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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 Nov 06. 2020

하지 못 한 말들이 달그락거린다

 산중에 새벽바람이 스친다. 겨우내 바싹 마른 나뭇잎이 한 방향으로 구르는 소리도. 눈을 뜬다. 방 깊은 곳 벽에는 달빛이 새겨져 있고 그 위에 창호의 곧은 그림자가 붙어 있다. 멀지 않은 대웅전에서 울려온 목탁 소리가 베개 밑을 스민다.


 간단하게 채비하고 문을 나선다. 나뭇잎은 더는 구르지 않고 조용히 누워있다. 숲에 웅크린 풀벌레들의 소리에 맞춰 나아간다. 발끝에 차이는 나뭇잎의 비명들.


 불상이 엄지손가락만 하게 보이는 곳에 서서 대웅전 안을 바라본다. 고개 숙인 스님의 푸른 머리에 노란빛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불경을 외는 목소리는 대웅전의 빛과 함께 어둠에 엉겼고 목탁 소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퍼졌다.


 이곳에 오기 전 너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달그락거리며 뛰쳐나오려 했다. 몇몇은 너와 함께 하여 못한 말들이었고 몇몇은 너와 함께 하지 못해 못한 말들이었다. 주둥이를 꽉 움켜쥐지 않으면 나락那落으로 떨어지리라. 풀어놓을 곳이 필요했다. 나는 절에 잠시 묵기로 했다.


 대웅전에서 나오는 빛은 내 주변의 어둠을 모두 밀어낼 만큼 밝지 않았다. 나를 경계로 어둠과 엉겨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말을 풀지 않았다. 불필요했다. 비어있는 산중의 소리가 몸을 훑고 지나가며 찌꺼기 같은 말을 사그라지게 했다. 털어놓을 새도 없이 비워졌다. 이제 나는 달그락거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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