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이 체질이라면 회사를 다닐 수 있어야 한다
어느덧 이 브런치북의 종착역에 다다랐다. 새삼스럽지만 이 마지막 이야기에서 시작을 먼저 얘기하려 한다. 왜 이 브런치북을 시작했는지, 연재하는 동안 느낀 이 브런치북의 한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퇴사 이후 현실에서 느낀,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루고 맺으려 한다.
9화(링크) 및 10화에서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 있다. 한 달에 얼마의 생활비를 잡아야 하는가 한창 계산기를 두들길 때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내가 얼마의 금액을 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도움말이나 경험담은 정년을 채운, 은퇴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나처럼 다른 일을 하려고 직장을 그만둔 사람에 해당되는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를 다니지 않고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늘어날 거라고 봤다. 나처럼 다른 일이 하고 싶어서 그럴 수도 있고, 자신의 의사가 확고한 건 아니었지만 상황상 어쩌다 보니 그런 경우도 있을 거라 봤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정년퇴직까지 다니는 비율은 17% 정도에 불과하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통계는 정년이 연장된다고 모두가 그 연령까지 직장인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참고: 정년퇴직 비중 17.3% 뿐. 평균 52.9세에 일터서 강제로 떠난다 - 머니S
https://www.moneys.co.kr/article/2025111914311096995
그렇다면 내가 겪은 것이라도 기록하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사실 수년 전부터 회사를 나갈 생각을 하고 준비를 했기에 갑작스레 회사를 나가게 된 사람에게는 내 기록이 별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어떤 꿈을 품고 회사원을 그만둘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참고자료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최소한 이런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이런 준비는 해두어야 하며,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
9화 건강보험 후일담
25년 11월에 소득 요건이 확인된 이후 지역가입자 전환 시 다시 연락이 올 거라고 들었는데, 12월까지도 아무 연락이 없다. 앱을 들어가 봐도 별다른 변동이 없어 대기 중이다. (9화에 보다 자세한 내용을 업데이트했습니다.)
지금까지 이 브런치북을 읽어보신 분은 느꼈겠지만 아직까지는 회사를 나온 이후 큰 어려움은 없었다. 몇 가지 가벼운 좌충우돌과 눈 질끈 감으면 넘길 수 있는 소소한 불편함이 있었을 뿐이다. 내 일에 대해서는 어려움을 겪은 게 있지만 그것은 이 브런치북에서 다룰 내용이 아니므로 넘어가고, 생활 자체만 놓고 보면 '에이, 뭐 별 거 없네?'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활에 별 어려움이 없는 것은 돈 걱정을 덜 할 수 있는 환경 덕분이라 생각한다.
우선 준비의 측면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회사에서 나올 준비를 했기에 금전적으로 단단히 준비를 했다. 월급 외 추가적인 수입이 있을 땐 항상 퇴사 후 비상금 용도로 저축하여 1년 내지 1.5년을 버틸 수 있는 금액을 만들었다. 회사를 떠난 지 어느덧 6개월이 되어 가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회사를 나오기 전 이렇게 준비를 한 부분이 가장 잘한 점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용돈이라도 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금전적인 부분은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또한 내 성향 덕분도 있다. 내향적인 성향이라 밖에 잘 나가지 않고 운동마저 집에서 한다(운동복, 매트, 아령만 있으면 되고 몇 년 써도 문제없다). 2017년에는 돈 쓰는 재미에 빠졌었다고 했지만 그때 하도 이것저것 질러봐서 그런지 지금은 딱히 물욕도 없다. 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군것질도 거의 하지 않고 디저트류에도 관심이 없다. 요즘 유행하는 두쫀쿠(두바이쫀득쿠키)도 나에게는 관심 밖 존재다. 어느 날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생길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으나 현재의 일상에서는 딱히 생활비가 많이 들 일이 없다.
위 내용을 뒤집으면 금전적 준비가 되지 않고(혹은 그런 준비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돈을 쓰기 좋아하는 성향이면 회사 밖은 춥다는 말을 보다 더 빨리 체감할지 모른다.
금전적으로 준비를 할 수 있던 건 내가 운이 좋았던 덕도 있다. 흔히 말하는 복지 좋고 안정적인 회사를 정규직으로 다니고 가족 부양에서 자유로운 편이어서(때로 아닌 경우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는 그랬다.) 나를 위한 돈을 모으기 쉬웠다. 다른 사람들은 나와 다른 상황일 수도 있기에 그리고 직장인이 천성인 사람도 있을 것이기에 ‘모두 회사를 나와 제2의 직업을 준비하세요!’라고 권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상황에 따라 몇 가지 조언을 드리고 싶다.
첫째, 언젠가 회사를 나올 생각을 하고 있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아직 모를 수 있다. 나처럼 누군가 옆에서 힌트를 주는 사람이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만 시간을 내어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 권한다. 원데이 클래스를 여러 가지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며, 회사 내에서 여러 직군이나 서비스를 돌아가며 경험해 보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한다. 내가 다닌 회사들은 'IT'라는 큰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지만 그 내부에서 겪은 서비스는 다양했다. (광고, SNS, 콘텐츠, 핀테크 등) 그런 서비스 경험들이 내가 가진 지식자산의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둘째, 언젠가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라면 최소 반년은 허리띠를 바짝 조이고 생활해 보기 바란다. 곤궁한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가, 한 달에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한가, 어떤 소비를 포기할 수 있고 포기할 수 없는가를 산정해 봐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지출이 발생할 일이 별로 없다. 밖에 나가는 걸 귀찮아해서 친구들과 약속도 잘 안 잡는 편이다(그렇게 드물게 만나도 우정이 지속될 수 있는 친구들만 있다). 그 덕에 한 달 생활비가 적게 든다. 소비 성향을 포기할 수 없거나 현실적으로 큰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면(예: 부채 상환, 부모 부양, 자녀 부양 등) 회사를 계속 다니는 편이 나을 수 있다. 나 역시 2017년에는 소비 성향을 포기할 수 없어 퇴사의 꿈을 미루었고, 몇 년 전에는 부모님이 차례로 아프셔서 회사 복지를 이용하고자 퇴사할 수 없었다.
