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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광 May 26. 2020

설명 본능


우리의 본능에는 식욕이나 성욕, 수면욕 같은 원초적인 본능도 있지만 우리는 어떤 결과에 대한 그럴듯한 원인을 추론하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왜 번개가 치는지 또는 왜 병에 걸리는지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 느꼈을 공포를 상상해보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들었을 것이고 이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두려움을 콘트롤 하고 마음의 평안을 찾고자 하는건 자연스러운 본능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노하셔서 지금 번개가 치고 있다고 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적 설명이 될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현상에 대한 원인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기보다는 설령 그것이 정확하지 않을지라도 그럴듯한 답을 얻기를 원하는 우리의 본성을 "설명본능"이라고 부를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행운이나 불운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을 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뇌가 원하는 본능에 충실한 행위일 뿐이지 그 설명이 맞느냐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입니다.


실제로 가자니가 교수와 같은 뇌과학자들은 엄밀한 과학적 실험을 통해 뇌가 사고하는 방식에 관한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실험은 분할뇌 실험인데요, 중증의 간질환자의 치료를 목적으로 어쩔수 없이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다리에 해당하는 뇌량을 절단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 환자들을 대상으로 아주 흥미로운 실험을 했었습니다. 좌뇌와 우뇌는 서로 담당하는 기능이 다른데 언어를 담당하는 부분은 좌뇌입니다. 분할뇌 환자의 오른쪽 눈과 왼쪽 눈 사이에 칸막이를 쳐놓고 좌우의 시야를 분리시키면 오른쪽 눈으로 관측한 내용은 왼쪽 뇌에서 인식이 되어서 언어 기능을  담당하는 좌뇌에 의해서 무엇을 보았는지 설명할수 있는데 왼쪽 눈으로 관측한 내용은 우뇌가 담당하기에 몸으로 반응하기는 하지만 말로 설명하지는 못하는 상황입니다. 정말 흥미로운 부분은 그 환자에게 왼쪽 시야로 누드 사진 같은걸 보여주면 웃기는 하는데 본인이 왜 웃는지는 왼쪽 뇌로 전달되지 못하기에 본인이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 환자는 자기가 왜 웃는지에 대한 질문에 아주 그럴듯한 다른 이유를 가지고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느끼는 자아와 인지하는 자아가 있는데 그걸 담당하는 뇌가 다른 것입니다. 느끼는 자아와 인지하는 자아가 분리되는 상황에서는 인지하는 자아는 느끼는 자아가 얻은 경험을 엉뚱한 방식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저는  실험이 암시하는 바가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이러한 설명본능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떤 결과에는 필연적 요소와 우연적 요소가 결합하여 얻어질텐데 문제는   요소를 명확하게 분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필연적 요소는 설명할수 있지만) 우연적 요소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뇌는 아주 미약한 실마리라도 연결해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내가 요즘 착하게 지냈더니 이런 좋은 일이 생긴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어떤 일이 생겼을때 내가 그럴줄 알았다는 식으로 사후확신편향(hindsight bias) 보이는 것도 일종의 설명본능에 의한 것입니다. 사실 많은 자기개발서들이 이러한 사후확신 편향의 결과물입니다.  비슷한 개념으로 사후판단편향(creeping determinism)이라는 것도 있는데 그건 사후에 과거를 복귀하면서  가운데 있는 우연적 요소들을 과소평가하고  사건의 필연성을 과대추정하는 경향 지칭하는 것입니다.  모두 우리의 설명본능으로 인해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데 필요한 우연적 요소들을 무시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인지적 편향입니다. 이러한 과잉설명이 자신에게 적용되면 삶에서 /불운의 영역을 과소평가하고 자신이 실제보다 통제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위험이 있습니다. 우연적인 사건에 대해서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본인의 어떤 속성 (: 노력)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데요 그게 심해지면 타인의 성공 가능성은 낮게 평가하고 자신의 성공 가능성은 높게 평가하는, 속칭, "나는 다르다"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 생각에 설명본능이 가져올수 있는 또다른 문제점은 과잉 설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설명본능에 충실하다보니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에도 설명을 하려는 것이다. 어떤 문학작품에서 작가의 의도를 찾아내려는 시도를 지나치게 한 나머지 작가의 실제 의도보다 더 많은걸 찾아내는 것이 그러한 예가 될 것이다. 그러한 설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 도입될수도 있을텐데 과연 작가가 실제로 의도하지 않는 의도를 찾아내는 것이 본인의 설명욕구의 본능을 충족시키는 것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의 행동이나 발언에 숨겨진 의도가 있다고 보는 것도 이런 설명 본능의 일종입니다. 숨겨진 의도를 가지고 발언하는 사람들이 있는건 사실이겠지만 모든걸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역시 지나친 것입니다. 통계학에서는 이를 오버피팅(over-fitting)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오버피팅은 데이터를 지나치게 과잉해석함으로써 모형의 설명력을 과장하게 되는데 결국 객관적이고 정확한 예측을 방해하곤 합니다.



어느 책에서 보니 우리가 설명본능을 가지는 이유는 아마도 진화의 과정에서 결정론적 인식 방법이 진화에 유리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빨리 적인지 아군인지를 판단해야 살아남을수 있었기에 확률론적 인식보다는 결정론적 인식이 더 살아남는데 유리한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원시시대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많은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기에 그런 단순한 결정론적 인지 방법이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설명본능의 다른 이유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생기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차단하고 싶은 욕구 때문입니다. 불안한 마음을 설명을 통해 잠시 달래주려는 것이지요.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클수록 설명본능이 더 자주 발현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평정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중요할 것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던간에 설명본능은 실재하는 것이기에 이를 메타 인지함으로써 자신이 인지하는 외부 세계와 실제로 존재하는 외부 세계와의 괴리를 좁히는 것이 우리 자신을 더 건강하게 지켜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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