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참고 바다로 다이브!

여행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by 김연큰

오렌지빛 석양을 본 다음날은 그 보색인 파란색을 즐기는 날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동유럽을 여행하며 호수와 강은 꽤 보았지만 바다는 처음이었다. 당연하다. 이번 여행지 중 헝가리, 오스트리아, 체코 모두 내륙 국가다. 바다를 접한 나라는 크로아티아가 유일하다. 그리하여 여행의 마지막을 바다로 장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몰랐다.


J와 P가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한 이틀 전 저녁,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면서 생각보다 숙소가 바다에 인접해 있는 걸 알았다. 어쩌면 숙소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해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침 식사를 하면서 구글 지도를 샅샅이 살폈다. 전날 올드타운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두브로브니크가 바다와 접한 도시이긴 해도 암석과 절벽이 많아 물놀이하기 적합한 얕은 곳이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다행히도 숙소에서 도보 15분 정도 거리에 해변(Beach)이 있었다. Bellevue(벨레뷰? 벨뷰?)라는 해변이었고, 이름에서 예쁠 거 같다는 느낌이 뿜뿜 왔다. bella는 스페인어로 아름답다, 예쁘다는 뜻인데 이 단어와 비슷해서 그렇게 느낀 것.


둘은 할슈타트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영복을 미리 입고 속건 재질의 겉옷을 걸쳤다. 타월, 슬리퍼 등을 들고 설렁설렁 구글 지도에서 안내하는 경로를 따라나섰다. 둘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같은 숙소에 묵는 동양인 가족들도 물놀이 패션으로 어딘가 가던데 같은 곳을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1번 -> 2번 순으로 갔다.

원래는 Bellevue Beach로 바로 갈 생각이었지만 구글 지도에서 Bellevue smaller beach 리뷰를 보고 여길 먼저 가보기로 했다. Rixos Premium Dubrovnik 호텔과 인접해 있어 그런지 관리가 잘 되었고 숙박객 전용 해변은 아니라서 즐기기 좋은 해변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닿았던 것.


가는 길은 생각보다 오르막길이었다. 완만하긴 했지만 십여 분을 계속 올라가야 했는데 어느 순간 가는 길 왼편으로 푸른 바다가 보여 근방에 도착한 것 같았다. 이윽고 Bellevue라는 표지판이 보였고 골목으로 들어갈수록 오히려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다들 같은 곳을 향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길 잃을 걱정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계단을 계속 내려가야 했다. 아, 이 이야기는 숙소로 돌아갈 때에는 내려간 길을 올라가고, 올라온 길을 내려간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미 온 거 어쩔 수 없다. 여기까지 온 이상 발이라도 담가야 한다.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해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래사장이 깔린 해변은 아니었지만 바다로 향하는 길이 사람이 누울 수 있을 정도의 너비를 가진 널찍한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일행별로 자리를 잡기에 손색없었고 바다로 향하는 입구는 바닥이 다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맑아 밑을 잘 보고 내려가면 딱히 위험할 것 같진 않았다.


대충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아 짐을 놓고 바다로 들어갔다. 할슈타트만큼은 아니어도 물이 꽤 찼다. 하지만 워낙 햇빛이 강해 그 차가움은 금방 잊게 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크로아티아는 지리적 특성상 백사장이 있는 해변이 드물고 대부분 돌과 암석이 있는 해변이라고 한다.


뇌피셜인데, 아무래도 호텔에서 어느 정도 관리를 하는 거 같았다. (뇌피셜이니 그 생각이 틀렸을 수 있다. 다른 곳에서 관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해수욕장처럼 안전요원이 상주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수영 가능한 라인을 정해두고 있어 일정 거리 이상은 갈 수 없게 해 놓았다. 그리고 바닷물이 엄청 맑고 깨끗하다는 점에서 수시로 청소를 하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고 바다에 얼굴을 푹 담갔다. 귓가에 '타닥타닥 타타타탁'하고 물고기들이 뭔가 먹는 소리가 들렸다. 맨눈으로 잠시 살펴봤는데 물고기가 보였다. 스노클링이 가능한 바다라는 뜻이다. 스노클링 장비까지는 아니어도 수경이라도 갖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만시지탄이다.


