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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Aug 11. 2017

바닷가 노동자 8일 차

2017년 8월 9일  

바닷가 노동자 8일 차  







비 오는 한낮의 바베큐 파티, 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우리가 그걸 했지요. 사실 계획된 건 아니었습니다. 정말 즉흥적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한껏 게으르게 늦잠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고기를 먹자고 그러더군요. 남은 돼지 목살이 있으니 숯으로 불을 피워 구우면 끝내줄 거라고 말입니다. 아니, 마다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비 오는 흐린 오후에 파라솔 아래에서 먹는 숯불 돼지고기 꼬치구이라니요. 캠핑 전문가인 신재휘 씨(영등포구, 24세)의 능숙한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우리는 때 아닌 바베큐 파티에 돌입했습니다. 


그냥 고기만 구워 먹는 데서 끝나면 가오에 살고 가오에 죽는 가생가사 변산바람꽃 스타일이 아니지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분위기 내고 먹어보자며 치즈버거도 만들고 마시멜로우도 구워먹었습니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구운 마시멜로우를 초콜릿과 함께 크래커에 끼워 먹는 요리를 '스모어'라고 하더군요. 아쉽지만 초콜릿과 크래커가 없어 그렇게 먹지는 못했답니다. 다음 기회에.) 말하자면 1차 돼지 목살 꼬치구이, 2차 치즈버거, 3차 구운 마시멜로우였는데 정말이지 배 터질 때까지 먹었습니다. 12시 즈음에 준비하기 시작해서 다 먹고 뒤처리까지 끝내고 나니 4시가 다 돼 있었죠. 결국 저녁밥은 도저히 먹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어찌 됐든 사람은 사람이니까요.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 특별한 기억을 남겼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대체 여태껏 뭐하고 살아왔는지 요리도 할 줄 모르고 캠핑 따위는 그저 동경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저에게 이런 기회들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죠. 숯으로 불을 피우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때맞춰 불어주거나, 고기와 소시지, 양파 따위를 꼬치에 끼운 채 열심히 돌려가며 굽는 것들은 다른 이들에겐 별 거 아닌 일이어도 저에게만은 즐겁고 신기한, 그래서 소중한 경험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쌓이다보면 어느 순간 저도 비슷한 자리에서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가져보곤 하지요. 제법 그럴 듯하게 고기를 손질하고 목장갑을 낀 채 장작을 구해와 불을 지피는 그런 역할, 한 번쯤은 나서서 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상상만 해도 신이 납니다. 다양하고 새로운, 수많은 경험들이 앞으로 저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어보겠습니다. 그 믿음 가지고 여기저기 적극적으로 찾아다녀 봐야죠. 뭐, 그래도 다행입니다. 그런 것들을 귀찮아하거나 기피하려고만 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말입니다. 기대가 됩니다.  




                                                                                                                       2017. 8. 11

                                                                                                                        5 : 01 PM





덧.

1) 까뮈의 <이방인>을 읽습니다. 문학동네 출판본 제목은 <이인>이네요. 아무려나. 드디어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 익히 들어온 그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네요. 곧 후기 들려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2) 간만에 비가 내려서 좀 시원한 하루였습니다. 이제는 더위가 한 풀 꺾이려나 싶었는데, 글쎄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얼른 좀 선선한 날이 왔으면. 하지만 또 어느 순간엔 뜨겁게 내리쬐는 오후의 볕이 그리울까요. 하긴, 세상사 곁에 있을 때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거, 그거 정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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