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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 Sep 26. 2020

난 못난 아들이었다

엄마에게 난 항상 착한 아들이라는 착각

 엄마는 울고 있었다. 전화 통화 너머로 울음소리가 숨소리와 엇갈리며 위태롭게 이어졌다. "엄마, 울고 있었구나. 나 다시 돌아갈게. 1시간 정도 걸릴 거야. 잠깐만 기다려." 통화를 끝내고 차를 돌렸다. 울음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귓바퀴에서 윙윙거렸다. 엄마가 남긴 슬픈 파동은 몸 전체로, 더 깊은 곳으로 치달았다. 덩어리질 것 같은 무형의 무언가가 속에서 꿈틀거렸다. 나는 토해내려 했지만 그러질 못해 속도를 줄이고 창문을 열었다. 밤공기가 차갑게 폐를 찔렀다. 바람이 서둘러 흩어주기만을 바랐다.               


 그날 오후, 여수에서 수원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해서 곧바로 갈 작정이었지만 고향 생각이 났다. 조금만 우회하면 고향인 나주인데. 거기에 엄마가 있는데. 엄마는 작은 집에 홀로 살고 있었다. 늘 무릎 위에 앉아 체온을 나누려는 ‘희망’이라는 강아지가 있었지만, 엄마는 혼자였다. 불 꺼진 거실에서 희망이를 안고 TV를 보는 모습. 현관을 열면 보이던 그 적막한 형상이 내 안에 맺혀있었다. 그 형상에 마음이 아려와 핸들을 돌렸다.               


 현관을 열고 들어간 집. 거실은 어두웠고 TV는 켜져 있었다. 엄마는 아무런 말도 없이 집에 온 나를 보며 놀랐다. 달려드는 희망이를 안고 나는 싱긋 웃었다. 불을 켜고 앉아 그냥 생각나서 왔다 말하고 배고프다 했다. 엄마는 자기도 밥 차려 먹고 자려했다고 잘 됐다 한다. 조촐하게 내온 밥상. 아마 내가 안 왔다면 엄마는 이보다 더 초라하게 저녁을 챙겼겠지. 숟가락을 들고 오랜만에 엄마가 차려 준 밥을 먹는다.               


 식사가 끝나고 방에 들어가 드러누웠다. 깊이 숨었던 피로가 스멀스멀 흩어지고 있었다. 눈으로 천장에 둘린 검정 몰딩의 끝과 끝을 좇았다. 내 방 천장이 이렇게 생겼었구나. 언제 다시 출발해야 하려나.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답답해졌다. 좁은 방에서 마음을 좁혀오는 생각. 더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앉아서 방을 둘러보았다. 허전했다. 한쪽 구석에 모아둔 카메라와 렌즈 상자. 어디로 간 거지? 중고로 팔 때 쓰려고 모아두었던 상자였다. 중고로 물건을 팔 때 상자가 없으면 3~5만 원 손해를 본다. 상자가 없는 제품을 산다는 건 찝찝한 일이었으니까. 6개가 없어졌으니 꽤 큰 손해를 보는 거다. 벌어도 줄어들지 않은 빚에 눌려있던 나는 불편해졌다.                


 불이 꺼진 거실로 나가 엄마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엄마는 구석에 있는 게 보기 흉해 불태워버렸다고 했다. 수원으로 이사 가기 전, 나는 상자는 버리는 게 아니니 버리지 말라 엄마에게 부탁했었다. 분명 그때 알겠다고 내게 대답했던 엄마는 상자가 없어져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이었다. 엄마에게 분명히 말했고 대답도 들었는데. 돈에 쪼들리고 있어서 모아둔 상자마저 소중했는데.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고 화가 홍수처럼 터져 나왔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내가 가만 놔두라고 했는데. 엄마는 분명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엄마를 추궁했다. 왜 버린 거야? 내 물건 안 버리겠다고 약속했잖아? 엄마는 내 방을 깨끗하게 해주고 싶어서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약속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의 사과와 해명에도 화는 멈추지 않고 끓어올랐다. 더는 안될 것 같아 조금 진정해보려 말을 천천히 걸러서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목소리와 표정, 쏘아보는 눈빛은 엄마를 움츠러들게 했다.               


 올라가야 했다.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거칠게 짐을 챙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을 박차고 나왔다.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잘 가라고 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차에 오른 후 시끄러운 음악을 켜고 그대로 휙 고속도로로 올랐다. 음악에 맞춰 차를 모니 화가 조금씩 풀려갔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등 뒤에 쭈뼛쭈뼛 서 있던 엄마가 생각났다. 상자가 지금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카메라와 렌즈를 중고로 팔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화가 났다 해도 그렇게까지 냈어야 했을까. 엄마가 깜빡할 수도 있지. 손해 봤지만, 엄마를 가혹하게 대할 필요가 있었나. 후회가 무성해졌다. 잘 시간이었지만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다시 걸어본다. 역시 받지 않는다. 집 전화로 걸어본다. 여보세요. 전화기를 든 엄마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1시간을 차를 몰아 집에 도착했다. 현관 앞에 서서 잠깐 숨을 골랐다. 어떻게 엄마에게 말을 걸지. 한참 망설이다 현관으로 들어섰다. 거실 불은 꺼져있었다. 누워있던 엄마는 고쳐 앉고 조용히 나를 보았다. 불이 켜지자 보이는 엄마의 부어있는 눈. 왔어? 목소리는 차분했다. 엄마 옆에 앉아 희망이를 안았다.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내가 할퀸 상처를 대면하기 두려웠다. 그냥 가지 뭐하러 다시 왔냐고 피곤하지 않냐며 나를 걱정해주는 엄마.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무릎 위에 앉아 졸린 눈을 끔뻑거리는 희망이의 배를 쓰다듬기만 했다. 숨을 고르고 사과했다. 내가 못됐다고. 화 안 내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화를 냈다고. 엄마에게 상처 줘서 미안하다고. 고개를 들어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엄마는 잠시 말이 없다 알았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괜찮다고 하는 엄마의 표정. 눈을 마주칠 수 없이 넓은 그 표정. 찰나의 침묵이 흘렀고 엄마는 피곤할 테니 어서 들어가 자라고 했다.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나는 왜 엄마에게 가혹했을까. 진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화를 내기 전 상황을 떠올렸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의아함, 금전적 손해를 보았다는 압박감,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배신감. 압박감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에 공부하며 생겼던 빚은 쉽사리 줄지 않았다. 우리 집이 조금 더 부유했다면 내가 빚을 지지는 않았을 텐데. 내 숨통이 조여오지 않았을 텐데. 엄마 잘못인 것만 같다는 생각. 그런 생각하지 않으려 애써왔다. 엄마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쉼 없이 노력했으니까. 하지만 그러질 못 했다. 겉으로 그지 않은 척만 했을 뿐 나는 그렇게 생각해 온 거다. 내 마음이 못 돼서 엄마에게 화를 낸 거다. 한심해서 이불을 걷어찼다. 엄마에게 상처를 준 이 날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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