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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Aug 09. 2017

바닷가 노동자 6일 차

2017년 8월 7일

바닷가 노동자 6일 차








1.

오후에 커뮤니티 룸 한 켠에 만들고 있는 오픈 키친 작업에 돌입했다. 오늘의 작업 내용은 메인 씽크대 코팅처리와 바닥 페인팅 및 스테인칠. 개수대 주변을 중심으로 옆 창틀과 뒷편 벽까지 물이 튈 수 있는 곳들에 폴리우레탄을 발라 코팅을 해주고, 바닥은 페인트와 우드 스테인을 섞어 전체적으로 칠해준 뒤 걸레로 닦아내며 화이트 워싱 처리했다. 


바르고 닦는 게 거의 전부였기에 별 어려움 없이 끝낼 수 있었던 일들이었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해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그래도 기본적인 페인트칠 같은 경험조차 없던 내겐 나름 재밌고 새로운 경험이다. 한 번 해보고 나니 의욕이 생긴다.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들이 남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내일이고 모레고 후딱후딱 일 진행해서 완성된 키친을 얼른 보고싶다구요. 내가 머무는 기간 동안 다 마무리 되어 거기서 직접 요리까지 해볼 수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솔직히 내가 기여한 건 많지 않아도, 원래 숟가락 하나 살포시 얹는 게 제일 기쁜 법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변산바람꽃 비장의 무기가 되어줄 오픈 키친, 좀 많이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2. 

저녁에는 아버님과 함께 식사 후 빙수를. 바람의 윈드, 정원의 가든, 뭐 그런 이름을 가진 카페였는데 공간을 이루는 하나부터 열까지의 요소 모두 참담했다. 안타깝게도 팥빙수와 오디셰이크의 맛 또한 민망한 수준. 도무지 용서가 불가능한 곳이라고 할 수 있겠죠. 오로지 맛있는 빙수를 먹기 위해 이곳에 왔다면 모두들 격노했겠지만, 사실 탐색과 정찰의 목적이 더 강했으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서둘러 빠져나왔다. 


사실 준규 형과 아버님은 이 일대 카페들을 수시로 방문한다. 변산과 모항, 곰소, 격포까지 어떤 감각과 실력으로 무장한 카페들이 있는지, 이를테면 시장조사를 진행하는 셈이다. 전언에 따르면, 아직까지 소비자로서 만족스럽거나 잠재적 경쟁자로서 경계될 만한 곳을 만나지는 못했다고. 대다수가 관광지에 자리한 어설픈 카페들의 전형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단다. 굳이 가보지 않아도 알만하다. 비단 이 근방의 문제만은 아니니까. 끔찍한 취향과 감각으로 무장한 관광지의 카페 혹은 숙박업소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만나왔습니까. 


그런 점에서 변산바람꽃은 훌륭하다. 빈 말 아니라구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제 다 낡아버려서 그런 사업들 새로 벌이면 안되는 거야. 아버님은 요즘의 트렌드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이해하면서도 꽤나 겸손한 말씀이시다. 이곳을 만드신 게 무려 십여 년 전인데. 최근 유행하는 컨셉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고 말할 순 없겠으나 중요한 것은 젊은 사람이나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나 폭넓게 아우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거다. 물론 준규 형과 아버님 모두 여전히 욕심히 많다. 더 큰 이상을 그리며 계속해서 수정하고 보완할 계획들을 품고 실행해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걸 나는 진심으로 응원한다. 준규 형의 말처럼 나 역시 이곳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많은 변화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더 많은 변화들이 생겨날 곳. 그리 생각해보면, 괜히 뿌듯해지고 뭐 그런다. 제가 또 여기 명예회원이자 홍보대사거든요. 시간의 흐름과 작고 큰 변화들을 함께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 그건 정말이지 깊은 위로가 아닐 수 없다.





                                                                                                                                     

                                                                                                                        2017. 8. 9

                                                                                                                        12:30 PM





덧.

1) 시간 보시면 알겠지만, 네, 점점 더 게을러집니다. 이러면 안됩니다. 정신 차리겠습니다.

2) 사실 저도 언젠가 제 공간을 갖고 싶은 작은 꿈 아닌 꿈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카페가 가장 어울릴 듯 하지요.) 그날이 온다면, 큰 기대 걸으셔도 후회 안하실 겁니다. 자신 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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