셋째, 이건 직장인의 길만을 갈 사람에게도 드리는 조언으로, 최소 1년을 버틸 수 있는 돈을 마련해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사 본인이 직장인 체질이라 직장인 외의 다른 길을 생각하지 않는 분이라 하더라도 자의가 아닌 상황상의 문제로 제2의 직업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드는 보험이라 생각하고 그 정도의 비상금은 꼭 마련해 두시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또한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으로, 수입이 있을 때 반드시 제대로 된 운동 기관에서 운동을 배울 것을 권한다. 내 경우 유튜브 영상을 따라 하며 홈트를 한다고 했지만 이는 오프라인에서 대면 학습을 통해 제대로 자세를 배운 바 있기에 가능했다. 자세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유튜브 영상만 따라 하는 것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좋은 선생님께 양질의 학습을 받길 권한다.
15화(링크) 말미에 '내가 원하는 조건, 그러니까 급여가 적더라도 평사원으로 계속 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과연 내가 퇴사를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적었다. 이전 화에도 적었듯이 한때는 내가 회사원 체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때는 평사원이었다. 그렇게 평사원으로 계속 있을 수 있었다면 퇴사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이전 글에서 AI 시대가 와서 업무 난이도가 올라가고 업무 복잡도가 올라가는 상황을 예측했다고 적었지만 오히려 예측을 했기에 대비를 하고 그에 맞게 잘 적응해서 지내고 있었을 것이다. 내 경우 다른 일을 할 생각을 했기에 새로운 물결에 적응하는 대신 나가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회사를 나와서 자기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말로 회사원 체질이고 천성인 사람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회사를 나왔듯이, 회사를 다니는 것이 체질인 사람은 계속 회사를 다닐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회사들의 인재 관리 방식이 아쉽다. 회사가 체질인 사람들은 조직에 순응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꼈는데 그런 사람들일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꼭 승진하지 않아도 되고, 연봉인상률은 물가인상률 정도만 되어도 되고, 그저 평사원으로 계속 일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내 주변에서 여럿 보았다. 하지만 내가 리더 직책을 맡을 때처럼 많은 경우에 '할 사람이 없어서'라는 이유로 떠밀리듯 직책을 맡고 그 후유증으로 휴직을 하거나 회사를 떠나는 경우도 보았다. 리더는 큰 그림을 그리고 완성도와 사람을 '관리'하는 자리이고, 평사원은 리더가 그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실무를 '실행'하는 자리다. 자리에 따라 요구하는 업무가 완전히 다른만큼 실무를 잘한다는 것이 곧 관리를 잘한다는 것은 아니다. 평사원으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는 사람이 리더를 맡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가 평사원으로 더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회사가 인재를 더 잘 활용하는 방법 아닐까?
반대로 내 일을 해야 할 사람이 회사를 다니는 것도 할 짓이 못된다. 지난 2년여 간이 나에게 그런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억겁처럼 느껴졌고 스트레스도 몹시 심했다. 당시 아프셨던 부모님을 부양해야 했기에 퇴사 후 버틸 돈을 마련한다 생각으로 다녔지만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 눈을 감았다 뜨면 그 시간으로 점프해서 이동하길 바라기도 했다. 드디어 부모님의 건강이 회복되고 목표 자금에 도달하여 나가기로 결정했을 때 한 지인은 나에게 말했다. 얼굴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몇 년 전 누군가 나에게 물은 적 있다. 동료, 돈, 일 중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냐고. 그때 나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내가 하고픈 일'이 중요한 사람일수록 회사를 다니기 어렵겠다 생각이 든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입사할 때 서명한 근로계약서가 있고 그 회사의 취업규칙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개는 회사의 사업 방향이나 그 외 여러 사정에 의해 내가 할 일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나는 수년 동안 회사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 했지만 그건 회사에서 찾기 어렵고 요구하기도 어렵다는 걸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지금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다행이랄까.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실컷 시도해 볼 수 있는 이 시간이 무척 소중하다 느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필수적인 요소이고 그렇다 보니 '경제적 자유'를 많은 이들이 외치지만 나는 그보다 '직업적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장인이 체질인 사람이라면 직장인을 원할 때까지 할 수 있고, 직장인보다는 자기 주도적인 일을 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자유 말이다. 그러한 것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도 또한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나는 내 뜻에 따라 회사를 그만두고 이전과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다른 분들 또한 자신의 뜻에 따라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본 편을 마지막으로 <회사는 그만두고 다른 걸 해볼래요> 브런치북 연재를 마칩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았음에도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번 적어봅니다.
직장인으로 살고 싶은 사람은 원할 때까지 직장인으로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마음 놓고 자신의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