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평대리 아일랜드조르바
아끼던 장소가 너무 유명해지면 왠지 모를 이질감이 든다. 내게 아일랜드조르바가 그랬다. 원래도 제주 여행자 사이에선 유명했지만 수요미식회에 나온 뒤론 완전히 만인의 명소가 된 것이다.
2010년 한적했던 월정리 해변 앞 조르바, 2011년 평대리로 터를 옮긴 무렵의 조르바- 에서 기억이 멈춘 사람이라면 현재를 받아들이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처럼.
그래서인지 조용하던 평대리에 차가 많은 것도, 평대스낵에 길게 늘어선 줄도, 조르바 현관에 꽉 찬 신발에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4년 만에 하는 인사. 손님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몹시 담백한 눈짓 손짓이 오갔다.
특유의 느리고 조근조근한 말투로 "주문이 밀려서, 잠시만~"하는 바비야 언니(주인). 어제 만난 사람처럼 여전한 모습에 그간의 이질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바비야는 언제나처럼 몸짓 하나하나 리드미컬하고 차분했다. 혼자서 그 많은 손님 음료 내어주려면 정신없을 만도 한데 흐트러짐이 없다.
그런 바비야 구경하느라, 달라진 조르바 구경하느라 잠시(주문하기까지 20분, 음료 받기까지 또 30분 ㅋㅋ)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웠다.
집 구조와 거실 테이블 빼고는 거의 다 새로운 물건으로 채워진 것 같았다. 그런데 예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어색함이 없다. 오히려 예전을 떠올리니 휑했던 것 같다.
수요미식회는 얼굴 안 나오는 조건으로 촬영한 건데 방송에 얼굴만 나와서 보다가 꺼 버렸다고 한다. 하핳.
그런데 내가 방송 관계자였대도 그랬을 것 같다. 바비야가 자아내는 분위기에 조르바 전체의 분위기가 함축적으로 담겼다.
이 방이 제일 많이 달라졌다. (책상이 있었던가..?) 전체적으로 좌식인 조르바 안에 유일하게 의자가 놓인 공간. 혼자 온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
길에서 주워 왔거나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을 물건들이 마치 한 몸에서 난 것처럼 잘 어우러졌다.
이 많은 LP판은 어디서 났냐고 물었더니, 트럭으로 하나 샀단다. 통 큰 언니라며 웃었는데 생각해 보니 예전에도 똑같은 질문하고 똑같은 대답 듣고 똑같은 반응을 했던 것 같다.
LP판을 꽤 자주 갈아줘야 하더라. 덕분에 오래된 물건에서 좋은 소리가 흘러나게 하는 일련의 행위를 가만히 구경할 수 있었다.
만드는 사람 힘들 거 알면서 메뉴판에 있는 거 다 먹어보고 싶어서 (허락받고) 종류별로 주문했다. 핸드드립 커피, 카푸치노, 짜이, 레몬커피, 그리고 그 유명한 뎅유자에이드. 서비스로 프레즐도 받아먹고 커피 한 모금이 아쉬워서 핸드드립 한 잔 더 시켜서 나눠 먹기까지.
카페를 운영하는 동행자들이 다 맛있다고 "인정"해서 내가 다 으쓱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여전해서 좋았다고, 다음엔 한가하게 맥주 마시자고 했다. 다음 제주 방문은 바비야 쉬는 화/수요일이어야겠다.
평대스낵 떡볶이 먹고 조르바 뎅유자에이드로 디저트- 좋다. 그러나 빨리 먹고 휙 가야 될 때 음료 늦게 나올 수 있으니 복장 터짐 주의.
휙 가기엔 공간이 너무 아깝다. 되도록 안 바쁜 날 여유 갖고 들르길 권한다. 다리 뻗고 앉아 음악 듣고 볕 쬐며 나른한 시간을 가져보길.
바쁜 날에는 모르는 이와의 합석도 받아들여야 한다. 합석한 두 아가씨에게 숙소 추천해주고 목젖 나오게 웃어젖히는 사진도 찍어줬다. 바쁜 날 갔다면 그것대로 즐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