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AI를 더 잘 활용하려면
여행지에 대한 사전 정보가 별로 없었던 J와 P의 입장에서 ChatGPT와 Gemini 등의 AI는 좋은 여행 조력자였다. 특정 지역에 머무는 일정-그러니까 몇 월 며칠 몇 시부터 몇 월 며칠 몇 시까지 있을 거라는 정보를 말하면 여행 일정을 짜주기도 했고, 시내에서 공항으로 이동하거나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으며, 각 지역별 구입하면 좋을 기념품이나 선물로 사면 좋을 것들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특히 프라하성에 갈 때 도움받은 사례(20화 참고)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단순 최단 경로로 계산하는 지도 애플리케이션과 달리 여행자 입장에서 힘을 좀 덜 들여도 되는 경로를 알려주는 꿀팁 창고이자, 체코의 블타바 강(15화 참고)이나 크로아티아의 디나르 알프스(23화 참고)의 특징에 대해 알려주는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훌륭한 여행 가이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명과 암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AI가 마냥 똑똑하지는 않다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AI를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적어보려고 한다.
앞서 일정을 짜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했지만 그저 일정이 어떻게 되니 그에 맞는 일정을 짜달라고 하면 매우 대중적이고 실패할 가능성이 낮은, 쉽게 말해 안전한 일정을 짜준다. 이는 그 여행지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는 유용하겠지만 두 번 이상 방문하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대중적인 일정을 원할 경우는 별다른 프롬프트(명령)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게 아니라면 본인이 원하는 조건을 붙여야 한다. 가령 '나는 오스트리아 빈에 이미 가본 적 있고 이번에는 남들이 안 가는 특이한 곳을 가고 싶으니 이 점을 고려하여 일정을 짜달라'라고 하면 뜻밖의 여행지를 발견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아래는 J와 P가 다시 한번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를 간다고 가정할 때다. Gemini를 통해 질문했고 선택한 모델은 2.5 Flash이다.
프롬프트: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3박 4일간 머물려고 하는데 일정을 추천해 줘. 첫날 오후 9시에 도착하고 마지막 날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점을 감안해 줘.
답변: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3박 4일 일정으로 여행하시군요. 첫날 늦은 밤에 도착하고 마지막 날 오전에 출발하시는 점을 고려하여, 실제 관광에 온전히 할애할 수 있는 이틀에 집중한 효율적인 일정을 추천해 드릴게요.
1일 차: 도착 후 휴식
• 오후 9시: 두브로브니크 공항(DBV) 도착.
•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공항 셔틀버스(Airport Shuttle Bus)**를 이용하거나, 택시 또는 Uber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합니다.
• 밤: 숙소에 도착 후 체크인하고, 긴 이동으로 피곤하실 테니 충분한 휴식을 취하세요.
2일 차: 구시가지와 성벽 투어
둘째 날은 두브로브니크 여행의 핵심인 구시가지와 성벽을 온전히 즐기는 날입니다.
• 오전 (성벽 투어): 아침 일찍 두브로브니크 성벽 투어를 시작하세요. 성벽은 아침 일찍 문을 열며, 뜨거운 햇볕을 피하고 여유롭게 둘러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대입니다. 성벽 위에서 바라보는 구시가지의 주황색 지붕과 푸른 아드리아해의 조화는 잊지 못할 풍경을 선사할 거예요.
• 오후 (구시가지 탐험): 성벽 투어 후에는 구시가지 안으로 내려와 여유롭게 거리를 거닐어 보세요. 주요 거리인 **스트라둔(Stradun)**을 따라 걸으며 오노프리오 분수(Onofrio's Fountain), 스폰자 궁전(Sponza Palace), 렉터 궁전(Rector's Palace) 등을 둘러보세요.
• 오후 늦게 (스르지 산 케이블카): 해가 지기 시작할 때쯤 스르지 산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세요. 정상에서 바라보는 구시가지의 일몰은 정말 아름다워요.
• 저녁: 구시가지 내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카사(Buža) 바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낭만적인 밤을 보내세요.
