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둔 진짜 이유

회사원 체질 vs. 회사 밖 체질

by 김연큰

한때 회사원이 체질이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주니어 때는 시킨 일만 해도 되니까 편하다고 느꼈고,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후에도 회사원이 좋다고 생각했다. 가끔 일정에 대한 압박으로 야근은 물론 밤을 새워야만 하는 일이 있기는 했으나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평균적으로 적당한 업무 강도에 적당한 성취감, 부족하지 않은 월급 등 굳이 회사를 다니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이직하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에 금이 간 건 1화(링크)에서 언급한 2017년이었다. 그때의 이야기를 조금 더 길게 해보려 한다. 1화에서는 '회사를 정년까지 다니면 안 되겠다'는 결론을 도출한 대략적인 이야기만 다루었을 뿐, 그 자세한 내막은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의할 수 없는 길


원래는 이직을 할까 고민하다 장기 휴가가 생겨서 떠났던 여행이었다. 낯선 여행지의 낯선 식당의 바 자리에 앉았다가 바로 옆자리에 나처럼 홀로 여행온 한국인이 있어 합석하게 됐다. 얘기를 나눠보니 그는 나와 같은 업계, 즉 IT 업계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었다. 그 사람도 회사에서 하는 일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고, 그 고민의 결과로 이미 퇴사한 상태였다. 머리를 식힐 겸 다음 단계를 생각할 겸 떠난 여행이라고 했다.


그와 내가 다닌 회사는 각각 달랐지만 두 회사 모두 '플랫폼 만들기'에 열올리고 있었다는 상황은 같았다. 둘 다 회사에서 하는 일에 회의감을 가진 계기는 그 플랫폼 때문이었다. 두 회사 모두 중소업체의 다양한 서비스를 중개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상생하겠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대외적으로 천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는 입장에서는 '결국 플랫폼 회사가 하려는 건 사용자가 그 플랫폼 없으면 불편한 상황, 즉 의존성을 높여 모든 것을 독식하겠다는 의미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둘 다 몇몇 IT 회사가 만들어가는 플랫폼 생태계에 대해 '이것이 과연 옳은가'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주제로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람과의 연은 거기까지였다. 그 식당에서 시작해서 그 식당에서 끝을 맺었다.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지만 실상 짧은 대화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대화가 준 깨달음은 나에게 지속적으로 돌아오는 메아리가 되었다.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회사가 가는 길이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에 기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플랫폼을 만드는 게 아닌 다른 일을 하는 회사를 찾거나 아예 회사원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해야 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한창 돈 쓰는 재미에 빠져서 여윳돈도 없었고 회사원 다음의 진로는 생각해 본 적도 없어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섣불리 후자의 길을 실행하기에는 너무도 위험이 컸다. 차선으로 이직을 택하기로 했다.




월급의 대가


시간이 흐르고 2020년 이후 나는 격변의 이직을 했다. 몇 개월 다니고 이직하는 걸 반복했다. 코로나19가 터진 2020년부터 2023년 정도까지는 IT 업계의 인력 수요가 급증한 덕에 이직하기 쉬웠던 상황과 다른 요인이 맞물린 영향이다.


2017년에 다니고 있던 회사는 결국 2020년까지 다녔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이직을 알아봤지만 그곳만 한 회사를 찾지 못해 계속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2020년에 어떤 회사에서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에 대한 공고가 났고 최종합격했다. 흔히들 '회사는 어딜 가나 똑같다'는 말을 한다. 그 말을 믿고 내 개인의 성취를 위해 떠났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그 말이 참이 아닐 수 있음을 떠나고서야 알았다. 회사의 비전 및 방향성이나 조직 문화 등에서 그 회사만큼 나랑 잘 맞는 회사가 없었다. 그래도 그런 회사가 어딘가 있지 않을까 싶어 몇 달 다니고 아니다 싶으면 이직하길 반복했는데 결론적으로 어딜 가도 그 회사만큼 만족스럽지 않았다. 내가 후회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그 회사 동료들이 다시 돌아오라고 손짓했지만 장고 끝에 거절했다. 돌아가더라도 플랫폼과 거리가 있는 일을 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방황하다 '이제 경력을 생각하면 더 이상 이직하면 안 되겠다, 여기서 최소 1년은 다녀야겠다' 생각했던 회사가 마지막 회사가 되었다. 내가 다녔던 회사 중 가장 좋은 복지 덕에 버티기는 했으나 날이 갈수록 복지를 제외한 것들- 특히 조직 문화나 일하는 방식 등에서 내 가치관과 충돌이 심해졌다. 이런 식으로는 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2017년에 다니고 있던 회사는 그런 것에 대해 의사표현을 할 수 있고 개선을 요청할 수 있었다. 검토 후 내 의견이 타당하고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반영해 주었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현재 상황이 이러해서 적용이 힘들다는 피드백을 주어 일정 선에서 타협하고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 회사가 특이했던 거였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듯이, 대부분의 회사는 그들의 룰을 따르기를 요구했다. 월급은 업무를 한 대가와 그 룰을 지킨 대가를 더한 결과물이었다.


