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국내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외국을 보니 우리나라와 이런 차이점이 있네?'하고 깨닫는 것이 종종 생긴다. J와 P는 유럽 여행을 하면서 특히 노약자 및 장애인의 이동과 여행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유럽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여행 다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에 둘은 '유럽은 유독 장애인이 많네?'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내 자신들의 생각이 얼마나 바보 같은 것인지를 깨달았다. 유럽에 장애인이 많은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 있는 장애인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시설 및 인프라 측면에서 살펴보니 장애인 및 노약자도 활동하기 편하게 배려한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휠체어가 다니기 어려운 길은 거의 없었고, 계단 이용이 불편한 경우를 대비하여 경사가 낮으면서 이동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뒀다. 푸니쿨라가 발달한 것도 장애인 및 노약자 입장에서 높은 곳에 올라가기 편한 측면이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버스의 경우 저상버스가 많이 다니고 있고 지하철에 리프트와 엘리베이터도 있지만 장애인 입장에서 볼 때 이용하기 편리한가?를 생각할 때 그렇지 않다고 느꼈다. 계단 옆에 비스듬한 길을 만들기는 하지만 경사가 높은 경우가 많다. 그나마 걷기에 특화된 숲길이나 공원의 경우 무장애길을 조성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번화가를 돌아다니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인식 측면에서 차이가 크다고 느꼈다. 유럽은 장애인 및 노약자를 향한 배려가 일상이었고 당연한 것이었으며 그들이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면 기꺼이 감수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것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노인이나 임신부 대상의 배려는 그래도 나름 찾아볼 수 있지만 과연 장애인 입장에서 눈치 보지 않고 저상버스나 지하철을 편히 탈 수 있을까?
우리나라 사회적 전반적으로 장애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가졌다는 건 특히 후천적 장애를 가지게 됐을 때 가장 크게 알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이 든다. 주변 사람 중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됐으나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사례를 본 적 있다. 어떤 이유로 언어 장애가 발생하여 생각과 달리 말로 표현이 잘 되지 않는 분이 있었다(글로는 표현이 가능). 그런 상황이 발생한 지 1년이 넘었고 병원에서도 치료가 어렵다고 했지만 그분의 보호자는 '이는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지 (영구적인) 장애가 아니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장애의 사전적 의미 중 하나는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이고 이미 장애등급판정기준(링크)에 부합하여 장애 상태가 맞았으나 보호자가 끝끝내 그것을 인정하지 않은 경우였다. 아마 보호자 의식 저변에 '장애는 나쁜 것'이고 '말을 못 하는 건 일시적인 증상일 뿐이고 그런 상태가 고착화되었다고 인정하면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깔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본인도 일시적 장애 상태가 된 적 있다. 급성 추간판탈출증(허리 디스크)이 발생하여 응급실에 실려갔고 일주일 동안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했다. 걷는 것은 언감생심이었고 일어서지도, 앉지도 못했다. 용변 처리조차 누워서 해야 하는 시간을 일주일 간 겪으면서 '다시는 이런 상황을 겪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 수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최소한 앉는 것이라도 가능했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휠체어로 얼마나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니 이 나라에서 먹고살려면 어쨌든 걸어 다닐 수는 있어야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최근 우리나라 인식은 점차 개선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복지부에서 장애인이 편히 사용 가능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주요 스포츠 경기장을 점검한다는 기사를 보고 반가웠다.
https://www.yna.co.kr/view/AKR20250917081800530
하지만 스포츠 경기장뿐 아니라 각종 시설에 대해 전반적으로 점검과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은 아니지만 장애인에 준하는' 상태일 때 역시 스포츠나 공연 관람이 어려움을 주변 사례를 통해 체험했기 때문이다.
지인의 어머니는 건강검진을 통해 암을 조기에 발견했다. 천만다행인 일이었지만 암 수술 이후 힘든 항암 치료를 받다 보니 몸이 많이 허약해졌다. 입원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장기간 누워 있으면 근육이 생각보다 빠르게 많이 소실된다. 지인의 어머니 또한 근육이 많이 없어져서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운동도 하고 단백질도 열심히 챙겨 먹고 있지만 아무래도 나이 탓인지 회복이 더뎠고 계단을 걷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와중에 어머니께서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의 공연이 있었고 지인은 어머니의 회복에 도움이 될까 싶어 그 공연을 예매하고자 했다. 하지만 계단을 걷는 것이 불가했고 장애인 등급을 받은 것도 아닌 상황에서 어머니가 장애인 시설을 이용할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지인은 가장 비싼 플로어석(무대와 가장 가깝고 바닥에 의자를 배치하여 자리에 가는 동안 계단을 오르내릴 일이 거의 없는 자리)을 예매했다.
이윽고 공연 날이 되어 공연장을 어머니와 같이 찾았는데 플로어석도 몇 개의 계단을 오르내려야만 했다. 계단 바로 옆에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완만한 길이 보였지만 보안 및 안전을 담당하는 곳에서 그 길을 폐쇄한 바람에 지인이 어머니를 업거나 부축하며 오가야 했다. 그분의 어머니는 공연을 보고 ‘다시는 이런 공연 못 올 줄 알았는데 기쁘다. 고맙다.’고 소감을 전했지만 한편 자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인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용하는 시설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걸 새삼 깨달은 계기였다고 한다.
얼마 전 SNS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위 사례를 돌이켜 봤을 때 동의하는 내용이다.
여러분도 언제든 장애를 가질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함. 다리 하나 부러져도 한국에서의 삶은 갑자기 헬모드가 됨.
* 출처: https://x.com/drjpstudies/status/1960838751296610689
또한 내가 굳이 장애를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과 무관하게, 장애인 및 노약자가 이동할 수 있고 여행할 수 있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 헌법(링크)에 명시되어 있다.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제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제34조 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제34조 2항. 국가는 사회보장ㆍ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모든 국민'에는 당연히 장애인과 노약자도 포함이다. 이 헌법을 내밀었을 때 어디에도 부끄럽지 않을, 보다 나아지는 대한민국이 되길 기대한다.
덧붙임. 이 글을 발행하고 난 후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게 됐다.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두들겨 맞은 청년의 정체 - 오마이뉴스"
https://v.daum.net/v/20250930064200312
다음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J와 P가 해외에서 느낀 바도 동일했다. 아래에서 언급된 '거기'는 미국이다.
한국에서는 장애가 불편하거나 불쌍한 존재인데, 거기서는 상대적으로 장애를 이상하거나 특별하게 여기지 않아서다. 한국에서는 돌아다니기만 해도 시선이 느껴진다. 외국에 나갔을 때는 내가 어떻게 걷든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다른 분들도 읽어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링크를 달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