3일 차: 로크룸 섬 또는 해변 휴식
셋째 날은 구시가지 외의 여유로운 풍경을 즐기는 날입니다.
• 오전 (로크룸 섬 투어): 구시가지의 올드 포트(Old Port)에서 배를 타고 로크룸 섬으로 가보세요. '왕좌의 게임' 촬영지이기도 한 이 섬은 공작새와 토끼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평화로운 곳입니다. 섬에 있는 **데드 씨(Dead Sea)**에서 수영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 오후 (해변 휴식): 섬에서 돌아온 후 **반예 비치(Banje Beach)**나 **라파드 해변(Lapad Beach)**에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세요. 해변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거나, 아드리아해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습니다.
• 저녁: 마지막 밤인 만큼, 조금 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특별한 저녁 식사를 즐기세요.
4일 차: 출발
• 오전: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이동하여 귀국 준비를 하세요.
이 일정은 가장 효율적인 동선과 시간을 고려한 추천입니다. 동행인분과 취향에 맞게 일정을 조정하여 즐거운 두브로브니크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나쁘지 않지만 이미 J와 P가 간 곳이 2일 차에 몰려있다. 그러니 2일 차 일정을 바꿔달라고 해보자. 기왕이면 독특한 곳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서.
성벽투어와 구시가지는 이미 가본 적이 있는데 남들이 해보지 않았을 색다른 코스를 추천해 줄 수 있어? 2일 차만 수정하면 돼
아래는 그 답변인데 정말 색다른 코스를 추천해 준다. 다만 좀 이상한 부분도 있다.
두브로브니크에 이미 여러 번 방문하셨군요! 성벽 투어와 구시가지가 익숙하시다면, 남들이 잘 모르는 특별하고 색다른 경험들을 중심으로 2일 차 일정을 수정해 드릴게요.
2일 차: 숨겨진 보물 찾기와 이색 체험
둘째 날은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와 문화를 더 깊이 체험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새로운 시각으로 즐기는 데 초점을 맞춰보세요.
• 오전: 코모르차 공동묘지(Boninovo Cemetery)와 포르피렐라 수로(Porporela Harbor)
◦ 코모르차 공동묘지: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북서쪽 언덕에 위치한 곳입니다.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로, 아드리아해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합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 포르피렐라 수로: 구시가지 동쪽에 있는 작은 항구입니다. 아침 일찍 방문하면 어부들이 고기를 잡는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현지인들의 일상을 엿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 오후: 카약 투어
◦ 두브로브니크의 푸른 바다를 새로운 시각으로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카약 투어입니다. 구시가지 성벽 아래에서 시작하는 투어에 참여하면, 바다 위에서 성벽의 웅장함을 감상하고, 숨겨진 동굴이나 해변을 탐험할 수 있습니다.
◦ 팁: 두브로브니크 주변의 작은 섬인 로크룸 섬 근처에서 패들링을 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수영복을 미리 챙겨 가세요.
• 저녁: 쿠킹 클래스◦ 두브로브니크의 식문화를 깊이 있게 경험하고 싶다면 쿠킹 클래스를 신청해 보세요. 현지 셰프와 함께 신선한 해산물을 이용한 전통 크로아티아 요리를 배우고 직접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잊지 못할 추억과 함께 특별한 레시피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 팁: 쿠킹 클래스는 인기가 많으므로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습니다.
3일 차: 출발
• 오전: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이동하여 귀국 준비를 하세요.
이러한 일정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을 벗어나, 두브로브니크의 숨겨진 아름다움과 현지 문화를 깊이 있게 체험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공동묘지, 포르피렐라 수로, 쿠킹 클래스와 같은 건 꽤 만족스러운 발견이다. 다만 이미 가본 적이 있다고 했을 뿐 여러 번 방문했다는 말은 안 했는데, 그리고 앞서 3박 4일 일정임을 언급했고 2일 차만 바꿔달라고 했는데 왜 3일 차에 출발하라고 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카약 투어의 경우 바람이 강할 땐 못할 수도 있는데 이런 점은 왜 알려주지 않는가 싶다. 이처럼 AI는 어떤 면에서는 똑똑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똑똑하지 않다.
