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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키미 Mar 19. 2017

코토우라 가족의 배려 속 하룻밤

제주 삼달리 민박 코토우라


그림자가 길게 지는 오후, 삼달리 코토우라에 도착했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덩그러니 자리한 일본풍 주택. 길과 마당의 경계만 표시하는 낮은 담장. 마당에 서서 여유롭게 대화 나누는 동네 어른 셋. 우릴 보고 수줍어하는 동네 꼬마 둘. 반면 원래 알던 사이처럼 꼬리 흔들며 반겨주는 개 하나. 볼에 스치는 차가운 바람과 노랗고 따뜻한 오후의 볕. 이 모든 평화로움이 한순간에 훅 달려들었다.


주인 가족이 사는 본채


독채 민박으로 운영하는 별채




제주 안에 일본


일본인이 운영하는 숙소라기에 호기심이 들었다. 일본풍 주택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토록 훌륭하게 만든 집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느낌만 흉내 낸 수준이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부터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나무랄 데가 없었다. 남친이 이런 숙소 예약해서 짠- 하고 데려와 주면 반할 것 같다고, 입을 모아 얘기했다. 여자들끼리였지만 예약자인 나는 어깨가 으쓱했다.


다다미방에 고타츠(!)라니 벌써 감동


그런데 이런 메시지까지.. 감동 폭발.


방에서 창문 열고 툇마루에 나갈 수 있다.


샤워하면서 미니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에 잘 안나와서 속상)


보자기에 포장된 헤어드라이기.. 여기가 일본데스네


캡슐 커피 머신! 내일 모닝커피 예약.




사장님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숙소 안내를 해 주셨는데, 딱 봐도 일본인 느낌이라 속으로 '오오' 했다. 그런데 한국말이 유창해서 또 '오오' 했다.


한국인이라 한국말이 유창한 거였다. 하하. 아내 '코토우라 모토카' 님이 일본인, 남편은 부산 사나이라고.


이런 훌륭한 집을 부부가 직접 지었단다. 믿을 수 없어 블로그를 정독했다. 정말이었다. 창고 같은 공간을 대충 만들어 거기서 생활하면서 본채를 지었고, 본채에서 살림과 민박을 함께 했었단다. 창고를 허물어 지금의 별채를 짓고 이제는 별채만 민박으로 운영하며 네 가족이 본채에 산다고.


부부는 분명 건축가였을 거라고 혼자 결론 내렸다. 그러지 않고서야 믿을 수 없는 퀄리티기 때문. 리모델링도 아니고 기초 공사부터 인테리어까지 모두... 무리데스...! 스고이...!




비루와 고타츠의 밤


마당에 있는데 집 안에서 두 여자의 괴성이 들렸다. 벌레를 본 건가? 아니다. 냉장고 안에 맥주를 본 것이다. 기린 맥주와 견과류 안주가 웰컴 킷이라니!


소리 지를 만하다.


혹시나 하며 서랍을 열어보니 둥굴레차와 커피 캡슐


두 번째 서랍엔 3인용 식기가 가지런하게


마지막 서랍엔 조리도구까지


따땃한 고타츠에 발 넣고 꼼지락거리며, 아름다운 밤이었다.




사랑스러운 코토우라 가족


코토우라 블로그 '하루네 하루하루'라는 카테고리에 푹 빠졌다.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코토우라 모토카 님의 시선과 언어로 재미나게 표현하는데,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한번 보면 빠져나올 수 없다.


봄에 태어난 첫째는 봄의 일본말 '하루'라는 이름을, 얼마 전 태어난 둘째는 서로서로 도와가며 아껴주고 사랑하라고 '서로'라는 이름을 지었단다. 그리고 삼달리에 사는 순한 개 '순달이'는 큰 아들이라고.




순달이는 내게 와 벌러덩 누웠고 어루만지는 손길을 받아들이며 눈이 슬금슬금 감겼다. 이름에 걸맞게 몹시도 순한 개라고 생각했다.


우리 초면인데 너무 가까웠나봐


오구오구 좋아염?


그런데 여친이 등장하자 갑자기 박력 있는 수컷으로 변신했다. 너무 웡웡 짖어서 싫어하는 사이인 줄 알았는데 좋아서 그런 거란다.


나 좀 봐줘!
나 좀 봐줘!


잠깐. 그럼 나한테 한 행동은 뭐야?... 나한테도 박력을 보여줘!






하루 유치원 행사로 인해 체크아웃 인사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매력만점 블로거 코토우라 모토카 님을 뵙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방문해야겠다.


다음에 뵙게 되면 '코토우라'를 자꾸 '토코우라'라고 말하게 돼서 속으로 '코끼리 할 때 코, 코토우라'라고 되새긴다고 말해 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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