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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Mar 21. 2022

남편의 건치와 치약

읽을 수 없는 이유 3


결혼을 하면 어른이 된다고 했던가. 거의 30년을 따로 살아온 사람들이 결혼했다고 한 공간에서 한평생을 함께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 마음고생 등등 이 소비된다.


그런 갈등은 대부분 치약 짜는 방법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쌓이고 쌓여서 터지게 되는 것 같다. 치약을 어디서 짜는지 양말을 어떻게 벗어놓는지 설거지 후 뒷정리를 어떻게 하는지 등등등 셀 수도 없을 것이다.


음식을 먹더라도 맛있는 거 제일 먼저 먹는 사람 아니면 맛있는 것을 제일 나중에 아껴두었다가 먹는 사람이 다르듯. 나와 다르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서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왜 내가 한 음식을 더 맛있게 안 먹어주는지, 음식이 입에 안 맞는지 서운해하지만 정작 상대방은 맛있기 때문에 아껴먹기 위해 남겨두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치약을 아래쪽부터 짜는 사람은 계획적이고 배려 깊고 미래 지향적인 성격, 치약을 중간부터 짜는 사람은 즉흥적이고 낙관적이며 현재를 즐기는 성격.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치약을 밑에서부터 짜라고 하루에도 열두 번 잔소리를 백일 동안 해도 결국 스트레스받는 건 치약을 밑에서 짜는 사람일 뿐. 중간부터 짜는 사람은 모른다. 습관이 무섭다.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왜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좋은 환경에서 모자람 없이 자란 사람 특유의 귀티와 여유. 사랑받고 자란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넉넉함. 치약이 어떻게 되든말든 신경 쓰지 않는 마이 웨이. 굳이 치약을 있는 대로 다 짜서 쓸 필요가 없는 그들만의 세상에서 치약은 한낱 사소한 문제일 뿐. 아래에서 짜든 위에서 짜든 내 인생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 찌들어 마음에 여유가 없는, 치약 짜는 것 따위에 집착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 싫다. 치약이든 양말이든 설거지든 내 맘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어떻고 저떻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게 나와 같은 처지라 감정이입을 하는 건지.


치약을 끝에서부터 짜는 사람이 무조건 지는 게임. 중간부터 짜는 사람은 자기 맘대로 써도, 밑에서부터 짜는 사람은 매번 치약을 쓸 때마다 열 받고 또 열심히 튜브 아랫부분의 치약을 위로 올려놔 봐야 다시 상대방이 쓰면 리셋되는 상황. 이길 수 없는 게임. 하지만 내가 신경 쓰지 않으면 플레이 할 필요가 없는 게임. 나만 포기하면 만사 문제 될 게 없는 게임.




우리가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급급해도, 산 위에 올라가 아래를 보면 장난감 마을 같아 보이고 비행기 타고 하늘로 가면 보이지도 않고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보면 정말 먼지보다 작은 존재인데.


아무리 미래를 준비한다 해도 현재를 즐기는 사람을 못 따라간다. 마음이 현재에 있어야 행복하다. 그렇게 지금 그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부럽다. 왠지 모르게 항상 전전긍긍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조급하게 살아왔는데. 걱정한 만큼 불안이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집착을 했는지.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그 순간에도 뭐가 그렇게 불안해했는지.


아직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내 마음 하나 조절하지 못하고 참 안타깝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참는 게 능사가 아니다. 티끌 모아봤자 티끌이다. 아끼다가 똥 된다. 5불짜리 치약 아무리 쥐어짜고 아껴봤자 가정형편 좀 나아질 리 없다. 끝에서 짜던 중간부터 짜던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이만 잘 닦으면 된다. 양치는 지금 하면 3분.. 안 하면 임플란트 3000불.. 이라는 다짐을 하루 두 번씩 하며 잔소리를 참는다. 그래, 네가 양치를 했구나. 장하다. 잘했다. 건치 미남이다.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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