난 회사원 체질이 아니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회사를 그만둔 시기가 '그때'인 이유


사실 버티고 다니려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던 일에 대해 한 해 혹은 두 해 늦게 시작한다고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25년 초에 '지금 그만둬야 한다'라고 결심했던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1화 말미에 언급한 '내 상황에 가장 좋은 시기'가 그때라고 생각한 계기를 이제야 풀어보려 한다. 2화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일을 준비할 시간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는데 그 근거는 단순히 조직장님이 더 많은 일을 주려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업계의 트렌드를 지켜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회사 방향성에 대한 비동의가 회사원을 그만둘 준비를 하게 해 주었다면 새로이 등장한 트렌드인 AI의 발전과 발달은 내가 회사원을 그만두게 행동하도록 한 결정적인 트리거가 되었다. 24년부터 AI를 사용해 보고 발전을 지켜본 결과 그로 인해 고용 시장 및 업무 방식에 엄청난 변화가 올 것을 직감했다. 퇴사를 결심한 후 내가 예측한 내용에 대해 나의 비공개 SNS 및 일기에 적었다. 그중 일기에 적은 내용을 아래에 옮기면 다음과 같다.


IT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전보다 많은 일을 하게 됐다. 이는 일에 들이는 시간이 늘어났음을 뜻한다. 예전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사무실에 있을 때 기준으로 50 정도였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IT 발전으로 한 번에 여러 일을 할 수 있게 되고(정확히는 그런 처리를 요구하고) 일과 삶의 분리가 희미해지면서(퇴근 후에도 전화를 받을 수 있고 폰을 통해서 업무를 할 수 있다) 지금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100 정도가 되었다(실질적인 근로의 양과 시간 증가).

이에 더해 AI 발전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늘릴 수도 있고 심지어 난이도도 높일 수 있다. 앞으로는 AI로 대체하는 일이 생기면서 단순 업무가 줄어들 것이다. 예전에는 한 사람이 단순 업무와 인지 능력이 필요한 고차원 업무를 같이 했다면 앞으로는 고차원 업무만 남을 것이다. 그럼 한 사람이 하는 일의 난이도가 높아지기는 했으나 양이 줄어드냐? 하면 그게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단순 업무를 했던 리소스에 고차원 업무를 추가로 부여할 거라고 본다. 즉 개인이 하는 업무에 쉬운 일(머리를 좀 덜 써도 되는 일)은 줄어들고 어려운 일(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하거나 개선을 하는 등의 일)의 비중이 급증할 것이다. 따라서 개개인이 받는 스트레스가 늘어날 것이고 이를 해소할 수 있도록 질 좋은 휴식이 필요하거나 정신과 진료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또한 그렇게 어려운 업무를 한 사람이 여러 개 하다 보니 -어려운 업무의 수가 그대로라는 가정 하에- 필요한 인력도 줄어들 것이다. 내 생각에 개개인 입장에서는 업무 난이도가 올라가서 곡소리 나겠지만 위에선 팔짱 끼고 있을 거다. 단순 업무를 AI가 대체하면서 업무 양이 줄어들었으니 사람 줄여도 되잖아? 하면서 예전에 10명 뽑던 걸 3~4명 정도 뽑지 않을까 하는 어두운 전망을 해본다.


내 예측이 맞다면 업무의 난이도가 올라가서 퇴근 후에는 휴식을 하며 머리를 식히기 급급할 것이고 그러면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원이 아닌 다른 일'을 준비할 시간이 줄어들 거라고 예상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으며 그걸 실행에 옮길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지인들을 통해 현재 돌아가는 IT 업계 상황을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게 맞아떨어지는 모양새다. 채용은 신규와 경력을 막론하고 눈에 띄게 줄어들어 신입 취업은 물론이고 경력 이직도 어려워졌다. 재직 중인 사람들의 업무량은 대부분 늘었고 업무의 복잡도는 올라갔다. 그나마 AI를 잘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은 형편이 나았다. 원래 업무가 많아서 AI를 차마 만져볼 틈도 없던 사람들은 더욱 힘들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본래 <회사는 그만두고 다른 걸 해볼래요>는 20화로 예정하고 있었으나 마지막 이야기의 분량이 한 화에 다루기에는 많다고 판단하여 두 화로 나누려 합니다.
이에 차주 화요일인 2026년 1월 6일에 마지막 이야기인 21화가 발행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너른 양해 부탁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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