이 바다는 사람도 적고 사진 찍기 좋은 장소도 있어 기념사진을 남기기에 아주 좋았다. 위 사진 우측 하단에 보이는, 삐죽 나온 너른 돌판이 있어서 그 위에 눕거나 일어서서 포즈 취하며 사진을 찍으니 바다와 함께 정말 멋지게 나왔다.

돌판 위에 서서 전경을 담아보았다

이처럼 신나고 재밌는 곳이었지만 오래 있기는 어려웠다. 이곳의 가장 큰 문제는 그늘의 부재였다. 호텔에 있는 선베드와 파라솔이 부럽기 그지없었다. 숙박객이 아니라도 유료로 사용 가능할지 알아보려 했으나 사람이 없어서 알 수 없었다.


게다가 호텔과 연결된 입구가 아닌 돌판 쪽 입구는 이끼가 많이 껴서 미끄러웠다. 심지어 바람이 강한 탓인지 파도가 세서 물속에 있을 땐 괜찮은데 들어가고 나올 때가 힘들고 위험했다. 나름 조심한다고 해도 들어가거나 나오려는 순간 파도가 들이닥치면 사고 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J와 P는 본래 가려던 Bellevue Beach로 향했다. 내려왔던 돌계단을 올라가 샛길로 빠지면 다시 계단이 나왔는데 그쪽을 향해 내려가면 구글 지도상의 Bellevue Beach가 아닌 그 옆 Swimming area 쪽으로 갈 수 있었다.

왼쪽 사진에 보이는 해변이 지도상 Bellevue Beach다. 오른쪽 사진은 Swimming area에서 찍은 것

Bellevue Beach는 작은 규모이지만 백사장이 있고 옆에 동굴이 인접해 있었다. 구글 지도 리뷰에서 보니 동굴에 들어가 보는 것도 재밌다고 하는데 대충 보니 아이들이나 가족 단위로 주로 자리 잡고 놀고 있었고 무엇보다 보기보다 해변이 넓은 탓에 Swimming area에서 백사장까지 가기에는 꽤 이동을 해야 했다. 안 그래도 계속 계단을 오르내려 다리에 피로감이 있다 보니 귀차니즘이 발동됐다. 그들의 주목적은 모래찜질이나 동굴 탐험이 아닌 수영이니까 이쪽에 머물자고 결정했다. 또한 Swimming area 쪽은 그늘이 좀 있는 것도 그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


Swimming area에서 바닷물을 보니 수심이 꽤 깊어 보였다. 맑은데 바닥이 보이지 않는 상황. 이미 어느 정도 물놀이를 하다 와서 바닷물 온도에 대한 부담은 없었지만 이렇게 깊은 곳에 들어가도 되는지 우려됐다. 잠시 고민하다 주변 다른 이들은 문제없이 잘 놀기에 조심스레 입수했다. 그리고 입수하자마자 여기가 Swimming area라고 지도에 표기된 이유를 알게 됐다. 예상대로 수심이 깊었다. 최소 1.6m 이상은 되는 듯했다. 물놀이가 아닌, 진짜 수영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이쪽에서 입수하면 안 되겠지만 다행히 둘 다 수영을 제법 하는 편이라 놀기는 좋았다.


두 사람 외에도 한중일계 관광객들도 분명 보였는데 깊은 물에 들어가는 것은 주저했다. 얕은 곳에서 몸을 담그거나 사진을 찍는데 주력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두 사람 외에 수영하면서 신나게 노는 아시아인은 딱 한 명 보았다. 반면 유럽인들은 깊은 물에서도 수영하면서 잘 놀았다. 어려서부터 수영이 생활체육화 되어 있는 것일까?


그리고 곳곳에서 사람들이 다이빙을 했다. 할슈타트에서 봤던 딱 그 풍경이다. 차이점이라면 할슈타트에서는 주로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다이빙하는 걸 봤다면 여기는 성인들이 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수심이 깊은 탓도 있을 듯하다.

Swimming area 쪽에서 전경을 찍는 중에도 누군가 뛰어든다
동굴 옆 절벽에서 다이빙하는 사람 목격

상황이 이리되니 할슈타트에서 다이빙을 망설이다 못하고 아쉬워했던 게 떠올랐다. 절벽에서 다이빙은 차마 못하겠지만 그래도 여기저기서 뛰어드는 사람들처럼 두 사람도 그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P는 다이빙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J가 배운 바 있어 J의 즉석 강습이 시작됐다.


