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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키미 Mar 09. 2017

4년 만에 하는 인사

제주 평대리 아일랜드조르바


아끼던 장소가 너무 유명해지면 왠지 모를 이질감이 든다. 내게 아일랜드조르바가 그랬다. 원래도 제주 여행자 사이에선 유명했지만 수요미식회에 나온 뒤론 완전히 만인의 명소가 된 것이다.


2010년 한적했던 월정리 해변 앞 조르바, 2011년 평대리로 터를 옮긴 무렵의 조르바- 에서 기억이 멈춘 사람이라면 현재를 받아들이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처럼.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갔다.


그래서인지 조용하던 평대리에 차가 많은 것도, 평대스낵에 길게 늘어선 줄도, 조르바 현관에 꽉 찬 신발에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안녕! 나 왔어요"


4년 만에 하는 인사. 손님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몹시 담백한 눈짓 손짓이 오갔다.


특유의 느리고 조근조근한 말투로 "주문이 밀려서, 잠시만~"하는 바비야 언니(주인). 어제 만난 사람처럼 여전한 모습에 그간의 이질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바비야는 언제나처럼 몸짓 하나하나 리드미컬하고 차분했다. 혼자서 그 많은 손님 음료 내어주려면 정신없을 만도 한데 흐트러짐이 없다.


그런 바비야 구경하느라, 달라진 조르바 구경하느라 잠시(주문하기까지 20분, 음료 받기까지 또 30분 ㅋㅋ)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웠다.




가장 그리웠던 거실 (잠깐 사람 없을 때 틈 타 찍었다)


집 구조와 거실 테이블 빼고는 거의 다 새로운 물건으로 채워진 것 같았다. 그런데 예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어색함이 없다. 오히려 예전을 떠올리니 휑했던 것 같다.





수요미식회는 얼굴 안 나오는 조건으로 촬영한 건데 방송에 얼굴만 나와서 보다가 꺼 버렸다고 한다. 하핳.


그런데 내가 방송 관계자였대도 그랬을 것 같다. 바비야가 자아내는 분위기에 조르바 전체의 분위기가 함축적으로 담겼다.





오른쪽 방


그 방 안에 나


이 방이 제일 많이 달라졌다. (책상이 있었던가..?) 전체적으로 좌식인 조르바 안에 유일하게 의자가 놓인 공간. 혼자 온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




왼쪽 방


길에서 주워 왔거나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을 물건들이 마치 한 몸에서 난 것처럼 잘 어우러졌다.




조르바의 킬링 파트는 LP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이 많은 LP판은 어디서 났냐고 물었더니, 트럭으로 하나 샀단다. 통 큰 언니라며 웃었는데 생각해 보니 예전에도 똑같은 질문하고 똑같은 대답 듣고 똑같은 반응을 했던 것 같다.






LP판을 꽤 자주 갈아줘야 하더라. 덕분에 오래된 물건에서 좋은 소리가 흘러나게 하는 일련의 행위를 가만히 구경할 수 있었다.






만드는 사람 힘들 거 알면서 메뉴판에 있는 거 다 먹어보고 싶어서 (허락받고) 종류별로 주문했다. 핸드드립 커피, 카푸치노, 짜이, 레몬커피, 그리고 그 유명한 뎅유자에이드. 서비스로 프레즐도 받아먹고 커피 한 모금이 아쉬워서 핸드드립 한 잔 더 시켜서 나눠 먹기까지.


카페를 운영하는 동행자들이 다 맛있다고 "인정"해서 내가 다 으쓱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여전해서 좋았다고, 다음엔 한가하게 맥주 마시자고 했다. 다음 제주 방문은 바비야 쉬는 화/수요일이어야겠다.




AM 10:30 ~ PM 6:00, 화/수요일 휴무



조르바에 가려거든,


평대스낵 떡볶이 먹고 조르바 뎅유자에이드로 디저트- 좋다. 그러나 빨리 먹고 휙 가야 될 때 음료 늦게 나올 수 있으니 복장 터짐 주의.


휙 가기엔 공간이 너무 아깝다. 되도록 안 바쁜 날 여유 갖고 들르길 권한다. 다리 뻗고 앉아 음악 듣고 볕 쬐며 나른한 시간을 가져보길.


바쁜 날에는 모르는 이와의 합석도 받아들여야 한다. 합석한 두 아가씨에게 숙소 추천해주고 목젖 나오게 웃어젖히는 사진도 찍어줬다. 바쁜 날 갔다면 그것대로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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