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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Aug 15. 2017

바닷가 노동자 11일 차

2017년 8월 12일  

바닷가 노동자 11일 차  







조명 하나 구입하는 게 왜 이리 어려울까. 시인의 방(가제)에 들여놓을 조명을 사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는데 고것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거나 막 놓을 수는 없으니까. 예쁜 건 많지.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에 맞춘 것들 다 있다. 이를테면 차갑고 모던한 느낌이 강조되는 북유럽 스타일. 인테리어 잡지나 파워블로거들의 집에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힙'한 펜던트 조명들이 원없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다. 시인의 방에 맞지 않다. 얼마 간의 클래식함을 주되 촌스럽지 않아야 한다. 불그스름한 에디슨 전구를 써서 따뜻한 분위기를 내는 데 적합한 모양이어야 하며, 방이 좁다보니 너무 큰 사이즈는 안된다. 가격 또한 중요하다. 터무니 없이 비싼 건 살 수 없다. 아니, 사실 최대한 싸면 좋긴 하다. 결국 구매 버튼을 누르고 결제를 하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요소들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들 인테리어 어떻게 하시는 건지. 신경쓸 것들이 한 둘이 아닐 뿐더러, 결국은 한정된 예산 내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하지 않는가. 지출할 수 있는 돈이 고정된 조건 하에, 본인의 취향이 녹아든 전체적인 컨셉을 구상하고 이에 맞춰 다양한 요소들을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하는 과정은 단순히 복잡함과 어려움을 넘어 서러움까지 줄 수 있다. 포기해야 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A 테이블은 컬러 톤이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들지만 차선책으로 봐뒀던 B 제품보다 3만원이 비싸다는 이유로 외면한다. 방을 꾸미려 마음 먹었을 때부터 점 찍어둔 G 수납장은 최근 발견한 고급 브랜드 제품보다는 가성비가 뛰어나지만, 고민 끝에 가격도 훨씬 더 저렴하고 비교적 무난하게 예쁜 L 수납장에 의해 대체된다. 대개 이런 식이다. 자꾸만 눈에 아른거리는 것들보다 '합리적'이고 '그래도 괜찮은' 것들로 채워지는 공간. 결과물을 보며 아쉬움이 들 때마다 "10만원만 더 넉넉했더라면..."하는 마음이 따라붙는 게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을. 미니멀리즘이니 뭐니 하는 것과 또 다른 맥락으로, 채우고 채우기 보다는 빼고 또 빼는 것이야말로 인테리어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그래, 다이소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시인의 방을 다이소 제품으로 채워넣겠다는 건 아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아무리 그래도 변산바람꽃은 가오에 살고 가오에 죽는 '가생가사' 아니겠습니까. 우여곡절 끝에 조명은 '휴빗'이라는 쇼핑몰에서 영롱한 느낌을 풍기는 글라스 조명으로 선택했다. 부디 우리를 실망시키지 말아주시길.   




                                                                                                                       2017. 8. 15

                                                                                                                        9 : 58 PM




덧. 

1) 사진은 롯지 2번 방에 있는 책상과 스탠드와 바다가 보이는 창입니다, 이곳이야말로 두 명이서 왔을 때, 혹은 조용히 홀로 보내고 싶은 분이 오셨을 때 최적의 객실이지요. 침대와 책상 모두 바다를 바라보고 배치돼 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여유롭고 분위기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답니다. 에어비앤비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방이니 어서들 예약을 서두르세요. 오시면 잘해드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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