방치되어 있던 수많은 목재들과 각종 잡동사니들을 창고로 옮기고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던 난로의 배관을 분리 및 제거했다. 우리 넷과 준규 형 아버님, 안 선생님까지 총 6명이 달라붙어 2시간이 넘게 매달려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실 일의 강도 자체는 크게 높지 않았다. 문제는 무더위. 아니, 햇빛이 얼마나 강한지 정말 바깥에 1분만 서 있어도 땀이 죽죽 흐를 정도였다니까요. 그런 햇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목재들을 옮기고 있자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답니다. 


그러나 무릇 노동이란 언제나 끝난 뒤에 더없는 상쾌함을 가져다주는 법. 청소와 쓰레기 정리까지 모두 마친 후에 에어컨 바람 가득한 실내로 들어와 마신 캔맥주는 말 그대로 꿀맛 그 자체였다.(라고 썼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마셔본 필라이트는 정말 제 취향 아니더군요. 그냥 시원한 맛으로 넘겼습니다.) 비포&애프터를 비교해보자니 한결 업그레이드된 결과물이 보람을 안겨줬고, 꽤나 몸을 움직였기에 스멀스멀 기분 좋은 노곤함이 올라와서 꽤나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 평가해본다. 역시 사람은 일을 해야 하는 건가. 이참에 오픈 키친까지 얼른 다 완성시켜버리자고 주장하면 너무 오바인가요.  








2. 

오늘 저녁 하늘. 노을 풍경은 이렇게 갈수록 아름다움을 더한다. 구름이 어찌나 그림같이 예뻤는지 연신 들여다보며 감탄만 뱉었다. 하얀 구름을 떼어다가 오렌지빛 노을에 푹 적시지 않는 이상 저런 빛깔이 나올 수는 없겠지. 아무리 멋진 영화나 그림을 감상해도 절대로 이 이상 담아낼 수는 없다는 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름다움이 거기 있고, 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고, 발견한 아름다움을 천천히 마음 깊은 곳으로 가라앉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 나는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유형의 사람이라는 사실이 새삼 감사한 저녁입니다. 아름다움이란 늘 이렇게 문득, 새삼 다가오곤 한다.




3. 

아나고 탕을 먹었다. 어젯밤 포구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불금을 함께 보낸 남자 7명이 이번엔 곰소 남도 횟집에서 불토를. 와, 진짜 국물이 말도 안 되게 죽여줬다니까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미식에 관한 한 젬병인 나로서는 도무지 방도가 없지만, 그저 먹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맛이라 말하겠다. 맛.있.다. 첫 한 숟갈 떴을 때 고개를 번쩍 들 만큼 깊고, 시원하고, 얼큰하다. 세상엔 내가 모르는 맛있는 음식들이 엄청나게 많구나.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것들을 다 먹어볼 순 없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맛이라는 게 인간에게 얼마나 큰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지 아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소중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귀한 음식을 귀한 사람들과 함께 먹는 행복은 오죽할까. 아마도 그 행복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모든 이들 평생의 꿈이 아닐지. 적어도 나는 그런 것 같은데. 함께 먹고 싶은 것들이 자꾸만 늘어간다. 




                                                                                                                        2017. 8. 5

                                                                                                                        11:24 PM





덧. 

1) 변산바람꽃 도서관에서 호기롭게 책 세 권을 빼들고 왔습니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중 <위대한 개츠비>, <이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그 주인공들이지요. 한 달 동안 이 책들은 무조건 읽을 겁니다. 꼭 그래야 할 것입니다. 가능... 하겠지요? (근데 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문학동네 버전에서는 <이인>으로 번역되었는지 의문입니다. 일단 읽고서나 말하라고요? 네, 그게 맞는 거겠죠.)

2)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오늘 저녁노을은 정말 아름다웠다. 정말 아름다웠다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미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는 미워도 노을은 당당히 아름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닷가 노동자 3일 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