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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Feb 28. 2023

일과 나 모두를 지키는 가이드라인

세상만사가 그렇듯 루틴도 시작이 반이다.





바야흐로 다짐과 계획의 시즌. 새해를 맞아 오늘도 누군가의 다이어리와 일기장은 열정과 희망으로 빼곡히 채워진다. 프리랜서들의 다이어리도 볼만할 것이다. 새로운 일 년을 기대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맡은 일들의 타임라인과 세부 내용을 점검하며, 또 다른 일들을 창출하기 위한 전략도 열심히 적어 놔야 하니까. 대신 계획해 주고 정리해 줄 사장님과 부장님도 없으니 이 모든 건 온전히 나의 몫. 자유로운 만큼 막중한 책임감이 따르는 프리랜서에게 일정과 시간 관리란 일이 성립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루틴을 강조한다. 왜? 내 경우엔 두 가지 이유다.



첫 번째,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정확히는 효율적으로 과업을 운용하고 싶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프리랜서의 장점 중 하나는 일반적인 통근 직장인에 비해 날짜와 시간을 내 의지대로 관리할 수 있다는 거다. 다만 적절한 통제와 관리가 이뤄지지 않을 때 생산성은 크게 떨어지기 마련. 나는 게으른 편이다. 주의가 산만해도 너무 산만해 쉽게 집중력이 휘발된다. 부족한 천성을 조금이나마 커버하려면 루틴을 잘 정착시켜야 한다. 일의 우선순위와 개별 소요 시간, 서로 다른 일들 간의 유기적 관계 등을 고려해 업무의 흐름을 만들기. 그걸 내 성향과 취향, 일과를 고려해 배치하고, 이를 꾸준히 반복함으로써 패턴화하는 거. 아무렇게나 시작해도 빈틈없이 수행하고야 마는 타고난 일개미가 아닌 이상, 내게 최적화된 패턴 없이 순조롭게 일을 진행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 Ilya Ilford



두 번째 이유. 워라밸. 아니, 회사도 안 다니는데 무슨 워라밸? 회사를 안 다니니까 더 중요하다. 프리랜서는 물리적으로 일과 삶이 분리되기 힘든 속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일이 나, 내가 곧 일인 사람들은 ‘오히려 좋아’를 거듭 외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일로 자아실현하는 거 좋지. 생활 속 모든 게 일의 영감과 자극과 재료가 되고, 결국 그걸 통해 값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도 다 좋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보자. 일과 전혀 상관없는 나머지 일상을, 일이 집어삼켜도 괜찮은지. 일과 연결되지 않으면 내 삶의 무수한 구석구석은 그 의미를 잃어버리는 건지 말이다. On 모드에서는 열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뛰어다니되, 적절한 타이밍에 Off 모드로 돌아올 줄 알아야 한다. 루틴이 그래서 필요하다. 일과 나 모두를 지키기 위해 내가 직접 만든 손쉽고 명료한 가이드라인. 



사업삼휴(四業三休). 내 루틴명이다. 4일 동안 빡세게 몰아서 일하고 3일 동안 원 없이 몰아서 쉰다. 낮에는 나가서 놀고 싶고, 놀고 들어오면 이미 체력도 의욕도 사라지는 어리석을 이를 위한 특단의 조치랄까. 특단의 조치답게 꽤 효과를 봤다. 루틴이 잡히며 어느 정도 일과가 예측되니까 새로운 일이 들어왔을 때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이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군. 저건 아쉽지만 도저히 안 되겠어.’  안정적인 틀이 생기자 그 안에서 오히려 더 유연하게 판단하게 된다. 선택은 자유로워지고 시간과 일에 끌려다니는 주객전도 사태는 점점 줄어든다. 물론 나도 항상 지키는 건 아니다. 새해니까 다시 힘써봐야지.



세상만사가 그렇듯 루틴도 시작이 반이다.  






* 크몽 뉴스레터 <DEAR. FREE> Vol.3 Routine 편에 수록한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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