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수신제가라고 했다.
6월, 여름이다. 장마가 시작된다. 더워지고, 습도가 올라간다는 의미다.
여행 일정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J의 눈에 문득 거슬린 게 있었다. 집안 곳곳에 둔 제습제에 물이 찼고, 습기가 잘 차는 곳에 곰팡이가 피었다.
"2주 동안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P의 눈에 거슬린 것도 있었다. 냉장고 냉동실은 그래도 괜찮다. 냉장칸에 있는, 유통기한이 7월 초까지인 먹거리들이 눈에 띄었다. P가 간식으로 먹으려고 사둔 것들이다.
"여행 가기 전에 이걸 다 먹어치워야겠는데......."
여행을 가려다 보니 여행 외적으로 눈에 띄는 것들이 생긴다. 이것들을 해치워야만 한다.
그런 일은 더 있었다. 부패할 여지가 있는 쓰레기를 집에 두는 건 위험하다. 종량제봉투에 담는 쓰레기도 기왕이면 출국날에 임박해서 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빨래도 최대한 하고 가야 한다. 매일 오전에 작동하는 로봇청소기의 예약도 조정해야 한다. 화분들은 2주를 버틸 수 있지만 그래도 출국일에 물을 주는 게 좋을 듯하다.
동네 분리수거 요일이 목요일이므로 모든 집안일은 목요일에 마감하고 셧다운 하기로 했다. 토요일 오전 출국이니 그 전날인 금요일의 식사나 커피는 무조건 밖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집에 쓰레기를 만들어놓지 않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집안일 못지않게, 아니 정확히는 그보다 더 중히 챙길 게 있었다. 여행 갈 수 있는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
[병원 좀 다녀올게... 아까 허릴 살짝 삐끗했는데 통증이 계속 있네.]
출국이 일주일 남짓 남은 어느 날, J는 P에게 이런 문자를 받았다.
항상 허리 디스크 걱정을 달고 있는 P는 건강을 위해 주 5회 정도 근력 운동을 한다. 덕분에 최근 몇 년은 허리 통증을 거의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하필 이 날은 마지막 정리 운동을 하던 도중 순간 몸에 힘이 풀렸고, 그 상황에서 동작을 이어하다가 중심을 잃고 허리를 삐끗한 것이었다. P 입장에서는 순간 허리에서 '툭' 소리가 나는 듯한 경험을 했고, 심상치 않음을 느껴 바로 드러누웠다. 잠시 휴식한 후 허리에 좋다는 자세를 여러 가지 해보았지만 오른쪽 허리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그는 '이러다 여행 못 가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에 지체 없이 예전부터 허리 통증이 있으면 찾던 병원을 향했다. 원장님은 아마 단순 근육통으로 보이나 5년 만에 왔으니 엑스레이를 찍어서 비교해 보는 게 좋겠다 말했다.
'아니, 5년 만이라니. 그동안 잘 지냈다가 왜 하필 지금 아픈 거지?'
정리 운동이라고 순간 방심한 자신을 원망했지만 이미 일이 일어난 것을 어쩌랴. 엑스레이를 찍고 잠시 대기하는데 부축을 받으며 걷는 몇몇 환자들이 보였다. P는 과거 입원했던 일이 떠올랐다. 남일 같지 않아 착잡했다.
이윽고 P의 이름이 불려 다시 진료실로 들어갔다.
"일단 오늘 통증은 단순 근육통이고, 이틀 정도 냉찜질을 해주고 사흘 정도 쉬면 나을 겁니다. 문제는 허리 디스크 4번과 5번 사이가 전보다 더 좁아졌어요. 코어 운동, 그러니까 복근 운동을 많이 해주셔야 해요."
처방전을 받고 병원을 나오는 길, P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운동할 때 끝까지 긴장하지 않은 자신을 원망하는 생각.
나 자신을 먼저 지켜놓지 않으면 여행도 갈 수 없다는 생각.
이제 곧 백수이니 몇 달 뒤 쫄쫄 굶을지 모르지만 여행을 지르기 잘했다는 생각.
내일의 나는 어찌 될지 모르니 지금은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지금 하고 싶은 걸 해야 내일의 내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
다행히 진료실에서 들은 것보다 빨리, 2일 후 증상이 나아졌다. 하지만 다시 그런 일을 겪지 않도록 복근 운동만 하며 매사 조심하며 지냈다. P의 얘기를 들은 J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드디어, 출국일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