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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키미 Dec 29. 2018

독립출판계의 박찬호가 되고 싶어요

책방 오키로미터 오사장


부천의 작은 책방 오키로미터에서 사진 강의를 한 적 있다. 결정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사진을 배운 적도 없고 대단히 잘 찍지도 못하는데 '내가 뭐라고' 4주 씩이나 누굴 가르친단 말인가. 그런데, 안 했음 후회할 뻔했다. 하면서 내가 더 배웠다. 값진 경험이었다. 나를 잘 알지도 못했으면서 '일단 한번 해봐' 사상으로 이끌어준 오사장님 덕. 고맙지만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몇 년 새 오키로미터는 독립출판계 최강자가 되었고 오사장님의 '일단 한번 해봐' 사상은 대단위로 퍼지고 있다. 이쯤 되니 좀 이상하지만 괜찮은 사람 같다. 사람 등 떠미는 재주가 탁월하다. 뭔가 하고 싶게 만드는 재주.


- 대상: 책 좋아하는 사람
- 질문: 당신 인생에 영향을 끼친 책은?

책을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읽고, 잘 팔고, 직접 만드는 걸로도 모자라 나도 막 책을 만들고 싶게 만드는 사람. 오사장님을 인터뷰했다.


참고: 오키로미터 사장이라 오사장. 원래 김 씨.

주의: 산만함.




사장님은 책을 진짜 많이 읽잖아요. 서점 하기 전에도 그랬나요?

아니요. 그래도 보통 사람보단 많이 읽었을 걸요.


어쩌다 서점을 하게 되셨나요?

글쎄요 ㅋㅋㅋ 왜요?


궁금해져서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의 책이란 무엇일까.

책은 내 삶의 즐거움이죠. 호호. 음식 좋아하는 사람이 내 음식이 이렇게 맛있으니까 너도 좀 먹어볼래? 이런 느낌이랄까.


오호. 그런 셰프에게 소울푸드는 무엇일까요?

각자가 다르겠죠.


쉽지 않은 사람. 자연스럽게 답을 이끌어내 보려고 했으나 실패다.


음. 요즘 인터뷰 프로젝트한다고 얘기했었잖아요? 오늘의 인터뷰이로 오사장님을 모시고 싶습니다만.

ㅋㅋㅋㅋ 언제든지요.


그러니까 '각자가 다르겠죠' 같은 답은 안돼요. 정식 질문. 당신 인생에 영향 끼친 책이 있다면, 어떤 책인가요?

ㅋㅋㅋㅋ 영향을 끼친 책은 정말 많아요. 읽을 때마다 영향을 받으니까요. 대신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를 읽고 '아~ 책이 이렇게 재밌는 거구나'를 알았고 그때부터 많이 읽기 시작했어요. 호호. <남쪽으로 튀어>를 읽고 무정부주의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었죠.


...? 갑분무...


사장님의 무의식을 <남쪽으로 튀어>가 써주었던 거 아닌가요.

이름이 지로였던가. 아들 이름이 지로였을 거예요.


...? 갑자기 지로 왜...


지로 때문에 무슨 에피소드가 더 생겼나요?

헐 맞다 미쳤어. 10년도 더 전에 본 책의 주인공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이라부. 대박. 공중그네는 이라부야. 미쳤네 내 기억력.


내가 미치겠다.


저기 님아. 지금 인터뷰 중이십니다.

아. 미안합니다. 제가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는 건 오직원한테 물어보면 잘 알 수 있어요.


제가 깜빡했어요. 인터뷰이로 적합한 분이 아니라는 걸... 책 좋아하는 사람 인터뷰하래서 하는 건데 휴, 너무 힘든 길을 택했네요.

지로 아빠가 굉장히 괴짜였던 걸로 기억해요.


이미 내 얘긴 노 상관.


(...)

근데 지로 아빠가 지로에게 하는 말들이 다 제 스타일이었어요. 지로의 시선에서 본 어른들의 세계보다 지로 아빠의 행동들이 더 인상 깊었는데 이런 얘기는 보는 독자들은 별로 재밌어하지 않는다는 걸 제가 잘 알고 있죠. 호호.


이쯤 되면 아시겠지만 '호호'가 트레이드마크임.


그때 사장님은 몇 살 즈음?

스물일곱? 여섯? 그즈음 책과 함께 많은 걸 경험하기 시작했어요.


<공중그네>는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을까요?

너무 오래돼서 기억은 잘 안 나는데 그냥 이라부의 독특한 행동이 재밌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에 오쿠다 히데오의 책을 다 찾아서 읽었거든요. 요즘엔 안 보지만요. 당시엔 그랬어요. 근데 일본은 너무 나쁜 짓을 많이 하니까 이젠 안 보려고요.


ㅋ ㅋ ㅋ  ㅋㅋㅋㅋㅋㅋㅋ ㅋㅋ   ㅋㅋㅋ...


'책과 함께 많은 걸 경험' 이 얘기를 더 해볼까요?

네. 근데 오쿠다 히데오가 할배라 그런지.

아 이거 말고

아 원래는 이십 대 중반까지 제가 책을 한 권도 안 읽어본 사람이었어요.


... 졌다.


흥미롭네요.

공부도 못했고요 (웃음). 반에서 한 45등 정도 (TMI). 아무튼 책을 그만큼 싫어했죠.

근데 저때 좋아하는 여자분이 생겼는데 그 친구가 책을 정말 좋아해서 만날 때마다 책 얘기를 하는 거예요. 같이 대화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베스트셀러 1위부터 쭈욱 주문해서 읽기 시작했죠. 지금은 베스트셀러에서 고르는 바보 같은 짓은 안 해요. 그때는 책을 안 읽다 보니 책 고르는 법도 몰라서 그렇게 했던 거죠. 다른 얘기인데, 어릴 때 아이들을 도서관에 많이 데려가 줘야 해요.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고를 수 있게끔요. 서점은 안 됨.


