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돌던 대로 도는데
지난 일요일 밤, 자려고 누웠을 때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자고 일어나면 9월 1일이라는 것! 아니 벌써 일 년의 삼분의 이가 지났다니 이게 무슨 소리요...! 올해 대체 나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나 생각에 뒤척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분명히 나름 열심히 산 거 같은데 왜 여덟 달을 공으로 보낸 느낌인지.
막상 아침에 9월 1일을 맞이하고 보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지구는 돌던 대로 돌고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임에는 변한 게 없는데(물론 4년에 한 번 366일이 되는 윤년이라는 게 있지만 통상적인 의미로 치면 말이다.) 왜 항상 달이 바뀌거나 해가 바뀌면 '아니 벌써!'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반면 매주 주말은 '우와 그렇게 시간이 안 가더니 드디어 마침내 기어코 주말이 왔어!'라고 반기면서 말이다. 하루하루는 시간이 가지 않는 거 같은데 그 묶음인 달이나 해는 빨리 가는 느낌은 왜 드는 것일까?
그 전날 밤 내가 했던 생각에 답이 있었다. '열심히 산 거 같은데 공으로 보낸 느낌'. 열심히 살았다면서 왜 공으로 보낸 느낌이 들까? 아마도 오랜 기간 몸과 정신에 밴 강박관념 때문 아닐까. 돈을 번다던가, 어떤 작업을 마쳤다던가, 혹은 성적을 낸다던가 등등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그 강박관념 말이다. 심지어 그냥 결과물을 내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잘' 해야 한다. 때론 다른 사람을 압도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요구도 받는다. 타인에 의해서건, 나 자신에 의해서건.
그런데 말입니다. 좀 생각해 보면 뭐든 결과물을 내고 있다. 내 경우 올해는 꾸준히 글을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매달 꼬박꼬박 적금을 하고 있고, 짱구를 굴려가며 퇴직연금 수익을 내고 있다. 매일 우리 집 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 정도면 꽤 내 삶에 충실하게 살고 있잖아?
게다가 항상 인상적인 결과물을 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어떤 과정에 있을 때는 지루할 정도로 배우기만 하는 시간도 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시행착오를 겪는 기간도 있다. 계속 달리기만 할 순 없으니까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시간도 필요하다. 내 경우 최근 1년간 이 모든 걸 했고, 지금도 시행착오는 진행 중이다.
위에 언급한 것 중 특히 숨을 고르는 시간, 즉 적당한 휴식은 꼭 필요하다. 너무 뛰기만 하면 쓰러진다. 내 경우 23~24년이 힘들었다고 다른 글에도 여러 번 썼는데, 그렇게 시달리다 작년에 두 달의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이 나에게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머리를 식혀서 조금 더 상황을 냉정하게 보게 됐고, 앞으로 뭘 할지도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인생은 어차피 마라톤이니 큰 목표를 잡았다면 페이스 조절하면서 진행하면 된다.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아도 돌이켜보면 무언가 한 게 있다. 또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어떠한가? 재정비하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고, 그 시간 덕에 앞으로 더 멋진 걸 해낼 수도 있는데. 본인을 너무 채찍질하지 말자. 조금 더 여유를 갖자.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 이는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글은 <잔기술>이라는 에세이 쓰기 소모임에 제출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