그럼에도 여행 설계에는 꽤 좋은 도우미임을 부정할 수 없다. 본인이 원하는 여행 스타일을 말해주고 그에 맞게 일정을 짜달라고 하면 획일적인 여행에서 벗어난 여행 코스를 설계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는 AI를 사용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마음가짐, 태도에 가까운 부분이다. AI로 여행 일정이나 맛집, 그 외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은 분명 유용하고 효율적인 사용 방법이다. 하지만 왜 이것을 하는지를 잊으면 안 된다. 결국 보다 여행을 덜 힘들게 하고,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함이라는 걸. 그리고 동행인이 있다면 동행인과 함께 좋은 경험을 하기 위함이라는 걸.
예를 들어 A, B, C가 일본 여행을 떠났다고 하자. A는 그 여행지가 초행이지만 AI로 이런저런 정보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고, B는 일본 여행 덕후라서 이미 일본 곳곳을 여러 번 가봤고 그래서 누구보다 해박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고, 마지막으로 C는 AI에 대해 아직 신뢰하기 어렵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이다. 각자의 특징에 대해서는 서로 알고 있다.
여행 중 오사카에서 도쿄로 기차를 타고 이동하게 됐다. B는 이미 그렇게 이동해 본 경험이 있고 기차역에 어떻게 가야 하며 얼마나 걸리는지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A는 숙소에서 기차역까지의 이동 경로를 AI를 통해 알아보고 'AI에게 물어보니 몇 시에는 출발해서 기차역에 어떻게 가야 한다더라'라고 말했다. B는 반대 의견을 냈다. 경험상 AI가 답변했다는 출발 시간이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가 너무도 강력히 주장하자 B의 마음도 흔들렸다. 자신이 일본에 상주하는 것도 아니고, 안 가본 사이에 달라진 게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A의 주장에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B의 말이 맞았고 그 결과 기차역에서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B의 말을 들었다면 한 시간 정도 무언가 더 하고 올 수 있었는데.
도쿄로 가는 동안 C는 이런저런 검색을 하면서 맛있다는 초밥집을 몇 군데 알아냈다. 리뷰를 꼼꼼히 살피며 이 정도면 꽤 괜찮겠다 싶은 곳을 두세 군데 찜해놨다. C는 자랑스럽게 A와 B에게 이 사실을 공유했는데 A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확 상했다.
"아, 그 음식점 AI도 괜찮다고 하더라!"
AI를 신뢰하지 않는 C 입장에서는 이 말이 동조나 칭찬으로 들릴 리가 없다. C 입장에서는 본인의 노력을 들여 검색하고 리뷰를 살펴보며 본인의 판단으로 고른 것이다. 그런데 AI가 괜찮다고 하더라 말하는 A의 말은 마치 C의 말을 사람 대 사람으로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승인했으니 믿을만하다고 들릴 수 있다. 최소한 AI가 추천한 결과라 하더라도 A가 그 사실을 말하지 않거나 혹은 스스로 그 음식점이 진짜 맛있는 곳이 맞는지 교차점검만 했어도 C가 기분이 나쁘진 않았을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AI는 훌륭한 조력자이지만 가끔 바보짓을 한다. 없는 정보를 말하기도 하고 동문서답을 하기도 한다. 또한 지나치게 안전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이 점을 고려하지 못하고 장점만 생각한 A가 고집부린 결과로 B 입장에서는 그의 경험이 무시된 듯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고 C 입장에서는 그의 노력이 무시된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여행 전에 AI가 준 지식을 우선 활용하기로 합의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내가 알아봤더니' 식의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이 서로가 즐거운 여행을 위해 좋은 선택일지 모른다.
일행 중에 살아있는 가이드북 수준으로 그 여행지를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우선 믿자. 사전에 그 여행지를 철저히 조사해 온 사람이 있다면 그 또한 우선 믿자. AI가 지금보다 훨씬 똑똑해진다 해도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을 우선해야 하는 건 변하지 않아야 할 가치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