이 인터뷰 중 등장하는 '(웃음)'은 모두 오사장님 본인이 썼음을 밝힙니다. 인터뷰는 카톡으로 진행됐음.


그분은 지금 어디 계시나요?

어딘가 있겠죠. 좋은 영향을 주고 떠난 사람이라 고맙네요 갑자기. 덕분에 지금의 아내를 만남. 호호.


그럼, 가장 최근에 영향!이랄 만한 것을 끼친 책이 있나요?

음. 공부책? 도서출판유유에서 나온 <How to Study 공부책>.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고전인데 이 책을 읽고 내가 왜 그동안 공부를 못했는지 알게 되었거든요. (웃음) 이 얘기를 진지하게 책 소개로 썼더니 우리 서점에서 책이 팔려 나갔죠. 이 책을 읽고 공부하기 시작했고 효율적으로 하게 됐어요. 그러고 보니 공부를 시작한 지도 몇 년 안 되는군요. (민망한 표정)


'(민망한 표정)'도 오사장님 본인이 썼음을 밝힙니다.


어떤 공부를 하기 시작했나요?

지금은 이것저것 엄청 많이 공부해요. 마케팅 공부도 많이 하고 책 만드는 공부도 많이 하고 보통 다 책을 통해서 하죠. 읽기와 함께 공부인 셈이죠. 정말 재밌어서 해요.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뭔가를 잘하게 되면 더 재밌거든요. 그러니까 잘할수록 더 신나서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계속 잘할 수밖에 없는 거죠. 학창 시절 공부 잘했던 친구들도 다 이런 거였나 했는데 그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과목도 해야 해서 싫었던 건가 봐요.


이왕 삼천포로 빠진 거 딴 얘기 한참 하다가 '꾸준히'라는 주제가 나왔다.


'꾸준히'는 진리인가 봐요.

진리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못해서 저처럼 머리 나쁜 사람에게...

저처럼 배움이 느린 사람들에겐 큰 축복이자 선물이죠. 저도 불과 몇 년 전에야 알았어요.


토끼와 거북이 동화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어.

응응 옛날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던 거였죠.

나는 불과 몇 년 전에 꾸준히 하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해도 돼요?


진짜 웃겨버렸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고 계셨잖아요.

이게 나만의 팁이 있는데, 시간을 정해놓고 해야 돼요. 하루키도 매일 일정한 시간에.

아, 일본 사람 얘기 안 해야지. 아무튼 시간을 정해놓고 해야 해요. 매주 화요일 밤 7-9시에는 그림을 그린다든가. 근데 이게 또 혼자는 잘 안돼요. 혼자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뭘 해도 성공할 거예요. 그래서 마음 맞는 사람끼리 서로 밀고 당기고 재밌게 해야 합니다.


오키로 워크숍 홍보 같은데

ㅋㅋㅋ 재미가 없다면 빨리 다른 거 하셔야 해요. 재밌는 건 하지 말래도 계속하게 되거든요.


누구한테 '하셔야 한다'는 거예욬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근데 이거 고료 있나요?


고료라뇨. 난 지금 인생 책 하나 물어봤는데

제가 사실 어제도 인터뷰를 거절했거든요.

근데 이제 다 끝났나요 인터뷰?


영광입니다만 거절당하신 분 결과적으론 잘 된 걸지도 모릅니다. 이 인터뷰 일로 한 거였어봐 편집 끔찍쓰..


아까 끝났어요.

섭섭하네요.


더 하고 싶어요?

독립출판계의 박찬호가 되고 싶어요.


갑자기.


어떤 의미의 '박찬호'일까요?

중의적인 표현이죠. 그땐 IMF였는데 어릴 적엔 IMF가 뭔지도 몰랐어요. 이제 와서 생각하니 정말 절망적인 때였어요. 서점은 완전 망했을 거야 분명히. 나는 망했을 거예요 이미 ㅠㅠ


IMF 시절 국민들의 희망이었던 박찬호처럼 음.. 어.. 뭐 그런 좋은 뜻 같다.


(...)

아무튼 인터뷰 잘 실어주시고요. 보통 인터뷰하면 저한테 한번 체크받는다고 메일 주시는데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실으시면 돼요. 그리고 우리 참 이번에 새 책 나오는데 텀블벅 펀딩 좀 해 주세요. 이거 꼭 써주세요 ㅋㅋㅋㅋ 하루 동안 총 120페이지에 걸쳐 생일을 축하해주는 책입니다. 선물용으로 딱이죠? 마지막엔 편지도 써줄 수 있어요.


당시 가제 <해피 유얼 데이>였던 책의 일부


와. 돈 벌려고 작정하고 만드셨네.

ㅋㅋㅋㅋㅋㅋ 그런 건 아니에요. 어른이 되니까 옛날처럼 축하받을 일이 많이 없어졌잖아요. 누군가는 아예 축하도 못 받고. 그래서 책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해서.


인당 몇 개까지 살 수 있죠?

만 개요.




안타깝게도 생일 책 <Happy Birthday To> 펀딩은 마감되었다. 성공률 229%를 기록하고. 그러나 조만간 오키로미터 스토어에서 판매될 테니 많이 사랑해 주시랍니다. 저는 세 권 샀음. 더 살 거임. 지인들한테 다 선물할 거임.


그리고 오사장님이 쓴, 아내 이은지 님과의 신혼일기 <제가 이 여자랑 결혼을 한번 해봤는데요>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최근에 찍은 2쇄에 제 추천사가 있음. 호호.








2018년 11월 한 달, 1일 1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인터뷰와 단상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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