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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키미 Dec 31. 2018

태어났으니까 살지

오지라퍼 S


짜이의 답을 받고 나 자신에게도 질문을 던져봤다.

'왜 자살을 꿈꿔보지 않았는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호기심'. 이승에는 재미난 게 너무 많다. 그래서 내 꿈은 백세장수다.

내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없고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하자 S는 눈이 동그래졌다. 이게 왜 놀랄 일이지? 자기는 일찍 죽고 싶다는 거다. 내 눈이 더 동그래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우리 집 앞 카페 사장 S는 골목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다. 애 어른 할 거 없이 동네 주민에게 죄다 인사하고 안부 묻는 걸로도 모자라 겁 많은 길고양이들과도 친구가 됐다. 오지랖도 오지랖도 그런 오지랖이 없다. 뿐만 아니다. 매일 보는 카페인데 해가 들면 해가 든다고, 꽃이 피면 꽃이 폈다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분다고 감동한다. 그런 사람이 제 삶에 심드렁하다 말하니 나는 혼란스러웠다. 사람 겉만 봐선 모른다지만, 이 사람은 어쩌면 아직 제 속을 몰라서 그런 거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이 인터뷰로 회색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고 싶었다. 내 오지랖도 참.

- 대상: 최근 같이 밥 먹은 사람
- 질문: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나는 님이 참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붙잡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자기가 자기를 잘 모르는 게 아닐까 싶어서. 잘 생각해 보고 말해줘요.

없는데 생각나는 거.

나 스스로 적혈 이미지 미나 봐 (웃음) 세상에 반항하는 사람인 척.


진지한 질문에 장난 같은 답. 그리고 한참 답장이 없어서 오늘 인터뷰는 망했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5시간 후 장문의 톡이 왔다. 그렇게까지 두서없는 문장을 오랜만에 봐서 멀미가 나려다가 '일하는 내내 생각해 봤다'가 눈에 걸렸다. 열심히 해독한 결과 S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러했다.


1.

사랑받는 느낌. 특히 생각지도 못한 사람한테 예쁨, 사랑, 그리고 애정을 받을 때.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네'를 느끼는 생일 같은 날에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인가?' 하면서 인생을 더 잘 살아봐야겠고 생각해요.


2.

순간의 예쁨을 보는 건 좋아해도 인생에 대해서는 별 감흥이 없어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따뜻하고 예쁜 답, 에세이에 나올 법한 의미 있는 한 마디를 남기고 싶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ㅠㅠ


3.

엉망진창 와장창이지만 언니의 질문에 답이 되었기를 바라요.


엉망진창인거 아니 다행. 편집의 힘으로 심폐소생시킨 나 칭찬해.


이어서 질문하고 싶은데 배터리가 없네요. 이따가 다시.

또 질문 주시면 제가 와랄랄라 아무말 대잔치를 한 번. 근데 이따가 친구랑 저녁 먹기로 했는데.


배터리 충전 후 다시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 의외로 예쁨 받고 있음을 느끼나요?

(답 없음)


그래.. 저녁 맛있게 드시길..




애초에 거창한 답은 기대하지 않았다. 나라면 뭐라고 답할까 자문해보니 어떤 말을 해도 다 말장난 같았기 때문. 우아한 말, 있어 보이는 말 갖다 붙이기 나름이지만 어쩐지 억지스러웠다. 사실 질문이 억지였을 수도 있다. 그래도 S에게 던진 돌멩이가 좀 통한 것 같아 흐뭇했다. 최소한, 사랑받았던 순간의 기억이 1초라도 떠올랐을 테니까.


영화 <밀양>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전도연 "밀양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비밀 밀, 볕 양, 비밀의 햇빛이라는 뜻이래요."

송강호 "아, 그렇습니꺼? 우리가 뭐 뜻 보고 삽니꺼, 그냥 살지예"


즐겨 듣는 팟캐스트 방송 '책읽아웃'에서 김하나 작가는 위 대사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태어났으니까 살지, 무슨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서 짜잔 태어난 게 아니잖아요."


내 말이.







2018년 11월 한 달, 1일 1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인터뷰와 단상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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