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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키미 Dec 30. 2018

당신이 자살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른 아이, 짜이


인터뷰 주제가 오픈되자 멤버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 대상: 이런 질문을 해도 괜찮을 것 같은 사람
- 질문: 당신이 자살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살. 단어만으로도 흠칫하게 하는 질문을 던진 루피의 설명은 이러했다.

태어나겠다고 마음먹고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이 태어난 것은 당신의 의도가 아닙니다. 하지만 죽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죽음을 선택할 수 있고 그것은 자신이 판단한 삶의 가치나 의지에 따른 존엄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정지선을 그은 사람을 우리는 욕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 판단을 온전히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 같이 죽자는 얘기를 꺼내는 게 아닙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라는 철학 에세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왜 자살하지 않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어서 안 죽고 뭐 하냐는 질문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무엇이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고, 그냥 살기만 할 게 아니라 그 이유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살이란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당신의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어쩌면 이 질문은 그 까닭이 무엇일지 떠오르게 할 것입니다.


'자살'이라는 단어는 도구일 뿐, 결국 인생의 가치를 논해보자는 의도로 이해됐다. 평소에도 무척 철학적인 루피다운 질문이었다. 그러니 나도 평소에 철학적인 대화를 많이 나누는 나의 벗, 짜이를 인터뷰이로 선정했다. 대화를 주고받아가며 할 인터뷰가 아니었으므로 이 질문과 설명을 그대로 전달했다.




질문이 되게 심오해. 생각을 깊이 해보고 말해줘.

와우. 주제. 와우.

근데 몇 자 써야 한다, 이런 룰은 없는 거지? 질문은 저거 하나지? 내 대답에 또 혬이 질문할 건 아니지?


'기다려 봐'라고 해서 1시간을 기다렸다. 장문이 톡이 왔다.


나는 솔직히 이 질문을 받고 이상하게 반가웠다. 그 누구도 이렇게는 묻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나처럼 '그래 보이지 않지만 실은 자살에 대해 많이 생각해본 이'가 갑분싸 걱정 없이 대답을 해도 되는 장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왜 자살하지 않느냐고?


1.

우선 난 경험해야 아는 사람이다. 어릴 적 자살에 대한 접근은 이러하였다. 나의 심적 괴로움이 극에 달하였을 때 쇼맨십으로 내가 이 정도로 괴롭다!를 표현하고 나를 구할 방법으로 택한 게 자살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표현법이었을 뿐, 결국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란다는 뜻이다. 그러나 과연 누가 날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다고 내 삶이 나아질까? 타인으로부터 구원을 기대하는 게 어리석다는 것도 내가 나 자신을 매우 사랑한다는 것도 우습게도 이 경험으로 알아버렸다.


2.

다음은 죽음에 대한 접근으로 이어진다. 예상치 못한 죽음은 누군가에겐 좋았던 기억보다 자책 또는 슬픔과 후회로 두고두고 꺼내어지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런 식으로 내가 이곳에서 떠올려지길 절대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3.

난 존재만으로 빛이 나고 빛을 실어 나른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내 존재의 이유를 믿는다. 나열하자면 너무 구구절절하니깐 하지 않겠다^^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너무너무 많은 나는, 괴로움에 순간적 극한의 표현으로 그 단어를 내뱉을 순 있을지언정 내가 '이제 그만 됐다'라고 여겨지기 전까진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못할 것 같다.


추가 질문은 하지 않았다. 이거면 되었다.




<이런 쿠바세끼>에 등장하는 식탐 있는 여행 메이트 그 짜이 맞다.  


짜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자살에 대해 많이 생각해 봤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밝고 맑고 에너지 넘치는 아이. 노오랑색, 보오라색, 파아란색, 주우황색이 어울리는 아이. '아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어른 아이다. 그러한 이미지가 짜이를 가두었는지, 짜이가 진지한 얘기를 하면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는 경험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알고 있었다. 어린 짜이가 자살을 꿈꿨다는 걸. 하지만 지금은 제 삶을 몹시 사랑한다는 걸. 매사 최선을 다해 물불 안 가리고 놀아대는 짜이에게 "너는 언젠간 객사할 거야"라는 말을 종종 한다. 식탐이 많아서 쓰레기 같은 음식도 일단 찍어 먹어보는 스타일. 술탐도 많아서 필름 끊기는 경우 잦음. 놀탐도 많아서 아무리 바빠도 어떻게든 놀다가 몸살남. 그 와중에 면역력 최약체. 덜렁댐과 무턱댐은 '사고' 수준. 객사하기 딱 좋다. 


"노인이 돼서도 같이 놀 친구를 구해야겠다. 아무래도 너는 일찍 죽을 것 같다."

- ㅋㅋㅋㅋㅋ 내가 울 가족들 내력을 보니까 다 오래 살 것 같아


"정해진 운명이 그러해도 너는 객사할 듯"

- 그르지마... 살게 해 줘...


농담처럼 하는 진담에 짜이가 진하게 반응할 때마다 마음이 놓인다.

오래 살고 싶은 거로구나.

됐다 그럼.







2018년 11월 한 달, 1일 1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인터뷰와 단상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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