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친구 M
어느 작가와의 미팅. 팬심이 있던 나는 조금 흥분돼 있었고, 그는 유쾌하고 친절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으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미팅을 마쳤고 마음 따위 굽어볼 겨를 없는 일상을 보냈다. 수개월 후 다른 작가와의 미팅. 역시 팬심이 있던 나는 조금 흥분돼 있었고, 그는 프로페셔널하고 다정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또 마음이 걸리적거렸다. 데자뷔인가. 허공에 허우적대는 듯한 내 태도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팬심과는 다른 문제였다.
나중에야 알아챈 그 감정은 '주눅 듦'. 나만 느낄 수 있던 부자연스러움은 상대에게 주눅 든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감정의 이름을 찾기까지 한참이 걸렸기 때문에 통쾌했던 반면 의아했다. 왜 나는 그들에게 주눅 들었을까? 나로선 생소한 감정이라 그 '왜'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 대상: 괜히 주눅 드는 사람
- 질문: 당신을 주눅 들게 하는 사람이 있나요?
친구 M에게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를 주눅 들게 한 두 사람이 가진 공통점을 M에게서도 발견했기 때문.
1. 자기 주관이 확실하고
2.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하며
3. 그걸 글로 말할 줄 아는 사람
게다가 M은 겸손함과 당당함, 위트와 진지를 동시에 겸비한 능력자다.
너에게도 '이 사람 앞에 서면 왠지 주눅 든다' 하는 사람이 있어?
엄청 많지. 보통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그런 존재야. 특히 금액이 클수록 나를 쫄게 하지. (웃음)
시작부터 겸손 위트. M이 운영하는 스튜디오에 작업 의뢰하는 클라이언트 얘기다. 내가 너 실력이라면 어떤 클라이언트 앞에서도 안 쫄 거 같은데, 라고 말하려다가 삼켰다.
일 관계가 아닌 사람에게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은?
잘 보이고 싶은 사람. 근데 왠지 나랑 달라 보이거나 자꾸 실수하게 되는 사람 앞에서 주눅 들게 되는 거 같아.
'나랑 달라 보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나랑 좀 안 맞는 사람? 성향이든 취향이든 환경이든. 애초에 잘 맞으면 굳이 잘 보이고 싶어서 주눅 들 이유도 없으니까. 근데 나는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일에 관련된 사람 말고는 없는 거 같아. 나에게 어떤 책임감을 부여하는 사람이나 단체한테 잘 보이고 싶고, 그 외의 경우는 거의 없는 듯.
진지 당당.
놀랍다. 진짜?
어릴 땐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별로'라면 있긴 있다는 거구나.
응. 근데 어느 순간 부질없다는 걸 느꼈어. 누가 나를 싫어하고 좋아하고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뭘 해도 날 싫어할 사람과 뭘 해도 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을 뿐.
그리고 때때로 이렇게 뼈를 때린다.
내 눈에 멋있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멋있어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 하고 싶은 걸 할 뿐. M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뭘 하든 좋아하나 보다.
타인의 경험과 사고가 나에게로 흘러들어와 내 세계가 확장될 때,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이 인터뷰 프로젝트는 나를 키우는 일과도 같았다.
정신적 고립에 대한 두려움에 쫓겨 산다. 내가 아는 게 전부라 믿게 되는 상황을 자주 상상하고 끔찍해한다. 나도 모르는 새 '당연한 것' 정글을 만들고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나, 비윤리적인 관습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나, 내 나이가 꼰대 영혼에게 흡수되면 어쩌나. 매 순간 두렵다. 그래서 누군가와의 건강한 대화가 자주 절실하다.
나를 주눅 들게 한 두 사람에게서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자의 냄새가 났다. 그들이 써낸 글과 여유로워 보이는 행동이 그랬다. 그들이 아는 '당연하지 않은 것'을 내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무지함을 들키는 상황이 생길까 봐 겁이 났던 거다. '뭐 어때?'가 성립되지 않았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었으니까.
'어떤 사람에게 주눅 드는가'
이제야 이 명제로부터 해방되었다. 쫄 거 없다. 클라이언트도 아니고.
2018년 11월 한 달, 1일 1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인터뷰와 단상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