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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광 May 22. 2020

피해자 의식

(이 글은 저의 네이버 블로그에 썼던 글인데 여기에 약간의 수정을 추가하여 재활용합니다. )


최근에 큰 상을 받아 떠들썩했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라는 영화에서 저는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했었는데 그중 하나는 영화에서 명백한 악역이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는 주인공이 악인에게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인은 주로 재벌이나 아니면 악당 같은 사람이고 주인공은 가난하고 착한 사람이지요. 그 주인공이 악인에게 고난을 받다가 나중에 복수를 하거나 아니면 어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흔한 공식입니다. 그런 진부한 공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면에서 저는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제법 신선했었습니다.


왜 영화에 악인이 등장할까요? 그건 악인을 통해 주인공을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것이 흥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등장으로 상당량의 공포와 긴장감이 조성되면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다량 분비되고 흥분하게 되어서 영화나 드라마는 감정이입이 잘 되고 다소 시나리오가 유치해도 계속 보게 됩니다. 이때 악인은 나쁘면 나쁠수록 더 몰입감이 강해집니다. 시나리오 작가 입장에서는 현실보다 더 악마성을 과장해서 흥행을 키우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그래서 이삼 류 시나리오 작가가 이런 방식으로 막장 드라마를 만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러한 피해자 의식을 갖고 사는 것이 몇 가지 문제점을 수반합니다. 첫 번째로는 과연 그 당시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냐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인지 편향 중의 하나인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를 저지르기 쉽습니다. 인간의 인지 능력의 한계로 인해 타인을 판단할 때에는 당시 상황과 같은 외부요인의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행위자의 속성이나 능력과 같은 내부 요인의 영향을 과대평가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게 가해를 가한 사람의 영향력을 실제보다 더 크게 인지하게 되는 것이지요. 두 번째 문제점은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은  심리적으로 그 외부의 문제를 과장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외부요인을 실제보다 더 나쁜 것으로 과장해서 인식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더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유혹에 빠져 남 탓으로 일관하며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대면하지 않는 것은 게으른 본성에 부합하고 편리한 방식이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문제는 간과하고 반성할 기회를 갖지 않으므로 결과적으로 본인의 성장에는 유익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이런 피해 의식은 자기 연민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자기 연민의 감정에 빠지면 그 부정적 에너지가 현재의 삶에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확증편향에 사로잡히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가해자의 잘못을 크게 인식하는 방향으로 현재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니 본인이 스스로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악순환이 되는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은 과거의 자신을 수동적인 존재로 인지하는 것인데 그게 본인의 현재의 삶을 갉아먹어 결국 미래에도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될 위험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건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용서라는 게 본인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용서는 가해자가 저지른 잘못의 원인을 가해자의 속성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가해자가 처한 환경에도 그 원인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선과 악으로 양분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의 선과 다른 선이 부딪히는 딜레마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과거에 대한 보다 창조적인 해석을 통해 과거가 주는 구속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보다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가 주는 자기 구원의 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용서는 자기 구원의 첩경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하고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혀서 그 감정을 띁어먹으며 현실도피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피해자 의식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큰 부작용이 생깁니다. 피해자 의식이 어떤 집단에서 공유되면 그 진영에서는 큰 이익을 얻고 결집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지나치면 책임 회피가 일어나고 어떤 문제가 일어나면 상황을 주도적으로 해결하려기 보다는 희생양을 찾거나 핑계를 대곤 합니다. 본인들이 역사의 주체가 아닌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설령 과거에 피해를 입었고 상당한 상처를 받았더라도 이를 미래지향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서 피해 의식을 극복하고 보다 능동적이고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큰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리더는 과거지향적인 사람보다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악인을 등장시키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흥미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봉준호 감독처럼 설령 우리의 과거가 어두웠더라도 그런 과거를 상기하지 않아도 될 만큼 더 나은 미래를 보여주는 게 진정한 리더가 해야 할 일입니다.  보다 성숙하고 새로운 정치 공식이 요구되는 요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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