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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 Sep 18. 2020

엄마는 외할머니가 되어간다

휘발되어 사라진 존재

 외할머니는 할머니처럼 생겼다. 작은 머리에 심어진 하얀 머리칼은 모두 뒤로 넘겨 옥색 비녀로 잠갔다. 얼굴은 너무 홀쭉해서 광대가 도드라졌고 주름은 나이테처럼 검은 피부에 새겨졌다. '할머니'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적확한 할머니의 모습 그대로였다.


 숨 쉴 때마다 그르렁그르렁 하던 외할머니의 손에는 항상 담배가 물려있었다. “할머니! 방에서 담배 피우지 마세요!” 내가 콜록거리며 따지면 외할머니는 마지막 한 모금을 크게 빨아들이고는 머쓱 웃으며 담배를 껐다. 외할머니는 감기며 올라가는 희멀건 연기의 끝자락을 눈으로 좇았다. 움푹 파여 깊고 깊었던 그 눈으로.


 시간이 갈수록 외할머니의 그르렁 소리는 커져갔고 광대는 도드라졌다. 손에 담배가 물리는 일이 잦아졌고 몸은 작아졌다. ‘왜소’라는 말은 외할머니를 위한 말이었다. 담배연기와 함께 그녀의 일부가 날아가고 있는 걸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는 자식들 집을 돌아가며 살았다. 그중 엄마가 거리상으로 가장 가까웠기에 우리 집에 오는 일이 잦았다. 잦은 만큼 그녀의 변화는 더 빠르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고개를 살짝 들고 눈을 멀리 둔 외할머니. 그 옆에 앉아있는 엄마. 엄마는 휘발되고 있는 외할머니의 존재를 곁에서 느끼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점점 할머니 중 할머니가 되어갔다.


 나는 방 한쪽에서 작아지는 외할머니를 못 견뎌했다. 폐를 따갑게 하는 담배연기도 싫었지만 사람이 작아질 대로 작아져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위태위태한 느낌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꺼억하며 내뱉는 트림 같은 숨소리조차도 듣기 싫었다.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는,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소리. 곧 중학교라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나에게 외할머니의 숨은 발을 헛디딜 것처럼 아찔하게 들려왔다.


 어느 날, 엄마는 나를 앉히고 물었다. 외할머니와 있는 게 불편한지.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했는지. 나는 망설였다. 입을 떼는 순간 엄마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았다. 이어지는 침묵과 슬퍼 보이는 엄마의 눈. 숨이 답답했다. 너무 답답해서 안에서 나오려는 말을 풀어놓아야만 했다. 얼마 후 외할머니는 서울 외삼촌 집으로 가셨다. 그리고 반년 정도 지나 외할머니는 외삼촌 집에서 돌아가셨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머지않아 돌아가실 거란 걸 알고 있었다. 태양이 서쪽으로 넘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외할머니도 그럴 터였다. 엄마는 울지 않았다. 그저 얼굴이 굳어진 채 외할머니가 누운 곳으로 홀로 떠났다. 며칠이 지나 돌아온 엄마의 눈은 퉁퉁 불어있었다. 곁을 떠날 줄 알았지만 정말로 떠나버릴 줄 몰랐다며 조금 더 같이 있어줄 걸 하며 조용히 말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때 내가 꾹 참았으면 어땠을까. 엄마와 외할머니가 더 긴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서로의 존재를 더 깊이 새기지 않았을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얼마간 눈에 초점을 잃었다. 외할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낸 뒤 외할머니마저 떠나자 세상에 홀로 남겨진 고아처럼 느껴진다고 엄마는 밥을 먹으며 이야기했다. 엄마는 무표정한 얼굴을 지었지만 그 안에 수많은 감정들은 내가 감히 지켜볼 수 없는 무거운 것들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상처가 조금 아물어갈 때, 엄마의 얼굴에 외할머니 얼굴이 겹쳐졌다. 깊은 눈과 볼록 튀어나온 광대,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주름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자신이 외할머니처럼 되어야겠다고 작정한 것처럼 엄마는 외할머니가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 외할머니 닮았네?”

“그래? 엄마 딸이니까 그런가 보다.”

그러고선 엄마는 자신의 얼굴 곳곳을 더듬었다. 외할머니를 찾으려는 듯.


 방에 들어와 나도 내 얼굴 곳곳을 더듬는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 얼굴이 나에게도 남아있나? 평생 아빠와 똑 닮았다는 소리를 들어서 엄마 쪽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난 엄마 아들인데 남아있겠지. 톡 튀어나온 입이 엄마를 닮았나? 볼록한 광대도 엄마를 닮은 것 같네? 두 가지밖에 찾지 못했다. 두 가지여도 됐다. 엄마의 흔적이 내 얼굴에도 남아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안심했다. 훗날 엄마가 나를 떠난다면 그래서 그리워진다면 내 얼굴에서 엄마를 찾으면 되니까. 그때가 되면 나도 “그래? 엄마 아들이니까 그런가 보다.”라는 말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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