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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Aug 13. 2017

바닷가 노동자 9일 차

2017년 8월 10일 

바닷가 노동자 9일 차 







디자인과 디렉팅의 문제다. 새로 선보일 객실을 만드는 일 말이다. 전반적인 컨셉과 분위기를 구상하고 이에 맞춰 세부적으로 채워 넣을 다양한 요소들에 관해 고민하고 검색한 뒤 최종적으로 선택하기. 그리고 이를 실제 작업으로써 구현해내는 것까지, 이 모든 과정은 기획과 연출의 영역인 것이다. 준규 형과 나의 감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이 되는지는...)을 요렇게 조렇게 활용하여 최상의 결과물을 뽑아내야 하는데, 둘 다 제대로 공부를 해봤거나 그럴듯한 관련 경험이 있는 건 아니라서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현재 가장 먼저 구상에 들어간 객실은, 원래 시인이 머물다 가는 방이다. 이곳에 가끔씩 드나드시는 A 시인에게 내어준 작은 방인데, 아무래도 이 방은 비워져 있을 때가 더 많기 때문에 새롭게 꾸며 객실로도 사용하기로 했다. 유일한 1인실이라는 것도 커다란 이점. 시인이 창작에 열중하던 공간에 들어와 그 분위기와 감성을 느껴보고, 편히 쉬면서도 책과 글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은 이들을 위한 혼자만의 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컬러 톤과 가구 배치, 조명과 각종 오브제 등에 관한 대략적인 결정을 내렸다. 엄청난 파장을 고려했을 때 함부로 다 공개할 수는 없다. 컨셉만 설명해드리자면, 뭐랄까, 일본 간사이 지방의 전통적인 소박하고 따뜻한 원목 베이스에 어딘가 신비롭고 기묘한 느낌까지 선사하는 1930년대 클래식 앤드 앤티크 브리티시 스타일을 절묘하게 조합했달까. 준규 형과 나의 열띤 토론과 회의 끝에 선정된 타협안이기에 꽤나 기대를 걸고 있다. 여러분들도 기대 많이 해주시길. 


그렇다면 이제는 실제로 페인트칠을 하고 필요한 제품들을 구입해 배치해야 할 단계. 구상과 기획은 다 됐으니, 말하자면 실전인 셈이다. 육체노동도 들어가고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예기치 못한 상황 또한 발생할 수 있으니, 만만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특히 가장 경계해야 할 건 역시 게으름과 나태함이라는 거. 우리 같은 사람들은, 결국 참 한심한 자기 자신이 가장 큰 적이다. 서둘러 진행해서 후딱후딱 마쳐야 한다. 그래야 이 멋진 방을 얼른 공개할 수도, 다른 더 멋진 방들을 새로이 작업해나갈 수도 있다. 그게 중요하다. 머리와 마음과 입은 이만하면 됐고, 몸을 움직입시다. 완성된 시인의 방, 그 아름다운 풍경, 상상만 해도 설레지 않습니까. 




                                                                                                                       2017. 8. 13

                                                                                                                      12 : 58 PM




덧.

1) 이런 걸 하다 보면,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단 생각이 너무 커진단 말이지요. 현실은 뭐,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오래되고 좁은 자취방 뿐. 내가 구상한 컨셉과 스타일로 채워 넣은 나만의 아늑한 공간을 언제쯤 가질 수 있을까요. 어느 단골집보다도 즐겁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자기만의 방'을 정말 갖고 싶습니다. 비단 저 혼자만의 꿈은 아니겠죠?

2) 사진은 얼마전 곰소에 오픈한 '슬지제빵소'라는 곳에서 찍은 겁니다. 최근의 트렌드라고 할만 한 것들은 죄다 모아놨더군요. 인테리어도 그렇고 메뉴도 그렇고 공을 많이 들인 티가 팍팍 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일대에서 독보적인 곳인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누가 곰소나 모항, 격포, 부안에서 이런 카페를 볼 수 있겠습니까. 머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걸로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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