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신 진영
전 회사는 지옥이었다. 밤, 낮, 평일, 주말 할 거 없이 비상식적인 환경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퇴사자 많기로 악명이 높았다. 3년 반을 다닌 내가 최장근속자 타이틀을 달고 나왔을 정도. 영화 <레 미제라블>을 보고 어찌나 서럽게 울었던지. 거기서 건강을 잃었지만 사람을 배웠다. 극한에 몰린 사람이 어떻게 추악함을 드러내는지, 함께 극한에 몰린 전우가 얼마나 큰 의지가 되는지를. 전장을 빠져나온 전우들은 이제 인생을 함께 가는 친구가 되었다.
인터뷰 주제를 보고 전우였던 진영이 떠올랐다.
- 대상: 내 주변에서 가장 긍정적인 사람
- 질문: 당신의 긍정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그런 지옥에서도 진영은 한 번도 불평불만이라는 게 없었다. 천사 같은 사람도 악마가 되어 나가는 곳이었는데, 유일하게 진영만이 자기중심을 잃지 않았다. 인상적인 말과 행동을 남겨서 자기를 빛내려는 타입도, 고지식하게 묵묵한 타입도 아닌데 그냥 느껴졌다. 밀도 높은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는 게.
진영은 본인이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유는?
음.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게 문제라면 바로 해결 대안을 떠올리려고 노력해요. 즐거운 일이라면 100% 즐거워하려고 노력하고요. 그러다 보면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많이 보여요. 긍정적인 반응을 택할 수 있고요.
'긍정적인 반응을 택한다'는 표현에서 단단한 능동이 보인다.
오, 그럼 진영의 긍정적인 성격은 노력에서 나왔다는 말이야?
네. 예전에는 조금 어두웠던 것 같아요.
어쩌다가 바뀌었어?
전 회사 기업문화팀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초발랄한 성격이었거든요. 그 사람들하고 일하고 부딪히면서 문제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인식이 생겼어요. 노력이라기보단 자연스럽게 체득됐어요. '그런 반응도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부터.
또 나왔다. '반응'
후천적 긍정이었다니. 타고난 건 줄 알았어.
어릴 땐 내성적인 성격이었어요. 자신감도 별로 없었고.
회사 사람들한테 워너비 성격이 다양하게 있었어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분들하고는 지금도 꾸준히 만나고 가끔 일부러 이야기 들으러 가요.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는지 궁금해서. 나와 전혀 다른 생각과 감정과 반응들이 좋아요!
여기도 '반응'
긍정이든 부정이든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한 발 물러서 '현상'으로 바라보는 습관이 긍정신의 비결 아닐까. 조심스레 추론해 본다.
오늘 인터뷰이가 '내 주변에서 가장 긍정적인 사람'인데 '가장'을 꼽기 어려워서 가만 생각해 봤어. 한 번도 불평불만하는 걸 본 적 없는 사람, 하니까 진영이 딱 떠오르더라고. 그런데 노력형 긍정신이었다니 신선한 걸.
불평불만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웃음) 힘이 빠지니까!
근데 뭐가 힘든지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해결해가는 사람이 부럽긴 해요.
진영은 힘들 때 어떻게 해?
비슷한 길을 먼저 걸어간 주변 긍정 만렙이랑 대화하거나 남편이랑 대화해요. 그럼 금세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웃게 돼요. 그래도 한밤에 자다가 불안하면 기도. 단순하게 기분 나빴던 일은 집에 와서 밥 먹고 쉬면서 좋아하는 거 보고 자면 풀려요.
'단순한 기분 나쁨'이라는 게 없는 나로선 놀랍다. 나의 기분 나쁨에는 "나빠."가 없는 것 같다. "나빠!!!!!"만 있지. 뒤엔 시불시불이 붙는다. (feat. 생맥)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예전에 읽고 도움되었던 글이에요. 다 지나가는 거니까!
요새 어머니 아버지들이 카톡으로 이런 걸 그렇게 보내신다던데...
(웃음) 거의 득도 느낌인데
저도 지금 쓰면서 그렇다고 생각은 했는데. (웃음)
아무튼 계속 생각하면 내 속만 쓰리니까. 아까운 시간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즐기는 것이!
처음에는 진영 주변에 긍정적인 사람이 많아서 진영도 긍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았는데, 실은 진영이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주변에 긍정적인 사람이 많은 것 같아. 긍정의 나비효과.
오,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좋은데요?
오늘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그리고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
뭔데요?
제발 나에게 반말해줘.
그럼 반말하는 김에 언니라 부르는 걸로!
콜.
콜!
진영 부부의 셀프 웨딩 촬영을 도왔었다. 인제 자작나무 숲이 그렇게 좋다길래 나도 좋아! 했다. 숲이 산에 있는 줄은 몰랐다. 솔직히 등산까진 아니고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길이 계속 펼쳐지는 수준인데, 내 저질 체력으론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벽돌 같은 카메라가 야속했다. 그런데 누구 하나 투덜거리는 이가 없었다. 진영 부부도, 함께 나선 친구 짜이도. 두 손에 양 어깨에 짐을 잔뜩 지고서도.
촬영은 즐거웠지만 고됐다. 텐트를 치고, 텐트 안에서 환복 하고, 좋은 장소를 찾아 오르내리고, 사람 안 다닐 때를 노려 더 예쁜 사진을 위해 신랑 신부는 미소 노동, 나는 육체 노동을 했다. 만족할 만큼 찍고 나니 숲엔 우리뿐이었고 해가 지고 있었다. 또다시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내려오는 길엔 모두 지쳐 말이 없었다. 나무 사이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붉은 석양에 "와" 한 마디씩만 할 뿐이었다.
그때 나지막이 "감사하다"는 말이 들렸다. 어둠 속에서 왼쪽 하늘을 바라보는 하얀 옆얼굴이 보였다. 진영 같은 진영 남편이었다.
예쁜 두 사람에게 아기가 찾아왔다.
태명처럼 ‘행복’만 가득하길.
2018년 11월 한 달, 1일 1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인터뷰와 단상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