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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Aug 15. 2017

바닷가 노동자 10일 차

2017년 8월 11일 

바닷가 노동자 10일 차 







기어이 사고를 쳤다. 유리잔 하나를 박살냈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던 중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깜짝 놀랐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거나 하진 않았다. 준규 형은 당황한 나를 안심시키려 노력했고 우왕좌왕하던 나는 이내 정신 차리며 청소기를 가져왔다. 사방에 흩어진 유리 파편들 때문에 이곳저곳을 들어내 큰 조각들을 치운 뒤 청소기로 전체를 쭉 빨아들여 뒤처리를 했다.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덕분에 설거지도 길어졌으며 덕분에 데크 페인트칠 작업도 늦춰졌다. 간만에 한 건 제대로 한 셈이다. (유리조각에 손바닥을 살짝 베여 반창고까지 붙인 건 옵션이다.) 


사실 시간문제였다. 한 번은 이럴 줄 알았다. 워낙에 덤벙대고 어딘가 늘 어설픈 탓에 이런 사고를 안 쳐본 적이 드물다. 이런 점이 스스로도 못 미덥고 한심하지만, 무엇보다 문제는 남들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거. 혼자서 그러면 짜증나고 허무해도 욕 한 번 뱉어주며 수습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대개 함께 작업하거나 다른 이를 열심히 서포트해줘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몸으로 하는 노동에 관한 것이라면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어 옆에서 겨우 잡일만 도와주는 지경인데, 그것마저 시원찮게 하니 이것 참 미칠 노릇인 거다. 누구나 저지르는 실수들이라는 건 알면서도 왜 유독 난 실수를 이렇게 많이 할까 생각하면 답답하다. 그건 내 영역이 아닌 거잖아, 라고 속 편히 말해본다면 그럼 대체 나의 영역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대부분의 사람이 능숙히(아니, '능숙히'라는 표현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해내는 것들에 서툰 나를 마주하는 건 몹시 창피하고 괴로운 일이다.


겨우 유리잔 하나 깨 먹었을 뿐인데 생각이 여기까지 왔다.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탓도 있겠으나 거꾸로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게 만든 나의 부족함 탓이기도 하다. 뭐, 어차피 깨진 유리잔이나 그 한참 이전에 쏟아진 커피 혹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과거의 수많은 실수들은 이미 다 지나갔다. 되돌릴 수도 수습할 수도 없다. 뫼르소의 입을 빌린 까뮈의 말마따나, 정말이지 그건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여전히 어설프고 서툰 사람이며 앞으로도 예상치 못한 실수들을 반복할 거다. 그렇다면 더더욱 별다른 도리가 없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거라곤 그냥 하는 것뿐. 하고, 실수하면 사과한 뒤 수습하고, 다시 하고, 최대한 신중한 태도로 조심하고, 그냥 그런 것들뿐이다. 이렇게 억지로라도 무언가 내려놓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나중 가면 오히려 스스로 놀림거리로 삼을 수도 있을 거다. 자, <김정현의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537화> 오늘은 또 어떤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한 번 만나볼까요?





                                                                                                                        2017. 8 15

                                                                                                                      12 : 17 PM





덧.

1) 데크에 있는 일자 테이블에 페인트칠 및 락카칠을 했습니다. 오래된 나무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긴 하지만 여기저기 보기 안 좋게 썩거나 거뭇해진 부분들이 있어 아예 화이트 워싱 처리해버렸지요.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었지만 땀 뻘뻘 흘려가며 열심히 작업했습니다. 마치고 나니 비포&애프터가 확연히 구별돼 꽤나 뿌듯함을 안겨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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