J는 다이빙할 때 중심 이동이 잘 안 되면 머리가 먼저 들어가는 게 아닌 배가 수면에 부딪히는 배치기를 하게 된다고 했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머리부터 입수해야 한다는 두려움을 떨치고 용기를 냈으나... 결론만 말하면 둘 다 다이빙이 아닌 배치기를 하고 말았다. 배치기를 했다는 증거는 각자 찍은 영상에 또렷이 남았다. P는 이론상의 숙지 후 J에게 자세를 봐달라고 하며 분명 배운 대로 했는데 '머리부터 들어간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네?' 생각했다. 하기사 나름 정식으로 배운 J도 아직 배치기를 하는데 P가 첫 술에 배부르길 바란 건 언감생심일 게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왜 뛰어드는지 알겠다 싶었다. 너무 재밌었다. 할슈타트에서도 해볼걸 그랬단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 이제라도 해본 게 어디냐 싶었다. 다음에 다이빙 가능한 해변을 가면 이제는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 것이다.


이렇게 여행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실컷 놀다 배고파진 둘은 숙소 돌아가 짐을 정리하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전날 같은 관광지가 아닌 두브로브니크의 일상이 묻어나는 도로를 걷다 보니 실거주민들을 많이 보게 되어 느낀 바가 많았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정말 평균키가 크다는 것이다. 키가 180이 넘는 J도 작은 축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발칸반도 사람들의 특징인가 싶기도 하고.


그다음 느낀 점은 보행 신호. 지금껏 다녀본 유럽은 대체로 보행 신호 시간이 우리나라보다 길다고 느꼈는데 크로아티아는 우리나라처럼 보행 신호 길이가 짧은 편이다. 보행 신호로 바뀌기 전 보행자가 타이밍을 예측하여 몇 발자국 미리 건너는 것조차 비슷하다.

평점 좋고 사람 많던 크로아티아 전통 음식점이라는 곳을 갔는데 별 특색은 없다.

또한 크로아티아는 전통적 음식이랄까, 그 나라만의 특색이 느껴지는 그런 음식은 별로 없다고 느꼈다. 소시지 내지 쾨프테 중간급처럼 보이는 체바피라는 게 그나마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는 느낌? 그 외 다른 음식점은 유럽 내 다른 국가에서 먹는 거 적당히 섞어서 먹는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면 해산물 음식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그런 점에서 아마 해산물 굽거나 찌거나 튀겨 먹던 것이야말로 크로아티아 음식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디나르 알프스 너머 내륙지역은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겠다만.

아파트가 많은 크로아티아

마지막으로 크로아티아는 유럽치고 아파트가 많다. 이는 스플리트에 도착할 때부터 느꼈는데 국립공원 지역인 플리트비체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아파트를 많이 봤다. 둘이 두브로브니크에서 묵었던 숙소도 아파트였다. 아마 크로아티아를 가로지르는 디나르 알프스 때문에 실제로 살 곳은 국토 면적 대비 한정되어 있어서 이렇게 된 거 아닐까 추측을 해보았다.




이제 마지막 밤이다. 크로아티아를 포함하여 동유럽과 안녕할 시간이 다가온다.


그날 밤은 보름이었다. 나가서 달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물놀이를 너무 신나게 했는지 이른 시간에 그만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다. 아침에 눈 뜨고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 전날 바다에 비친 예쁜 달을 봤으니 그걸로 됐다 생각하기로 했다.

숙소에 걸려있던 그림. 처음에는 이게 뭔지 몰랐는데 이젠 안다.

예전에 <걸어서 세계 속으로> 크로아티아 편을 본 적 있다. 당연히 두브로브니크도 등장했으며 관광객 대상으로 이런저런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중 자그레브에서 왔다고 밝힌 관광객이 말한 게 기억에 남았었다.


"전 세계 곳곳을 다녀봤지만 두브로브니크가 가장 아름답다 생각해요."


크로아티아를 여행한 뒤 J와 P도 그 말을 인정했다. '가장'까지는 모르겠지만, 두브로브니크에서 본 바다가 그 둘이 다녀본 나라의 그 어떤 바다보다 아름다웠노라고. 언젠가 크로아티아를 다시 온다면 아드리아해 섬 투어를 해보고 싶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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